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롤까지 앞으로,

신생 여성향 레이블 루루루 문고에서 발매된 카베이 유카코의 소설입니다. 후에 단편 세 편을 추가하여 단행본으로도 발매되었다고 하네요. 삽화가 순정만화풍을 풍기는 게(현역 순정만화가가 그렸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소설과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지역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사’가의 출신인 유우코와 사마노스케. 두 사람은 매우 희귀한 일란성 쌍둥이 남매로 누나인 유우코는 선천적으로 병약한 탓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장이 더디고 자폐기미를 보이지만, 동생인 사마노스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극히 평범한 고교생입니다. 유우코는 언제나 함께 였던 사마노스케가 점차 자신과 거리를 두려 한다는 사실에 쓸쓸함을 느끼는 와중, 자신과 사마노스케가 소속된 영화연구부 활동을 통해 외부와 교류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전까지는 남녀 쌍둥이는 이란성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아주 드물게 일란성도 가능하긴 한가 보네요. XXY 염색체를 가진 수정란이 분할된 후, 한 쪽의 X염색체가 사라져 XY가 되고 다른 쪽의 Y염색체가 사라져 XX가 되면 일란성 남녀 쌍둥이가 된다 – 라고 「쌍둥이, 그 탄생의 신비」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일란성 쌍둥이 남매의 발생 원리가 간단히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 마치 서로 거울에 비친 듯 발달한다는 거울 쌍둥이1이를테면 쌍둥이 중 한 명은 오른손잡이이고 다른 한쪽은 왼손잡이라든가, 쌍둥이의 장기가 서로 거울에 비친 듯이 대칭되는 위치에 있다든가… 쌍둥이인 제 오라버니들도 한명은 왼손잡이이고 다른 한명은 오른손잡이에요. 유우코와 사마노스케의 경우는 한 쪽이 상처를 입으면 다른 쪽에도 서로 거울에 비친 듯 대칭되는 위치에 나타난다는 식으로 나옵니다만.  등의 내용도 나오는데, 혹시 작가가 이 내용을 참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쌍둥이 남매의 금단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유우코의 성장기에 가깝다는 느낌이네요. 상대를 이성으로 인식하는 건 명백히 사마 쪽이고, 유우코는 사마가 가장 소중하기는 하지만 이성에 대한 감각이 희박한 상태인데 사마노스케의 감정에 휩쓸렸다는 느낌…이랄까요. 유우코는 사실 어떤 형태로든 사마가 곁에 있길 바랄 뿐이었으니… 개인적으로 근친물의 묘미는 가족애에 기반을 둔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사마노스케는 지나치게 유우코를 이성으로 인식하는 느낌이라 좀 미묘. 유우코와 사마노스케의 관계 이외에도 같은 영화연구부 소속인 니시마루나 세이노의 갈등과 성장, 서로간에 쌓이는 신뢰와 유대감 등이 꽤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소설 중간중간에 결말에 대한 암시가 나오긴 합니다만… 사실 새드엔딩은 싫어하진 않지만,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보곤 ‘뭐냐, 이 통속적인 결말은…’이란 생각이 머리속을 지배했으니… 마지막이 좀 작위적인 것 같습니다. 사마노스케와의 관계는 유우코가 성장하는 과정 중 한 단계라는 느낌이네요. 그 외 불완전 연소로 끝난 니시마루의 감정이 좀 신경쓰입니다. 니시마루는 딱 조력자 포지션이 어울리긴 합니다만, 유우코에 대해 호감을 갖으면서도 친구인 사마노스케와의 우정과 복잡한 집안사정에 대한 반발로 인해 유우코에 대한 마음을 솔직하게 내비칠 수 없었으니…

어쨌거나 애정보다는 성장에 중점을 둔 글인 고로, 금단의 사랑이란 말에 혹해서 읽으시려는 분껜 비추천입니다. 성장물로써는 그리 나쁘지 않은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