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들과 공주님

베이크 왕국에서 왕의 서녀로 태어나 탑에 유폐되어 자란 율리아. 영문도 모른 채 갇혀 지내는 그녀는 자신을 잘 따르는 동물들과 함께 실을 잣고 옷을 지으며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역을 일으킨 숙부가 찾아와 율리아에게 자결을 종용하고, 율리아는 우여곡절 끝에 동물들과 함께 도주하게 됩니다. 그런 율리아의 수중에 있는 물건은 어머니의 유품인 작은 주머니와 늘 즐겨 읽던 책 한 권. 무언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어머니의 유품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고 주머니 안을 들여다보자, 거기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일곱 빛깔의 가루가 들어 있었는데…

오토메이트에서 내놓은 『맹수 조련사와 왕자님』의 후속작입니다. 플레이한 지는 오래돼서 가물가물 하지만, 밀린 감상을 털어내고자 끄적끄적. 전작은 그럭저럭 재미있게 했는데 이번 작품은 평이 영 별로여서 그리 기대는 안 했지만… 볼륨이 빈약하고 재미가 없네요. 일러스트와 인터페이스가 예쁘긴 했지만 그게 다군요. 아, 회차에 따라 프롤로그 내용이 바뀌는 건 좋았네요.

공략 대상은 오랫동안 율리아와 함께 지내던 반려 동물인 기품 있는 하얀 말 리샤르트, 충실한 사냥개 루드빅, 노랫소리가 아름다운 카나리아 미아슈, 겁쟁이 곰 요제프, 율리아의 사촌 오빠인 헨릭, 변태 기질을 보이는 수상한 마술사 등 총 여섯.

이야기는 1~2장이 공통 루트이고 3~4장이 개별 루트입니다. 몇 없는 선택지를 고르거나 FMMS(프리 모후모후 시스템)에서 동물을 잘 쓰다듬어 호감도를 올리면서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명성도와 호감도에 따라서 엔딩이 갈리게 되는데… 분량도 적고 이야기가 정말 얄팍하네요. 게다가 몇 년 동안 동고동락한 반려동물들이 인간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순식간에 연애 감정이 싹트는 게 영 마음에 와 닿지 않아서 떨떠름합니다. 특히 곰돌이는 새끼 때부터 거둬 키운 모양인데… =_=;;

사촌 오빠인 헨릭은 그나마 율리아를 아끼고 챙겨주는 인물이라 괜찮은 듯. 초반에 율리아를 죽이려던 자기 아버지를 저지하기도 하고, 도망친 율리아의 뒤를 쫓다가 동물화 되어 이런저런 일을 겪으니… 이번 이야기의 흑막인 마술사는 동기가 유치하고 찌질해서 얘는 뭔가 싶은 생각이 모락모락…

진실을 알고 돌이켜 보면 사정을 모르는 숙부 때문에 크게 사달이 날 뻔했군요. 하지만 사정도 말 안 해주고 무조건 희생을 강요하다니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율리아가 옷을 지으면 헨릭이 이걸 대신 팔아줘서 생활을 꾸렸다고 나오던데, 아무리 왕국에서 사정상 율리아를 유폐시켰다고는 해도 생활비 지원도 안 해줬나 싶어서 짜게 식네요.

맨 마지막에 열리는 if 루트는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모여서 행복해지는 이야기. 마치 동화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마무리네요. 그래 봤자 if지만…

전작만 못 해서 실망스럽긴 한데, 전작과 연결되는 내용이 나올 땐 슬쩍 반갑기도 하네요. 하지만 전작 플레이어든 신규 플레이어든 비추합니다. 그나저나 본편이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팬디스크 발매가 발표난 걸 보니, 어째 본편에 들어갔어야 할 내용을 따로 빼서 팬디스크로 내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데… 실제로 본편에서 해결되지 않은 내용이 많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