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술쟁이 My Master

조금 멍한 느낌의 여고생 쿠루미는 사물에 대한 집착이 옅고, 포기가 빠른 성격의 소녀. 그런 그녀가 강하게 동경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푸른 장미입니다. ‘불가능’이란 꽃말을 가진 푸른 장미가 꽃피게 되면 자신에게도 기적이 일어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요. 어느 날, 하교중에 신비한 빛에 휘말려 정신을 잃은 쿠루미는 낯선 숲에서 깨어납니다. 쿠루미는 그곳에서 이상한 외견을 가진 류카라는 인물을 만나 그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오히려 류카에게 붙잡혀 희귀한 생물로서 팔려갈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뭐가 뭔지 전혀 상황 파악이 안되는 쿠루미 앞에 그녀를 사가겠다는 두 인물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녀가 팔려간 저택에서 그녀를 맞이한 것은 유별나고 괴팍한 주인님이었으니…

 

슈가빈즈에서 발매한 18금 여성향 게임『심술쟁이 My Master』입니다. 슈가빈즈의 전작인 『Under The Moon』을 꽤나 즐겁게 플레이해서 이번 작품도 제법 기대하고 있었어요.

게임 중간중간에 익숙한 배경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리운 인물인 아셰가 얼굴을 비춰주기도 해서 전작 팬이라면 매우 반가운 마음이 들 것같습니다. 게임 내용중 언급되는 마왕에 관련된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마왕은 바로 그사람이구나!’ 하는 필이 와서 반갑습니다(역시 오피셜 커플링!)

 

  • 레온

메인 시나리오에 오피셜 커플링이라는 분위기가 팍팍 풍기는 레온 루트. 레온은 유아독존에 기분파이긴하지만, 의외로 상당히 단순한데다 바보입니다. 처음엔 제멋대로에 고압적인 레온에게 쿠루미가 계속 휘둘리며 굽신거려야하나 해서 좀 걱정했는데, 초반에만 좀 참고 잘 길들여 놓으면 나중엔 개과천선해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레온이 쿠루미에게 마음이 기울며 애정을 쏟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역시 트루엔딩은 1번 엔딩 ‘푸른 장미의 신부’겠죠. 이 루트에서 전형적인 악역 캐릭터인 레온의 전약혼자 나탈리가 등장했을 땐 혹시나 짜증나는 전개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레온이 확실히 선을 그어줘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쿠루미가 레온의 저주를 풀기 위해 제물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3번 엔딩 ‘하얀 날개의 기적’ 쪽도 꽤 괜찮았어요. 시한부 연인에 맺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점 때문에 애절계 분위기였어요. 사실 이런 식의 자기 희생은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나저나 레온, 마왕에게 도전하는 건 둘째치고 겁없이 아셰에게 찝쩍대다니 간이 부었구나! 레니는 아셰 일이라면 눈이 뒤집힐 게 뻔한데… 랄까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 아닐런지. 상대가 레니 아닌 세이쥬였다면 유혈사태 일어났을 것 같다.

  • 델타

마법이 주류인 마계에서 과학연구에 온 힘을 쏟는 괴팍한 과학자 델타. 그가 가진 지식은 어딘가 핀트가 맞지 않는 구석이 많아서, 쿠루미를 아연하게 만들곤 합니다. 델타랑 아인스가 나사빠진 대사로 투닥거리는 걸 보면 무지 웃겨요. 레온 저택보다 델타네가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라 플레이하는 동안 재미있었어요(루트 갈리면서 꿀꿀한 내용이 나오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3번 엔딩 ‘장미와 미래와 당신 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나리오 진행도 이쪽이 더 평온하고 따뜻한 분위기이기도 하고 말이죠. 델타와 에반스에, 로보까지 가세해서 왁자지껄 한 분위기가 참 즐겁습니다.

  • 아인스

레온의 사역마 아인스. 레온 주변의 사람들이 다 떠나가도 그만은 레온 곁을 지키며 그 고압적인 성격을 다 받아준달까… 오랜 세월동안 함께 해서 레온을 다루는데 익숙해 졌는지 레온의 행동을 적당히 흘려 넘기며 바보 취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레온의 횡포에 휘둘리는 쿠루미를 격려하며 다정하게 대해줍니다만, 속으로는 어두운 감정을 숨기고 있습니다.

후반전개가 참으로 꿀꿀한 내용이라서 썩 기분이 좋진 않더군요. 감언이설로 여자아이를 속여서 이용해 먹으려드는 놈팡이는 다 죽어버려라!! 쿠루미한테 그런 심한 짓을 해놓곤 나중에 달려와서 소중한 여성이라 말해봤자… ‘네놈에겐 쿠루미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래도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쿠루미와 함께 살아갈 결심을 했으니 그걸로 된거려나요…

  • 에반스

델타의 조수자리를 꿰차고 눌러앉아 연구소에서 식객 노릇을 하고 있는 에반스. 사실 그는 마법연구소 소속으로 마계에서 손꼽히는 마법사인 듯합니다만, 마법과 마법연구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에반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마법을 경시하고 자신의 마법을 소 닭보듯 하는 델타의 태도가 무지 좋은 모양입니다. 겉보기엔 밝고 유쾌해 보이는데 어릴 적 실험재료로 취급당한 성장과정 때문인지 감정이 결핍되어 있고, 애정을 갈구하는 나머지 쿠루미에게 강한 집착을 보입니다. 이런 타입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정신건강상 좋을 것 같습니다만… 실제로 에반스 루트의 에반스보다 델타 루트에서의 에반스가 더 호감입니다.

에반스 본인 입으로 “박사는 쿠루미 다음!” 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어째 에반스의 행동을 보고 있자면 쿠루미가 델타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같아 찝찝합니다. 특히 배드엔딩보면 이건 대체 뭐시다냐 싶은게… 상대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나머지 집착하고 속박하는 전개는 용납할 수 있는데, 에반스처럼 딴데 한 눈 팔면서 어정쩡하게 물건 취급하는 건 싫습니다.

  • 류카

쿠루미가 마계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인물로, 마계에 떨어진 쿠루미를 주워 다른 사람에게 팔아 넘기려 했던 장본인인 류카. 의외로 발이 넓어서 어느 루트를 진행하든 얼굴을 내비치곤 합니다. 쿠루미를 팔아 넘기려고 하긴 했지만, 본인에겐 전혀 악의는 없습니다. 쿠루미가 팔려가기 싫다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면 불쌍하니 자연으로 돌려보내야지~라면서 풀어주고, 갈 곳이 없어서 뒤쫓아가면 친절히 거둬주기도 하니까요.

평소에는 멍하고 늘어지는 말투에 어린애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만, 밤만 되면 사람이 돌변해서 쿠루미를 매우 당황하게 합니다. 류카에게 마음이 기울고 나서는 정열적인 밤류카와는 달리 자신을 여자로 봐주지 않는 낮류카 때문에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는 쿠루미양. 대체 낮류카의 어디가 좋았는지는 잘 이해가 안가지만… 낮류카의 마음을 손에 넣느냐 포기하느냐에 따라 엔딩이 갈리네요. 개인적으로는 밤류카와의 엔딩이 분위기가 좋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 프란츠

어떤 조건을 만족하면 공략할 수 있는 숨겨진 캐릭터 프란츠. 초반에는 정말 애잡겠다 싶을 정도로 쿠루미를 대하는 게 살벌하기 그지 없습니다만, 실은 그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겉보기엔 S인데 사실은 자학적입니다. 자기감정을 주체 못해서 쿠루미를 울려 놓고는, 속으로 엄청 후회하고 자학하는 타입이랄까…

처음에 프란츠의 본심을 듣고, 단지 쿠루미가 고생을 덜 했다는 것만으로 그런 태도는 좀 심하지 않나 싶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프란츠가 쿠루미에게 심하게 군 건, 쿠루미가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는 존재인 탓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프란츠는 자신의 과거와 함께 쿠루미에 대한 마음도 잘라버릴 심산이었을 듯. 하지만, 그렇다고 차마 쿠루미를 자기손으로 끌어낼 순 없고 해서 차라리 미움을 받아 떠나보낼 생각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짠하네요. 만약 쿠루미 스스로 떠나갔으면 그 속이 썩어 문드러져도 꾹꾹 참고 견뎠겠지만, 그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곁에 남은 쿠루미는 여전히 사랑스러워서 마음속에서 넘쳐나는 애정을 주체할 수 없고… 아아, 너무 안쓰럽다! 아무래도 저는 프란츠×쿠루미 커플을 응원해야 겠습니다..

초반부에는 엄청 험악하게 굴어서 좀 거북합니다만, 그래도 오래 전부터 일편단심 쿠루미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나마 용서가 됩니다. 나중에는 제법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프란츠로서 쿠루미와 마계에 남는 1번 엔딩 ‘마계의 하얀 장미’랑 배드엔딩인 2번 엔딩 ‘리셋’이 마음에 들었어요. 3번 엔딩 ‘푸른 하늘 아래에서’는 이계진입물로써는 왕도적인 결말이긴 한데,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 역시 호무라군보다는 프란츠 쪽이 좋아서…

시스템이 굉장히 편리한데다, 메뉴나 선택창, 대화창 등이 예뻐서 대만족. 정말 세심하게 신경썼다는 느낌이네요. 전작만큼 맹렬히 불타오르는 캐릭터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했습니다. 사실 『Under The Moon』에서는 엄청 싫어하는 캐릭터도 몇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렇게까지 싫은 캐릭터는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프란츠가 꽤 마음에 들었어요. 밤류카도 괜찮았고요.

종족차이로 인한 수명문제가 각 루트마다 너무나 상황좋게 착착 해결되는 게 좀 작위적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사랑하는 두 사람이 행복하면 그걸로 됐으니 크게 신경쓸 문제는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