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존시프트:블러섬에서 내놓은 3번째 작품으로, 18금 남성향 연애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메인 칼라 핑크에 걸맞게 참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흘러 넘치네요. 정말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
쇼가 전학 간 사립 오토리료란 학원은 전원 기숙사제로, 본래대로라면 어려운 시험을 거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수준 높은 곳. 이 학원은 학생회와 료란회, 두 집단이 학원 전반을 통괄하는 특이한 시스템으로 돌아갑니다. 신원미상 수수께끼의 전학생 쇼는 학생회와 료란회 양 멤버와 얽혀 시끌벅적 왁자지껄 두근두근 울렁울렁 원더풀 스쿨 라이프를 보내게 되지요.
공략대상은 쇼보다 일주일 먼저 전학 온 먹보 동료 유이, 성실한 료란회 회장 아마네, 천사 같은 학원의 마돈나 사쿠라코, 지적이고 우아한 학생회 부회장 마유리, 쇼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매드 메카닉 기숙사장 쿠루리, 존재감이 흐릿한 클래스메이트 스즈노 등 총6명.
- 이나바 유이
유이는 쇼보다 일주일 전에 온 전학생으로, 같은 전학생인 쇼를 친밀하게 여깁니다. 둘 다 주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는 먹보에 사고패턴과 행동양식이 매우 유사하지요. 삐친 머리도 판박이. 둘이 완벽히 똑같지는 않고 성별과 환경에 따른 차이점도 있긴 합니다만. 유이 루트 밟을 때 아마네랑 엮이기에 루트 잘못 탔나 싶었는데, 쇼를 사이에 두고 유이와 삼각관계로 발전하더군요. 그리고 쇼와 유이가 정식 연인이 된 이후 친남매 의혹이 불거지면서 갈등에 휩싸이는데…
쇼는 이란성 남녀 쌍둥이가 태내에서 하나로 합쳐져 유전자 정보는 여성형인데도 불구하고 남성적 특징이 발현된 돌연변이라고 합니다.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라 학원에서 연구 목적으로 불러들였다나 뭐라나… 사실 쇼와 유이는 각기 다른 차원 사람인데, 두 사람은 각자의 세계에서 같은 포지션이지만 성별이 다를 뿐입니다. 남녀 쌍둥이가 융합한 육체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남성형으로 발현된 게 쇼이고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고 여성형으로 발현된 게 유이. 육체 베이스가 동일하기에 유전자 정보도 일치하지요. 주변 환경이 유사한데 돌연변이 유무에 따라 남녀성별이 갈리는 상황이라니… 어째 주인공 남녀 선택형 게임이 떠올랐습니다. 쇼랑 유이가 처묵처묵하는 건 두 사람 분량을 채우다 보니 그런 걸까…하는 생각도 좀 들더군요.
쇼의 어머니는 남녀 쌍둥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 결정(結晶)이라는 단어에서 한 글자씩 떼어서 여자아이에겐 유이(結), 남자아이에겐 쇼(晶)란 이름을 지어줄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쌍둥이 남매가 별 탈 없이 무사히 태어났다면 쇼와 유이가 남매로서 함께 했을텐데… 쇼와 유이가 회장 남매 투닥거리는 모습 보면서 형제 얘기 나누는 장면을 떠올리니 참 기분이 미묘합니다. 니들 사실 남매로 태어날 뻔했어…;; 그렇지만 융합하지 않고 각각 따로 태어났다면 이들은 쇼랑 유이와는 다른 존재로 봐야 할까요? 서로 다른 차원 사람이니 유사 근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에 이끌린 것이니 나르시시즘?! 어쨌거나 공존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기적! 이 때문에 쇼는 유이를 선택하는 대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의 세계를 버리고 유이를 선택해서 자신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나간 쇼이지만, 유이네 가족이 따뜻하게 받아들여 줄 것 같은 분위기라 그나마 안심. 그나저나 쇼랑 유이가 저렇게 쌍으로 먹어대면 집안 거덜 날 거 같은데, 괜찮으려나 하는 걱정이 들더군요.
- 스메라기 아마네
학생회와 더불어 학원일을 총괄하는 료란회의 회장인 아마네는 이사장 치하야의 딸이자 학생회장 소류의 여동생. 양갓집 아가씨이지만 사교성 좋고 주변을 잘 챙겨주는 타입입니다. 약간 다혈질 기미가 있어 때때로 울컥하면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지기도 하고…;;
유이와는 상성이 잘 맞는지 굉장히 친합니다. 함께 한 시간은 짧지만 두터운 신뢰관계를 보여주지요. 쇼를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가 펼쳐질 때 유이가 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듣고 한발 물러서려 하지만 유이의 설득에 서로 마음을 터놓고 정정당당 승부를 겨루기로 다짐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때때로 쇼와 유이 사이에 특별한 인연을 느끼고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아마네 루트는 스메라기 가, 그중에서도 특히 소류와 아마네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겉으로는 한없이 가벼워 보이던 쇼류가 품은 부정적 감정이라든가, 아마네가 입은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남매의 관계 회복 등. 후반부에 두 사람의 말다툼을 보다 못 한 쇼의 윽박에 꼬리 내리는 남매의 모습이 귀여웠어요. 소류와 아마네가 마음속 깊숙이 깔린 응어리를 풀고 서로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에요. 치하야 이사장은 정말 우아하고 다정하고 착하고 멋진 여성인데, 하필이면 돌아봐 주지 않는 남자를 사랑해서 마음고생 심하게 한 듯합니다.
공통 루트에서 소류가 때때로 낮잠 자러 간다며 자리를 비우는 모습이라든가 마유리 루트에서 마유리 방에 장식용이라는 그랜드 피아노, 소류가 가진 마유리 방 여벌열쇠 등이 나오는데… 이게 다 남몰래 마유리 방으로 피아노 치러 가는 거였군요. 그래서 마유리 루트 탈 때 마유리가 여벌열쇠 내놓으라니까 기겁한 거고…;; 그런데 메구미가 소류의 피아노 음색을 찬양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좀 의외였어요. 그간 한없이 소류를 추켜세운 건 소류 자체가 아니라 소류의 피아노 음색이었다고 하고… ‘멋진 피아노 음색을 내는 소류 = 멋진 사람’이란 공식인가…?
- 미나세 사쿠라코
사쿠라코는 마유리와 인기를 양분하는 학원의 아이돌. 남녀불문하고 큰 인기를 끄는데다, 사쿠라코를 위해 헌신하는 열혈 친위대를 다수 거느리고 있습니다. 솜사탕처럼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여자아이인데, 오랜 병원 생활 탓인지 세상 물정에 어둡고 엉뚱한 구석이 있습니다. 호기심이 왕성한데다 상식에 구애받지 않는 독창적인 센스를 지니고 있기도 하지요. 연약해 보이지만 의외로 외유내강에 심지 굳은 아가씨. 방재 훈련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숨은 강자입니다…^^;;
사쿠라코는 추종자들이 주변에 널려 있지만 다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접근하지 않기에 안타까운 감정을 품던 와중, 안 그래도 이성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차에 자신을 거리낌 없이 대하는 쇼와 접하며 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호감은 점점 연정으로 발전하고… 사쿠라코와 정식 교제 이후 사쿠라코 추종자들이 날뛰는 모습이 나오려나 했는데 그런 건 안 나오네요.
시게키 씨의 심장을 이식받지 못하면 죽을 운명이라 좀 가엾기도 하고, 그렇다고 시게키 씨가 사망하면 그건 그것대로 안타깝고. 둘 중 하나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서글퍼요. 유이의 세계에서 때때로 쇼와 유이에게 기묘한 느낌을 품기도 하고, 종종 여자아이(=유이)가 나오는 이상한 꿈을 꾸기도 하는데, 이건 다 이식받은 심장의 영향이었죠. 쇼가 원래 세계로 돌아오고서 플라이어를 매개로 유이의 세계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사쿠라코의 꿈으로 반영되었고, 심장이식 후 남자아이(=쇼)가 나오는 꿈을 꿉니다. 시게키 씨, 어느 세계에서든 정말 자식을 소중히 여겼군요.
그나저나 마유리는 사쿠라코에게 이식된 심장의 원래 주인인 쇼의 아버지 때문에 사쿠라코와 친구가 됐을 텐데, 쇼의 세계에서는 수술전인데도 마유리와 사쿠라코와 친구 사이라 좀 갸우뚱했습니다만… 유이의 세계에서는 마유리가 심장의 행방을 쫓다 사쿠라코를 찾아내어 친구가 됐지만, 쇼의 세계에서는 두 사람이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됐다는 설정인 듯.
- 시라사기 마유리
마유리는 학생회의 부회장으로 재색겸비, 문무양도, 온화한 성격까지 뭐 하나 빠지는 부분 없이 완벽한 이상적인 아가씨. 마유리를 동경하는 학생들의 지지도가 엄청납니다. 한 살 연하인 사쿠라코와 절친한 친구 사이이고,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서로의 편의를 위해 소류와 약혼자 관계를 가장하고 있습니다.
마유리는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사쿠라코는 각별합니다. 사실 그녀가 진정 친밀하게 여기고 아끼는 상대는 사쿠라코 정도고, 다른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선을 긋지요. 이는 복잡한 가정사와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얽혀 있기 때문인데… 언제 어디서나 의연하게 대처해 왔던 자신을 뒤흔드는 존재, 쇼의 등장에 당황하고 그와 거리를 두려 하지요. 그 과정에서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을 내던지고 차가운 태도로 쇼를 밀어냅니다. 그렇지만 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심으로 부딛혀 오고, 본가에서는 마유리에게 집안을 위해 희생하기를 강요하는데…
중반에 태도가 180도 바뀌어 차가운 모습을 보이는 마유리를 보고 있자니… 여성향 게임 『금색의 코르다』의 등장인물 유노키가 떠오르더군요. 캐릭터가 처한 상황이 여러모로 비슷해서… 주인공에게만 어두운 면모를 드러내는 것도 그렇고, 표현 방법이 거칠어도 속내를 드러내며 주변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알게 모르게 보여주는 모습이… 애초에 신경 안 썼으면 그냥 다른 이들처럼 적당히 가면 쓰고 상대해 주면 그만이었을테니까요.
사쿠라코 루트에서 마유리가 소중한 사람이 남긴 존재라며 사쿠라코를 매우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고, 쇼와 사쿠라코는 운명이라고 말하며 쇼를 격려해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다 사쿠라코 안에서 뛰고 있는 시게키 씨의 심장 때문이었군요. 시게키 씨가 살아 있는 쇼의 세계에서는 시게키 씨를 보고 당황하며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청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언젠가 카츠라기 부자랑 함께 느긋하게 식사 자리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사쿠라코 루트에서는 결국 이뤄지지 못했지만요. 그렇게 오랜만에 재회했는데 갑작스레 시게키 씨 사망이라니 안타까워요. 사실 나이 차가 많이 나긴 하지만, 마유리가 시게키 씨랑 엮여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 쿠조 쿠루리
쿠루리는 료란회 정식 멤버로 이과 계열 천재 소녀. 사정상 료란회 기숙사에 머물게 된 쇼를 눈엣가시처럼 여깁니다. 천재끼리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는 모양인지 성격은 영 딴판인 학생회 서기 메구미와 매우 친합니다. 쿠루리와 메구미가 공동 제작해서 맥스를 완성하기도 했고요.
이야기 중반부터 쇼에게 억지 애교를 부리는데 그 어색한 태도라든가, 점차 진심으로 쇼를 좋아하게 되면서 스스로 갈피 못 잡는 모습도 초반의 가시 돋친 태도와 대비되어 귀여워 보였던 듯.
기본적으로 쿠루리는 남성에게 적대적인데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치하야 이사장의 가정사를 지켜보며 남성 불신에 빠진 듯합니다. 쿠루리가 소류에게 적의를 품은 건 치하야의 친아들이 아니라 밖에서 데려온 아이라 치하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인가 했더니… 처음 시작은 단순히 질투였군요. 어린 시절 아마네가 소류를 졸졸 따라다녀서 아마네와 같이 놀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나… 아마네와 마찬가지로 소류의 출생의 비밀은 모르고 있었던 모양.
쿠루리는 이 게임의 키 아이템인 타임머신 플라이어의 개발자입니다. 아직 개발 초기 단계지만 미래에는 이를 완성, 쇼가 차원을 넘나드는 계기를 마련하지요. 게임상에서 쇼와 유이의 세상은 각각 다른 차원이지만, 쿠루리의 타임머신 플라이어를 매개로 유이의 세상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쇼의 세계에 반영되네요. 다른 루트에서 미래의 쿠루리가 쇼에게 넌지시 조언을 해주거나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곤 합니다. 그런데 20년 후에도 학생 시절과 변함없이 그 모습이라니 사기다!
- 유키시로 스즈노
쇼의 클래스메이트로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강아지같이 순하고 귀여운 소녀. 쇼, 유이, 맥스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스즈노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스즈노는 자신을 유령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 스즈노는 유령이 아니라 쇼를 구조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온 아이입니다. 타임머신 플라이어의 공간왜곡 시스템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인식 못 한 것이지요. 게임 초반 불꽃놀이용 화약 폭발에 휘말린 탓에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어버려서 자신의 정체와 목적을 잊어버린 상태였는데… 쇼와 유이와 맥스가 스즈노를 인식한 이유는 각각 구조 대상자, 구조 대상자와 동일 유전자, 인간의 인식을 뛰어넘는 시각을 지닌 로봇이기 때문이고요.
스즈노는 플라이어와 상성이 좋아 가장 정확히 시공을 나는 적합자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 오차율을 동반하는 모양입니다. 쇼를 원래 세계에 돌려놓을 때도 살짝 오차가 생겨 하루 전으로 돌려보냈고. 그런데 유이 루트에서 스즈노가 쇼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는데… 그대로 쇼가 유이의 세계에 남으면 플라이어 개발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요? 쇼는 개발의 핵심 멤버인데…;; 애당초 쇼가 플라이어 개발의 필수불가결 요소이기에 구조 대상자로 정하고 테스트 케이스를 실행한 거 아닌감요? 이거 직무 유기 아니니, 스즈노? 타임 패러독스 같은 거 안 생기나?!
맨 마지막에 공략할 수 있다는 점도 그렇고,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는 점도 그렇고, 이야기의 핵심을 쥐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따로 후일담이 있다는 점도 그렇고… 스즈노는 이 게임의 진 히로인 포지션이네요. 안타까운 이별 이후 쇼가 스즈노를 기다린 시간은 20년. 쇼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시간도 그렇지만, 스즈노가 적합자로 선정되어 테스트 케이스에 투입된 그 시간 동안 더 애가 탔을 듯해요. 그래도 별다른 동요 없이 여유롭게 웃는 얼굴로 스즈노를 맞이하는 쇼(추정 연령 30대 후반)의 모습에 세월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연륜인가!
타이틀 화면을 처음 장식하는 건 메인 히로인 유이이고, 그 이후에는 랜덤으로 캐릭터들이 번갈아 나오는 듯한데, 유이와 아마네가 유난히 자주 나오고 다른 캐릭터는 잘 안나오네요. 현재 유이, 아마네, 사쿠라코, 마유리, 쿠루리, 스즈노, 메구미, 히카와 선생님까지 확인 했는데 아무리 돌려도 딴 사람이 안 나오니 그냥 포기하렵니다…;;
어쨌거나 참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게임이에요. 인터페이스도 아기자기 예쁘고, 개성 만점 캐릭터들도 귀엽고, 캐릭터들이 투닥거리는 모습도 사랑스럽고, 왁자지껄 이벤트도 재밌고. 귀엽고 유쾌한 학원물을 좋아하신다면 추천! 팬디스크도 꼭 플레이해봐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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