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의 관 푸른 눈물

어느 날, 2년간 사귄 연인 신이치로로부터 갑작스러운 프러포즈를 받게 된 아야. 신이치로를 사랑하지만, 결혼이나 장래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아야는 이에 크게 당황합니다. 주저하던 아야는 신이치로와 함께라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여 가정을 이루게 되지요. 그러나 결혼 후 남편은 일에 매달려 좀처럼 가정을 돌보지 않고, 알게 모르게 남편과 엇갈리는 와중에 아야는 외로움에 젖게 되는데…

 

지난 5월 말에 발매된 18금 여성향 어드벤처 게임으로, 『달의 빛 태양의 그림자』로 호평을 받았던 아로마리에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의 어둡고 비틀린 설정 못지않게, 이번에는 남편을 두고 다른 남정네와 놀아나는 불륜이라는 파격적인 설정 덕분에 호불호가 갈릴 듯하네요.

공략대상은 2년의 연애 끝에 결혼한 남편 신이치로와 남편의 절친한 친구인 아사노, 아야의 취미인 인터넷 쇼핑 때문에 자주 얼굴을 맞대는 택배배달원 하루나, 단골인 헤어살롱의 점장 카미오, 마음속에 아야에 대한 연심을 품고 있는 직장부하인 료 등 총 다섯 명입니다.

남편인 신이치로는 아야를 너무도 사랑하고 애정표현도 확실히 하는 편인데, 상대를 배려하는 방식이 좀 어긋나 있다고나 할까… 상대와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기보다는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혼자 해결하려 들어서 아야와 엇갈리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별다른 말도 없이 아내를 방치해둔 것도 그렇고… 암만 생각해도 일방적으로 아내에게 부재중 메시지로 혼인신고서를 알아서 처리하라고 남긴 건 좀 심하긴 했죠.

신이치로 본인도 자기 잘못을 알고 있는데다 아야를 사랑하기 때문인지, 아야를 탓하는 일 없이 아야의 선택을 존중해줍니다만… 이게 둘이 깨끗이 갈라설 때는 괜찮지만, 아야가 신이치로와의 결혼 관계를 유지하면서 외도를 하는 캐릭터별 배드엔딩에서는 좀 문제네요. 신이치로는 아내가 바람 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평생 모른 체하고 살아갈 셈? 모든 캐릭터의 해피엔딩을 보고 나면 열리는 귀축루트에서는 질투와 독점욕으로 살짝 정신이 나가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한 명이랑 바람 피는 건 용서해도, 두 명 이상은 용납할 수 없는 모양이신 남편님…

신이치로의 오랜 친구이자, 직장에서의 직속 부하인 아사노는 불우한 어린 시절로 인해, 포기하고 버림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 주변과의 언제나 선을 긋고 거리를 두는 타입입니다. 그동안 자신과는 인연이 없었던, 하지만 마음속 깊이 동경하고 있던 행복한 가정을 꾸린 신이치로에 대한 선망과 마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홀로 외로움에 떠는 아야에 대한 연민,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매달리는 아야에게 샘솓는 애정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뒤엉켜 아야에게 마음이 기울게 되는 듯. 아사노 엔딩에서는 아야를 떠나보내는 신이치로가 안쓰럽더군요.

하루나 루트에서는 아야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마코토의 등을 밀어주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이 나름 괜찮더군요. 자신의 꿈을 저버리고 오로지 아야에게만 매달리는 배드엔딩은, 꿈도 희망도 없어 보여 답답하지만…

카미오는 캐릭터도 그렇고 시나리오도 그렇고 영 취향이 아니라서 플레이하면서 괴로웠습니다. 저는 사실 파생엔딩인 신이치로 엔딩이 마음에 들었어요. 카미오의 유혹을 뿌리치고 신이치로와 함께 다시 시작하려는 아야의 모습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호텔의 알바생으로 아야의 직장부하인 료는 원래 타인에게 무심한 성격인데, 짝사랑하는 아야에게만은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아야의 작은 변화도 민감하게 캐치해내곤 합니다. 본인 루트에서는 아야의 무신경한 발언에 울컥해서 일을 저지르지만, 평소에는 자기감정을 꾹꾹 누르며 아야를 위해 주는 순정파. 어느 루트를 가든 아야를 신경쓰고 배려해주는 모습이 좋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놓고 막장!?

전 캐릭터 엔딩을 보고 귀축루트를 거친 후 마지막에 밟을 수 있는 3P 루트. 대체적으로 아사노 루트와 흐름이 같지만, 다른 건 아사노랑 아야가 두 사람 사이의 연결점이자 소중한 존재인 신이치로를 항상 염두에 둔다는 점…일까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신이치로와 어차피 자신은 버림받을 거라 포기하고 있던 아사노를 앞에 두고 아야가 내놓은 답은 둘 중 누구도 버릴 수 없다는 말. 결국 아야의 뜻을 받아들여서 세 사람이 함께하기로 합의합니다.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인정되지 않겠지만, 세 사람 사이에선 해피엔딩. 저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잘라내면 다들 죄책감과 상실감에 허덕일 게 뻔히 보이니… 세 사람이 서로서로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성립 가능한 결말이겠지요. 세 사람 다 어딘가 망가져 있는 것 같지만, 당사자들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좋을지도요.

이야기 내에서는 별 언급 없이 지나가지만, 아마도 신이치로는 도청기에 녹음된 내용을 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없는 새에 두 사람이 정분 난 건 속쓰리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신이치로의 존재를 꼬박꼬박 언급하는 걸 듣고는 내심 안도감(?)이 들었을지도… 때문에 자신도 한 발짝 물러서서 두 사람 관계를 묵인할 생각을 했겠죠.

초반에 신이치로의 호감도를 최고로 올리지 않으면 아야와 신이치로는 결혼에 이르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되고, 호감도가 가장 높은 캐릭터와 잘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어정쩡하게 엔딩. 아야가 신이치로와 결혼한 후에야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서네요. 올클리어 후 오마케가 여전히 웃기지만 어째선지 동영상이라 자동진행에 화질도 나쁘고 소리도 작게 들려서 영 안 좋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