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로플러스에서 2002년도에 발매한 18금 남성향 게임『귀곡가』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15세 이상 추천 등급으로 올해 5월 27일에 발매했어요. 드라마 시디 캐스팅을 바탕으로 음성을 추가해 풀보이스화하고 연출과 그래픽을 강화했다고 합니다.
서구적 근미래의 SF 분위기와 동양적 고전의 중화풍 소재가 어우러진 사이버 펑크 무협물입니다. 퇴폐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근미래 상하이에서 수많은 적을 상대로 홀로 복수의 길을 걷는 타오로를 보고 있자니 느와르물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듯하네요. 총6장 구성으로 선택지 없는 일직선 진행입니다. 진행한 부분은 각 장마다 플레이 할 수도 있네요. 플레이 타임은 짧은 편.
타오로는 본래 조직의 암살자였으나 동료의 배신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고, 1년 만에 상하이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5명의 배신자는 사랑하는 누이동생 루이리마저 욕보이고 죽인 것도 모자라 그 혼의 데이터를 5등분해 애완인형 가이노이드에 옮겨 심고 이를 나눠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 데이터를 모아 루이리를 되살리고 원수들에게 복수하고자 혈혈단신으로 검을 든 타오로. 이미 조직을 장악한 배신자들을 상대로 한 타오로의 힘겨운 싸움이 막을 엽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소중한 누이마저 비참하게 죽은 뒤, 그간 고고하게 지켜왔던 자신의 이상도 신념도 버리고 오로지 복수와 루이리의 부활만을 위해 사투를 벌여온 타오로가 마지막에 진실을 알게 되고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마치 구명줄을 잡듯 루이리에게 매달리는 게 참 뭐랄까…찐득한 느낌입니다. 타오로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비틀린 행복감에 젖는 루이리도 그렇고. 이 남매에게 휘말려 죽은 사람이 대체 몇이냐…;;
주변을 철저히 파괴하고 나락까지 떨어져 간신히 맺어진 금단의 사랑. 솔직히 도덕과 상식으로 똘똘 뭉친 인격자였던 타오로가, 이렇게까지 타락하고 절망하지 않았다면, 결코 루이리의 마음을 받아들이지도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지도 못할 것이 뻔했죠. 따라서 두 사람이 맺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타오로를 감찬 도덕과 상식이라는 갑옷을 깨부수고 주변의 모든 것을 무너뜨려 오로지 루이리만을 갈구하게 하여야 했기에 이런 수라장을 거칠 수 밖에 없었겠지만…
두 사람은 행복해졌지만 루이리를 향한 순정 때문에 망가져 버린 호쥰이 불쌍해서 눈물 나네요. 뭐하나 빠지는 부분 없이 괜찮은 남자인데 하필 중증 얀데레 브라콤을 사랑한 게 죄라면 죄. 루이리와 호쥰 둘 다 한눈팔지 않는 지독한 외곬이라는 점 역시 불행이었습니다만… 저는 조용히 미쳐버린 캐릭터를 꽤 좋아하기 때문에 루이리랑 호쥰 둘 다 마음에 들었어요. 호쥰의 바람대로 루이리가 마지막 순간에 단 한 번이라도 웃어줬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거 없네요. 역시 루이리는 오라버니 외에는 안중에 없나 봅니다. 그나마 호쥰을 조금쯤은 불쌍히 여기는 모양이지만요. 물론 불쌍히 여긴다 해도 루이리에게 그 존재의 무게는 깃털만큼 가볍지만…;_;
퇴폐적이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무거운 이야기입니다. 철저히 망가지고서야 간신히 얻는 그 행복의 형태도 참 인상 깊었고… 거기까지 이르는 감정의 흐름이 참 격렬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상대의 발목을 물귀신처럼 끌어잡는 사람이나, 상대의 행복을 위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사람이나 그 집념이 보통 아닙니다. 타오로의 주변 물정 모르는 도덕과 상식이 오히려 독이 된 듯. 그를 둘러싼 애증의 소용돌이가 결코 만만치 않아서…;; 파멸을 향해 치닫는 광기 어린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추천. 그 과정에 비해 엔딩 자체는 평온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