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금 여성향 브랜드 아로마리에에서 발매한 세 번째 작품입니다.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스펜스 로맨스…?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데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좀 신경 거슬리는 내용이 나오기도 하네요. 조선 호랑이 얘기 보고 좀 뜨악했음. 처음 캐릭터 소개 일러스트를 봤을 때 여주인공이 좀 별로다 싶었는데, 의외로 게임 CG에서는 꽤 예쁘네요.
- 시바 준이치
유리코의 생일날 갑작스레 나타나서, 유리코에게 열렬히 구혼하는 청년 실업가.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유리코를 몰아붙입니다. 매우 직선적이고 격정적이라 이래저래 유리코가 당황하지요. 자기감정에 솔직하긴 한데 의외로 체면치레 때문에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솔직해지지 못해서 유리코의 반감을 삽니다. 안 그래도 궁핍한 집안 사정 때문에 자격지심에 시달리는 아가씨한테, 돈으로 사들이는 모양새로 접근하면 호감이 생길 리 없잖겠어요? 유리코 앞에서 허세 부리지 말고 조금만 솔직해지면 서로가 편할 텐데 괜한 고집으로 인생 피곤하게 사는 듯.
어린 시절 자신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준 유리코를 마음속에 품고, 그에 어울리는 남자가 되고자 이 악물고 노력해서 자수성가했습니다. 어쨌거나 유리코를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 열심히 구혼을 해대는데… 루트에 따라서는 아내의 외도를 묵인하기도 하고, 아내가 자기를 독살하려 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고, 냉담한 아내에게 애증이 폭발해서 학대하기도 하고, 끝내 자신을 거부하고 자살하려던 유리코를 감금해 농락하기도 하고…
어쨌든 속정 깊고 순수한데다 유리코를 향한 사랑은 진심인데,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 해서 보답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네요. 그저 유리코를 곁에 두기만 해도 행복한 걸까요?
- 노미야 미즈히토
노미야 가의 장남으로 유리코의 오라버니. 노미야 자작이 하녀에게서 얻은 서자라서, 정실인 유리코의 어머니에게 냉대를 받습니다. 화가를 꿈꾸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그 뜻이 꺾인 후 유곽을 전전하며 방탕한 생활을 해왔지요. 겉으로 알려진 사실은 이러하지만, 유리코와 혈연관계가 없는 생판 남. 아버지가 어머니의 질투를 사려고 일부러 데려온 아이라고 합니다. 친남매인 줄 알았을 때에도 유리코를 마음속에 품었으나 단념했는데, 진실을 알고서 방황한 모양입니다.
사실 미즈히토는 노미야 가랑 아무 관계도 없는데 복수극에 휘말려 대체 몇 번을 비명횡사 했는지…;; 아무리 봐도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네요. 미즈히토 루트 타면서 마지마가 미즈히토와 유리코의 관계를 알면 격분해서 뭔 일을 저지를지 몰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진행했는데 역시나… 그래도 두 사람이 피가 안 섞였다는 말을 듣고 순순히 물러서네요. 실상은 어떻든 세간에는 남매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어찌 헤쳐갈까요? 기어이 아이에게 출생의 비밀을 대물림해줄 셈인가…
삶에 집착 없는 성격이라 그런지 허무한 끝을 맞이하거나, 정신이 무너져버리는 경우가 많네요. 배드 엔딩 루트에서 망가져 버린 미즈히토는 좀 무서웠습니다. 러시아 여자가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여기에 잘못 걸려 뜻하지 않게 공범자가 되어버린 히데오도 불쌍하고. 짝사랑하는 여자 챙기다가 이게 웬 봉변인가요…;; 악몽이 따로 없을 듯하네요. 그 성격에 회복하기도 힘들 테고.
- 후지타 히토시
노미야 가의 충실한 집사. 후지타는 영국인과 일본인의 피가 섞인 혼혈아로 태어나 이래저래 고생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원래 유리코의 피아노 강사로 노미야 가에 고용되었지만, 유리코가 피아노 수업은 뒷전이라 다른 집안일 돕다 보니 가주의 신뢰를 얻어 집사 자리까지 올랐다고 하네요. 실질적으로 집안일과 재산을 관리하는 노미야 가의 기둥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처음에 신분 차이와 자신의 입장 때문에 유리코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나중에 감정이 폭발해 결국 자신의 마음을 인정합니다. 저택 내에서 하녀들과 연애한 적도 제법 되는 모양이지만, 번번이 미즈히토에게 빼앗기고 좌절. 그 후 체념하고 3년간 솔로 인생이었나 보네요.
그간 갈고 닦은 집사 근성인지 유리코와 결혼하고 나서도 유리코에게 물 한방울 안 묻히네요. 모유 페치는 좀 부담스러웠어요. 그간 억눌려 살아온 탓인지 원래 그런 성향인 건지, 제법 변태끼가 충만하고. 그나저나 쿄코 부인 무서워요. 이 사람하고는 적당히 거리를 두며 지내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겉으로 적당히 교류하면 이득을 보겠지만, 어두운 쪽으로 깊게 관여하면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너무 많이 알면 다칩니다. 맛 간 눈빛 무섭구먼.
- 오자키 히데오
남작가 장남으로 육군 소위. 유리코의 소꿉친구로 결벽증에 고지식한 성격입니다. 어릴 때는 유리코와 친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소원해졌지요. 한때 유리코와 히데오 사이에 혼담이 오갔으나 오자키 가를 업신여기는 유리코의 부모님 때문에 파탄 나고, 이에 격분한 오자키 가 사람들은 더 좋은 집안 아가씨를 히데오의 상대로 물색했다나 뭐라나.
유리코와는 어린 시절 사이좋게 어울렸는데, 정작 나이대가 더 가까운 미즈히토와는 줄곧 사이가 안 좋습니다. 성격차도 있고, 서로 본능적으로 연적임을 감지했기 때문일지도…? 성격상 유리코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지도 못할뿐더러, 귀한 집안과 혼담이 맺어지는 판국이라 그냥 자포자기 심정으로 유리코를 차갑게 대한 듯하네요. 히데오는 유리코를 사랑하긴 하지만 여러모로 주저하고 있어서, 서로 마음이 확실히 통하기 전까지 유리코가 조금이라도 거부하거나 물러서면 그냥 포기해버리곤 합니다.
뭐, 히데오는 굳이 유리코랑 안 맺어져도 후작가 아가씨랑 결혼해서 잘 살 것 같아요. 후작가 아가씨가 제법 올곧고 똑부러진 성격이라 상성이 잘 맞을 듯합니다. 「여탐정」엔딩에서 결혼해서 조류학자로 전직해 잘 먹고 잘 산다고 슬쩍 근황이 나오기도 하고요.
- 마지마 요시키
공략 캐릭터 중 제일 준수하게 생긴데다, 대놓고 복흑 필을 풍겨서 이래저래 기대한 인물입니다. 플레이해보니 마지마가 이 게임의 진 히어로네요. 중간에 멋모르고 몇 번이고 루트 달렸는데, 매번 배드 엔딩만 나와서 의아했는데… 루트 제한이 걸려 있습니다. 삽질했습니다…^^;
노미야 가에 불행을 몰고 온 흑막. 최종보스. 그 정체는 ‘어둠의 아편왕’이라는 불리는, 마약 밀매 조직 두목입니다. 모든 일의 발단은 부모 대세의 과오이지요. 복수심에 불타 노미야 가에 숨어든 마지마는 차근차근 노미야 가를 무너뜨리는데…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고 혐오해 마지않는데, 막상 자신이 동복 누이인 유리코에게 강하게 끌려 번뇌하는 모습은 좀 안타깝습니다. 유리코도 어릴 적 마지마를 처음 만났을 때 기묘한 끌림에 은근히 연정을 품었고… 핏줄로 타고난 건지 두 사람 모두 독특한 체향을 풍긴다고 합니다.
근친 좋아요. 뒤돌아서면 남 되는 일반적인 연애와 달리, 결코 끊을 수 없는 유대 좋아요. 그래서인지 저는 철저하게 혈연 자체를 부정하고 상대를 이성으로만 보려고 하는 상황은 그리 안 좋아하는 편인데, 여기서는 마지마가 유리코를 여동생으로 인정하면서 모든 걸 받아들이는지라 OK. 지독한 딜레마 속에서 결국 유리코의 손을 잡았어요. 한번 마음을 다잡은 이상 결코 후회하지도, 물러서지도 않겠죠. 번뇌의 근원이자 유일한 행복인 유리코를 향한 절절한 애정이 애틋합니다.
마지마는 다른 루트에서 복수를 시작하면 스스로 주체 못하고 폭주하는데, 이는 결국 마지마 본인에게도 엄청난 불행일 듯싶네요. 유리코 곁에 있고 싶어서 복수를 뒤로 미루고 얌전히 지내던 마지마가 ‘유리코를 남에게 빼앗길 바에야 차라리 다 부숴버리겠다!’라는 마음 때문에 날뛰기 시작한지라, 유리코가 불행해지면 그 타격이 결국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올테고…
해피 엔딩 「숨겨진 마음」에서 마지마는 평생 유리코에게 진실을 숨긴 채 자기 혼자 어두운 부분을 끌어안고 살아가겠네요. 마지마에게는 유리코와 함께 하는 생활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기에 그 정도를 감내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친모가 진실을 알아챘으니 복수도 나름 성공했고? 유리코의 마음을 알게 된 이후 복수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긴 했지만요.
「악인」엔딩에서는 자기의 고뇌도 모르고 무조건 매달리는 유리코에게 열받았는지, 진실을 밝히고 여동생으로서 곁에 두는군요. 어딘가 비틀어진 관계지만 같이 어둠을 짊어지고서 마지막까지 함께 할 테니 행복한 걸까요? 다른 루트에서 길 잘못 타면 볼 수 있는「상해 애완인형」 엔딩도 마지마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행복한 결말인 것 같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철부지 양갓집 규수인 유리코가 신분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일어서려는 모습을 보이는 건 마지마와 관련된 루트네요. 유리코가 진실을 알게 되는 노멀 루트 「여탐정」엔딩에서 두 사람이 이별하는 모습도 제법 인상 깊어요. 유리코는 마지마를 마음에 품고 있고, 마지마 역시 유리코를 사랑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희망도 기약도 전혀 없이 끝맺는지라 짠합니다. 아무래도 평생 서로 그리워만 하다가 생을 마칠 거 같아요. 마지마는 진상이 밝혀진 이상 결코 유리코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겠지만, 어디선가 유리코를 지켜보고 있을까요?
올클리어하면 열리는 종막은 아로마리에의 전통인 개그 만발 오마케네요. 주요 등장인물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온갖 독설을 퍼부으며 여전히 서로 갈구기 바쁜 모습…^^; 성대한 불꽃놀이(…^^;;)로 마무리 짓는 모습이 나름 훈훈…? 전작처럼 오마케가 동영상이 아니라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전작인 『은의 관 푸른 눈물』은 좀 미묘했는데, 이번 작품은 참 재미있게 플레이했습니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어둡고 비틀린 분위기에 애잔한 정서가 어우러져 마음에 들었어요. 여성향 게임 치고는 퇴폐적 성향이 좀 강해서 내성이 필요할지도… 전 그 점이 좋았지만요. 어쨌거나 팬디스크 강력 희망! 음악도 꽤 마음에 들어서 OST도 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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