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향 게임 브랜드 Daisy2(데이지 데이지)가 데뷔작으로 내놓은 전연령 대상 여성향 연애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본래 2008년 발매 예정이었던 모양인데, 연기를 거듭해 지난달 19일 발매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제작사에서 연기한 보람이 있는지 괜찮은 작품을 뽑아냈네요.
신비한 책의 힘으로 다른 세계에 날아간다든가, 평범한 현대의 학생이 삼국지 시대로 날아간다든가 하는 건 흔한 소재니 뭐 색다를 건 없는데… 이 게임의 주인공인 하나가 날아간 곳은 역사 속 과거가 아니라, 삼국지 세계관이랑 유사한 다른 세계입니다. 하나가 접하게 된 신비한 책은 플레이어가 직접 말이 되어 삼국지 시대를 체험할 수 있는 게임북이랄까… 책을 펼쳐 플레이어가 된 하나는 그 책의 힘에 이끌려 책 속 세상의 일부가 되어 그 이야기를 체험한다는 거죠.
- 현덕군 : 현덕, 운장, 익덕, 자룡
현덕은 공명의 제자 자격으로 나타난 하나를 스스럼없이 거두어준 인물. 신원도 확실치 않은 어린 계집아이인 하나를 거리낌 없이 신뢰해주지요. 한황실의 부흥을 꿈꾸는 인격자로, 인덕을 중시한 나머지 실리를 잃거나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직스럽고 주변을 잘 챙겨주는데다 신의로 상대방을 대하는지라, 주위 인망이 두텁고 함께 있으면 의지가 되는 타입입니다. 현덕이 책에 대해 알고 나서 언제 하나가 돌아가버릴지 몰라 초조해하는 장면이 나름 인상깊었어요. 둘 다 서로를 마음을 두고 있으면서도 상황상 어긋나는 게 안타까워 보이기도 하고. 현덕과 하나가 과거에서 구해낸 어린 황태자를 십여 년간 키워내 황위에 올리는 샛길엔딩 ‘여명의 왕’은 나름 행복한 결말처럼 보이더군요. 하나를 곁에 두고 별다른 갈등 없이 원하는 걸 이룬 현덕…
운장은 그늘지고 무언가 비밀을 간직한 인물입니다. 하나보다 먼저 책의 힘에 이끌려 하나가 살던 원래 세상에서 이쪽 세상으로 넘어온, 하나의 선배(?)격 존재. 게임중 하나가 책을 없애버리자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단을 잃고, 하나라는 존재도 사라졌다…라는 내용의 배드엔딩이 존재하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 루트에서 드러나네요. 운장은 책을 잃고 현실 세계에 돌아갈 수단을 잃은 채, 본래 자신의 존재를 잃고 ‘운장’이라는 역할의 말로 전락해버린 것이지요. 적벽대전 때 맹덕의 제안을 받아들여 하나의 책을 돌려받고, 중모군 쪽 루트에서는 이 책을 신경 써서 하나에게 보내주는 이유가 이해되네요. 그는 누구보다 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근데 부용의 말대로 세상 불행 다 짊어진 것처럼 어두운 분위기로 삽질해대니 조금 괴로웠습니다.
익덕은 먹보에 단순하고 덩치 큰 아이 같은 느낌의 인물. 솔직히 익덕은 전혀 취향이 아닌 캐릭터라 별 감흥이 없습니다. 익덕루트 후반에 하나와 공명이 친근하게 지내는 걸 보고 익덕이 안절부절못하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익덕의 심정에 동조하기 보다는 친밀한 사제간의 모습을 그저 흐뭇하게 지켜봤을 뿐이라… 익덕루트에서 운장과 부용이 요리배틀을 벌이는 게 웃겨요.
자룡은 현덕을 주군으로 받들며 임무에 살고 임무에 죽는 충성심 강한 캐릭터입니다. 연애에 서툰 자룡은 자기 마음을 잘 표현 못 하고, 역시나 연애에 늦된 하나는 자룡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자룡은 임무 때문에 자신을 지켜주는 거라 오해하는 게 문제. 주변 장수들이 은근슬쩍 하나랑 자룡을 놀리면서 두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본다든가, 공명이 하나를 두고 자룡을 휘두르는 모습이 재미있었네요. 역시나 전 자룡보다 공명 쪽에 눈이 갔지만…
- 맹덕군 : 맹덕, 문약
맹덕은 황제의 권위를 등에 업고 승상의 자리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실력자로,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장판교에서 떨어져 강에 빠진 걸 건져 올려서 데려온 하나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지요. 도무지 종잡기 어려운 인물로 하나 앞에서는 헤실 헤실 거리며 친근하게 굴지만,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수완가예요. 처음 약속대로 하나에게 거짓말하는 일은 없지만, 하나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하나를 마음속으로 소중히 여긴다 해도 말이죠. 과거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이후, 남을 전혀 신뢰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하는데… 처음 예상과는 달리 맹덕은 그리 악독한 인물은 아니네요. 좀 더 복흑일 거라 생각했거늘.
맹덕이란 캐릭터는 매우 마음에 들었고 두근두근 소녀심을 자극하는 스토리 전개 역시 나쁘지 않았는데, 맹덕의 아내가 되어 맹덕의 저택에서 맹덕의 처첩들과 같이 사는 샛길엔딩을 보고 식겁. 해피엔딩을 맞이해도 맹덕이 거느린 수많은 처첩들을 생각하면 어째 상당히 찜찜한 느낌입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고 신뢰가 쌓여도, 맹덕의 처첩들은 여전히 떡 하니 버티고 있잖아요. 맹덕이 하나를 다른 사람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해도, 여심은 이런 상황을 용납하기 힘들어요.
문약은 맹덕 휘하의 문관으로, 공명의 제자라는 하나를 의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인물입니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순진한 반응을 보이는 하나를 상대로 당황하다가 올곧은 하나의 태도에 마음의 벽이 무너지게 되네요. 함께 과거로 날아간 인물 중 유일하게 문관인데다 계속해서 투덜대니 좀 미덥지 못하더군요. 여행 도중 불한당 안 만난 게 천만 다행. 한황실에 충성을 맹세한 신하로 패도를 이끄는 것은 맹덕이 제격이라 생각해 맹덕을 섬기나 맹덕과 서로 바라보는 미래가 달라 불화를 일으키게 됩니다만… 하나의 설득으로 맹덕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네요.
그건 그렇고 원양 아저씨는 참 좋은 사람이네요. 언제나 인상 쓰며 툴툴거려도 침울해하는 하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다든가,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고 배려한다든가 이래저래 잔정 많고 속정 깊습니다. 인간적으로 정이 가는 인물이에요.
- 중모군 : 중모, 공근, 조안
중모는 손가를 이끄는 당주로 오레사마 츤데레 캐릭터. 주변에 연상이 즐비한 이쪽 동네에서 중모는 같은 나이 또래, 하나보다 한 살 연하라는 점도 있어서 하나가 다른 캐릭터보다 더 편하게 여기는 듯합니다. 과거에서 단둘이 한동안 스스럼없이 함께 지낸 점도 있겠고. 둔하고 눈치 없는 하나를 앞에 두고 중모가 버벅대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현덕 칭찬해대는 하나를 보고 은근 질투해대는 모습도 귀엽고. 하나와 함께 성장하며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는다는 점도 좋네요.
공근은 중모의 측근으로, 항상 침착한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는 수완가예요. 이미 타계한 중모의 형이자 자신의 친우였던 백부의 유지를 이어받아 손가의 중원통일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현덕 밑에서 군사로써 실적을 올려 공을 세운 하나를 잡아두고 나중에 이용하려 든다든가, 거짓혼례를 통해 현덕군과의 동맹관계를 무너뜨리려든다든가, 중모루트에서는 방해가 되는 하나를 제거해 버린다든가 하는 짓도 서슴지 않지요. 공근루트에서는 하나가 현덕 칭찬해댈 때 공근이 비파 음색을 흐트러뜨며 동요하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그나저나 말괄량이 자매 대교, 소교는 중모와 공근 해피엔딩의 일등공신입니다. 두 자매가 여러 커플 엮어줬다고 자부하는 게 결코 허언은 아니네요. 대교랑 소교가 없었으면 하나는 상대방에게 제대로 마음을 전하지도 못한 채 어영부영하다가 헤어져 버렸을 게 뻔하니까요. 대소 자매 외에도 온화한 자경이나 상향 등 손가 쪽은 가족적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넘쳐나서 좋더군요.
조안은 공근 휘하에서 움직이는 간자. 공근루트 플레이 이후 공략 가능한 숨겨진 캐릭터입니다. 중모의 책략으로 상향대신 현덕과 거짓혼인을 해서 양측의 불화를 꾀하기도 하고, 중모루트에서는 조안이 공근의 사주로 하나를 암살하는 배드엔딩도 있습니다. 본래 중모와 배다른 형제라 용모가 비슷한데, 정치적 문제 때문에 줄곧 그늘 아래서 자라온 듯. 전 공략 캐릭터 중 등장이 가장 늦은데다가 덤이라 그런지 내용도 짧은 편이네요.
- 공명 + 노멀루트
공명은 영문도 모르고 낯선 세계로 날아온 하나를 제자로 삼아 현덕에게 인도해 준 인물. 하나가 고민에 빠져있거나 주저할 때 혜성처럼 나타나 앞길을 제시해주곤 합니다. 하나를 현덕군에 맡겨놓고는 신출귀몰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후반에 현덕군에 합류, 그 명성에 걸맞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그런고로, 현덕군 쪽 타루트 후반에서도 제법 비중있게 나오는 편.
공명은 노멀엔딩을 본 이후에 공략 가능합니다. 게임하는 내내 어째서 공명이 난데없이 나타난 하나를 제자로 삼아 그녀의 길을 이끌어줄까 의아했는데, 노멀루트와 공명루트를 거치면 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다른 루트에서 황건당의 난이 일어났던 과거로 날아가 만나게 된 소년을 보고 나중에 얘가 성장한 모습으로 등장하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는데… 등장하는군요.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인물로. 이름이 량이라 그럴 때부터 눈치깠어야 했는데…
노멀루트랑 공명루트에서 활약하는 황건당의 껄렁해 보이는 이인조 안이와 계상이 인상깊었어요. 안이 아저씨, 생긴 것과 달리 괜찮은 사람이었네요. 안이랑 계상이 투닥거리며 촌극을 벌이면 하나가 거침없는 한마디(이를테면 “징그러운 계상 씨도 흉폭한 안이 씨도 필요해요.”…라든가)로 말뚝을 푹 박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어린 량이 하나에게 집쩍대는 안이 아저씨를 견제하기 위해 꾀를 쓰는 것도 재미있었고… 9년후 다시 만난 공명과 안이가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웃겨요. 둔탱이 하나는 아무 것도 눈치 못챕니다만.
어쨌거나 노멀루트도 공명루트도 과거에 나눈 인연과 약속이 미래로 이어지는 인과관계가 좋았습니다. 이렇게 과거와 미래가 서로 맞물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딱 잘라 따질 수 없는 미묘한 인과관계는 타임리프 소재의 묘미니까요. 공명은 기본적으로 웃는 얼굴로 주변을 휘두르는 마이페이스인데, 때때로 진지하고 날카로운 면모를 보이는 게 참 취향 직격. 능청떠는 사부님 귀여워요. 어린시절 제법 성실했던 량이 저런 성격으로 자란 건 역시 하나가 말해준 사부의 인상 때문이었겠죠. 량이는 하나가 존경하는 사부를 역할모델 삼았다는 느낌이랄까…
공명은 어린 시절 나누었던 약속만을 의지해 한결같이 언젠가 재회할 그 날을 꿈꾸며 오랜 시간 하나만을 기다려 왔고, 아무 것도 모르는 하나를 상대로 겉으로는 천연덕스럽게 굴면서도 속으로는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는데다, 무엇보다 하나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하나를 알게 모르게 지지하고 이끌어주는 게 참 절절합니다. 제가 좀 이런 헌신적인 일편단심 캐릭터에게 약해서… 엔드롤 뒤에 나오는 공명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정말 심금을 울리는구나! 이런 사부를 두고 어떻게 하나를 딴 남정네에게 넘겨주나요…ㅠ_ㅠ 노멀엔딩에서 하나가 원래세계로 돌아간 후, 하나가 입던 분홍색 겉옷을 입고 있는 공명을 보면 짠합니다. 이 순정남을 어쩜 좋아…
노멀루트에서 하나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게 되는 ‘우선’ 엔딩에서는 살짝 역하렘 분위기가 흐르더군요. 남정네들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쟁탈전 벌이는 모습도 재미있을 듯.
몇몇 공략 캐릭터는 초반부 이상형 선택지가 중요하네요. 운장은 이상형 선택지 바로 다음 필수 이벤트가 벌어져서 이걸 못보면 호감도에 상관없이 공략 불가능하고, 맹덕이나 공명은 이상형 선택지에서 해당 캐릭터에 관련된 걸 선택하지 않으면 나중에 호감도 부족으로 필수 이벤트가 벌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외의 캐릭터는 이상형 선택지와 관계없이 공략가능하니 분기마다 적당히 세이브해서 요령껏 동시공략하면 편합니다.
각 캐릭터마다 엔딩곡 전주부분이 차이가 난다든가 엔드롤에서 공략당시에는 몰랐던 공략 캐릭터 시점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 좋네요. 공략 후 2회차 플레이 할 때 그 부분이 추가됩니다. 엔드롤이 흐르는 정식 엔딩 외에도 이런저런 배드엔딩 및 샛길엔딩 등이 흥미로운데, 엑스트라에 엔딩리스트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웬만하면 다 제대로 챙겨보고 싶은데… 엑스트라의 신회상도 어딘가 살짝 부족한 느낌. 좋은 이벤트들 많은데, 왜 이리 빠진 게 많나요.
어쨌거나 스토리 흥미진진하고, 시스템 무난하고, CG도 깔끔하고, 공략 캐릭터와 서브 캐릭터들이 다들 개성적이고 매력넘쳐서 즐겁게 플레이 했습니다. 주인공인 하나도 맹하고 순진한 게 귀여워요.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게 참 사랑스럽네요. 하나 총수 환영! …이긴 한데, 저는 사제지간인 공명×하나 커플을 적극 지지합니다. 우리 공명 사부는 참으로 보배로운 존재이셔요.
음, 자로 말하니까 팍 안 와닿네, 문약이랑 조안이 누구냐…(검색)… 잘 모르겠군. 하여간 이름은 들었는데, 음성 지원 되는고?
순욱이랑 손랑… 근데 그 쪽 세상에서는 자가 곧 이름으로 쓰여서, 삼국지 인물의 실제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음(어린 량이만 빼고…). 성우에 무지한 내가 봐도 익숙한 사람들이 꽤 되는 걸 보면 나름 호화성우진 같다.
음, 그럼 공명은 경어 캐릭터냐? 경어 캐릭터임에 틀림없겠군.. 언제 빌려주(P3P 3회차 끝나면;)
공명은 딱히 경어 캐릭터는 아님. 내가 좀 경어 모에 성향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경어 캐릭터만을 좋아하는 건 아니니… 이 게임의 경어 캐릭터인 공근도 꽤 마음에 들긴 한데, 절절하고 애틋한 일편단심으로 무장한 사부님의 포스가 워낙 강렬해서… 근데 벌써 P3P 3회차야? 푹 빠져 있나 보네.
음? 아니아니 2회차라고 쓰려던 걸 잘못 쳤다; 지금은 당연 1회차 12/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