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용산 CGV에서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을 보고 왔습니다. 개봉관 수가 적고, 교차 상영해서 그런지 상영횟수가 적어 시간 맞추는데 좀 고생했네요. 예매했다 취소했다, 좌석 위치가 마땅치 않아 다른 곳에서 볼까 고민했다가 타이밍 좋게 가운데 줄 중앙에 취소된 자리가 나와서 허겁지겁 달려가서 봤음…;;

흥행성적이 별로라는 둥 극장에 따라서는 간혹 좌석이 텅텅 비었다는 얘기도 주워들은 것 같은데, 주말인데다 위치 좋은 용산이라 그런지 만석이더군요. 극장에 사람이 가득 찬 건 뭐 좋은 일이긴 한데, 그에 비례해서 어수선한 극장 분위기를 감수해야 하는 건 좀 슬퍼요. 팝콘 씹는 소리라든가, 일행끼리 쫑알거리는 소리라든가.

그 중 특히 신경에 거슬렸던 두 케이스. 오른쪽 좌석에 4인 가족이 떡하니 자릴 차지하고 있었는데, 처음엔 아이들이 야단법석 떠는게 아닐까 좀 걱정했지만 오히려 복병은 그 가족의 가장이더군요. 이 아저씨, 원작을 봤던 애니를 봤던 이미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는 듯한데 상영내내 가족들에게 쫑알대면서 설명을 해대는 게 상당히 거슬렸음요. 근데 부부가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관람하던데 아이들 표를 안끊은건지, 아님 지정좌석이 너무 동떨어져서 그냥 무릎에 앉힌건지 좀 의문. 그리고 뒷자석 청년이 자꾸 발길질을 해대서 좀 짜증나더군요…;; 나가토의 귀여운 모습에 흥분하는 건 좋은데, 엄한 사람 괴롭히지 말고 좀 자제 하쇼.

각설하고 작품에 대한 감상이나 끄적끄적. 인기 라이트 노벨인 작품인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중 네 번째 이야기인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따라서 이전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아야 이해가 가는 물건인지라, 극장판만으로 작품을 즐기기엔 좀 무리라는 게 단점이겠죠. 어차피 원작 및 애니 팬 층을 노린 작품이니 대부분의 관객은 사전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겠지만요. 저 같은 경우는 TV판 1기만 제대로 봤는데, 이해에 큰 무리는 없더라고요.

이번 극장판의 히로인은 작품 최고 인기 캐릭터인 나가토 유키. 그녀의 귀여운 모습을 보기 위해 표를 끊은 팬들도 상당히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소실 버전의 소심한 나가토의 서투르고 어수룩한 감정 표현이 본래의 쿨시크한 모습과 대비돼서 참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더군요. 그러나 이미 쿈 마음속에 하루히의 존재가 너무도 확고히 들어차 있어서, 유키를 돌아봐 주질 않는다는 게 좀 안습. 하긴, 하루히 뿐만 아니라 SOS단 동료들 전체를 상대로 소실의 나가토가 승리하기는 좀 힘들어 보이더군요. 극 중 쿈은 하루히를 비롯해 원래 세계의 동료들을 애타게 갈망하니…

중반에 등장하는 코요엔 학원의 하루히, 긴 생머리랑 교복이 예쁘네요. 첫 등장 때 무료하고 따분해 보이던 코요엔의 하루히가 쿈과 만나서 생기가 도는 모습을 보니, 누가 뭐래도 하루히 짝으로는 쿈밖에 없겠구나 싶기도 하고. 쿈도 투덜투덜대면서 하루히에게 휘말렸지만, 잃고 나서야 정말로 소중했다는 걸 깨달았잖아요. 쿈과 하루히, 한 쌍의 바퀴벌레 인증. 딱 그런 느낌.

타임 트래블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사건이 교차되고, ‘미래의 쿈’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는 전개는 좋았네요. 과거에서 모든 일을 매듭짓고 세계를 확정하는 것은 ‘미래의 쿈’, 그리고 그걸 결정하는 건 쿈의 의지. 이미 일어난 과거긴 하지만 아직 가능성은 열려있고, 그리 머지않은 미래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현재의 세계를 확정하겠다는 쿈의 독백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나저나 상영시간이 참 길었어요. 영화 시작전 기나긴 광고까지 합해 거진 세 시간 가까이 않아있었더니 허리가 배기더군요. 원작을 고스란히 옮겨 놓아 좀 불만이란 평도 보이는 것 같은데, 그래서 그리도 상영시간이 길었던가… 뭐, 원작 중시 쿄애니 다운 모습이긴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