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퀘스트 11: 지나간 시간을 찾아서

평화로운 돌의 마을에서 자란 주인공은 16세 생일을 맞아 성인식을 치른 뒤, 본인이 바로 과거에 세계를 구했다는 용사의 환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용사로서 커다란 사명을 짊어지게 된 주인공은 어머니의 말에 따라 조력을 얻기 위해 대륙 제일의 대국 델카달의 왕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델카달 성에 도착한 주인공은 자신이 용사라는 사실을 밝히지만, 델카달 왕은 주인공을 악마의 자식이라 부르며 주인공을 감옥에 가둬버리는데…
일본의 국민 RPG로 명성이 자자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최신작입니다. PS4판과 3DS판으로 동시 발매됐습니다. 현재 일본어판으로 정발되었고 한국어판으로도 정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전 여태 이 시리즈를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었네요. 기껏해야 외전격인 『토르네코의 대모험』을 조금 해본 게 다라서…

제가 플레이한 PS4판은 고전적인 분위기가 풍기면서도 그래픽이 화려해서 눈이 호강하는 느낌…인 것은 좋았으나, 보물 상자나 소재 아이템 수집하기가 좀 힘들더군요. 지도에 수집 아이템이나 보물 상자 위치가 표시되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나저나 요즘 같은 시대에 음성을 안 넣다니 좀 아쉽네요. 진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랜 전통 운운 하는 소리도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전통을 따질 거면 일관성 있게 예전 그래픽이나 인터페이스를 함께 고집하든가… 음성을 따로 DLC로 내줄 것 같지는 않고, 만약 음성이 들어간다면 훗날 나올 스위치판이 가능성 있을 듯?

왕도적인 용사 이야기인데, 그래픽과 연출이 멋진 데다 캐릭터도 다들 개성있고 매력적이었네요. 특히 마음에 든 인물은 주인공 인생 내리막길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해준 파트너 카뮤랑 기가 센 천재 마법사 베로니카. 마음에 든 커플링은 카뮤랑 세냐인데, 카뮤가 이래저래 은근히 세냐를 마음에 두고 챙겨주는 게 눈에 보여서. 카뮤랑 베로니카가 연애 감정 전혀 없이 티격태격 아웅다웅하는 것도 귀여운데, 두 사람이 세냐를 사이에 두고 제부 대 처형의 불꽃 배틀을 펼쳐도 꽤 흥미진진하겠다 싶네요. 그런데 카뮤는 어째 말하는 걸 보면 연애나 결혼에 대단히 부정적이고 세냐는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둘이 연애 감정으로 가까워 지는 건 상상이 잘 안 감.

이야기 진행은 총 3부 구성. 1부는 용사의 사명을 위해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악마의 자식으로 몰려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와중에 여정을 함께할 동료들을 만나 생명의 대수까지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고, 2부는 마왕 우르노가에게 정복당한 세계에서 다시 동료들과 재회해 우르노가를 쓰러뜨리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2부에서 보스를 쓰러뜨리면 일단 엔딩이 나오는데, 마지막 투 비 컨티뉴드 찍으며 뒷 내용이 더 있음을 알려주네요.

3부는 잃어버린 것을 돌이키기 위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이 진정한 흑막과 대적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3부 내용은 그냥 후일담 같은 덤이 아니라 정식 스토리에 포함되는 내용이라 다 해봐야 할 듯해요. 덜 풀린 떡밥이나 게임의 부제에 담긴 의미도 드러나고.

3부는 전작을 플레이해봤다면 여기저기 감동할만한 포인트가 많다는데, 전 안 해봐서 잘 모르겠네요. 3부 플레이 시간이 길기는 한데 앞서 내용보다 스토리의 밀도가 떨어지고, 레벨업(쉽게 올릴 수 있는 꼼수가 있어서 정말 다행임)이나 장비 작성 등 이것저것 자잘하게 해야 하는 것이 많아서 좀 지겹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넬슨의 시련에서 이전 맵 재탕한 거랑 소원 성취를 위해 다섯 번이나 찾아가야하는 것도 좀 귀찮음.

각 마을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이벤트는 시간을 되돌아오기 전의 기존 세계와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다들 행복해졌는데 운명이 바뀌지 않은 사람도 있어서 좀 씁쓸한 마음이 들긴 했어요.

이야기의 중요한 축이 과거로의 시간 이동인데, 아마 특정 인물이 시간 여행으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과거 자체가 리셋되는 게 아니라 평행 세계로 분기하는 것 같네요. 세니카가 과거로 돌아간 후에도 3부의 세계는 멀쩡했고. 각 평행 세계 사이에 서로 영향을 주는지 기묘한 기시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만… 어쨌거나 그렇다면 게임 상 드러나는 평행 세계는 총 세 개인데…

첫 번째는 베로니카가 사망하고 용사는 과거(다른 평행 세계)로 떠난 후 동료들이 남게 된 세계. 한바탕 시련을 겪고 마왕을 물리친 후 평화가 되돌아 오긴 했지만 남겨진 동료들은 평생 베로니카와 용사의 빈 자리를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갈 테니 이래저래 좀 씁쓸한 느낌이…

두 번째는 용사가 과거로 돌아와 베로니카를 살려내고 우르노가를 무찌른 뒤 진정한 흑막과 대치하게 되는 세계. 이미 알았던 과거를 바꿔서 동료를 잃게 되지도, 재앙이 닥쳐오지도 않게 되었고 진정한 흑막을 물리친 데다, 불행한 운명을 맞이했던 세니카까지 시간을 되돌려 운명을 바꿀 수 있었으니 해피엔딩…이긴 한데, 솔직히 세니카가 과거로 돌아갈 때 용사의 이야기는 전부 없었던 일이 되는 거 아닌가 좀 조마조마했지만 결국 패럴렐 월드로 갈라져서 분기해버린 듯.

세 번째는 세니카가 과거로 돌아가 로슈를 구하고 아마도 니즈젤파를 무찌르는 세계. 이 세계에서는 그 후의 미래가 바뀌어서 게임 본편의 이야기는 백지화될 것 같은데… 마지막에 나온 책이나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은 이전작과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음.

그나저나 모험이 일단락되고 주인공과 로우는 망한 나라를 재건이라도 하려나 싶었는데 그런 내용은 안 나오네요. 결국 주인공은 돌의 마을 주민으로 살아가게 되려나요…? 엠마와는 깨가 쏟아지는 것 같고, 조만간 가족도 늘어날 테니 잘 먹고 잘 살겠거니…

꾸물거리며 진행했는데 총 플레이시간은 160시간 남짓이네요. 모든 요소를 올클리어한 건 아니고 대강 트로피 딸 수 있을 정도로만 했으니 좀 더 완벽을 기했더라면 더 걸렸겠네요. 다행히 트로피 조건은 까다로운 편이 아니라서 좋았습니다. 만약 모든 아이템 수집이나 모든 퀘스트 클리어 등 완벽을 요구했다면 좀 짜증 났을 것 같네요.

게임 하면서 느낀 자잘한 불만
라인-풀

지도에 수집 아이템이나 보물 상자 위치가 표시되었으면 좋겠음.

연출이 화려하고 유용한 연계기가 이것저것 많은데, 존에 들어가는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워서 잘 안 쓰게 됨.

보건 퀘스트 표적이 너무 작아서 찾기가 어려움. 전 공략 보고 하긴 했는데, 다른 분들은 다 어떻게 그걸 다 찾아냈는지 원…

경마에 중요 아이템을 내건 사마디 왕에게 분노함. 경마 따위 하기 싫지만 최강의 검 제작을 위해 꾸역꾸역 말을 달리는데 옆 주자가 자꾸 몸통 박치기 해대서 스트레스 쌓임.

 넬슨의 소원 중 엠마와의 결혼은 어이 상실. 주인공과 엠마는 이미 게임 시작 시점에서 호감도 맥스를 찍은 거 같고 거의 마을 공인 예비 부부 분위기였지만… 이 커플링을 딱히 반대하지는 않는데(그렇다고 지지하는 것도 아니지만), 주인공 스스로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얼렁뚱땅 소원 성취로 맺어지는 건 대체 뭐지…? 안 그래도 플레이어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어필할 만한 이벤트가 부족한데, 그렇게 날림으로 처리하지 말고 하다 못해 결혼식 이벤트라도 제대로 만들어 달라고…;;

이 작품의 3부 내용이 과거 시리즈와 연관성이 있다는 모양이니 전작이 어떤지 좀 궁금하네요.  클리어 특전으로 『드래곤 퀘스트 1』 무료판을 얻게 됐으니 일단 1편은 플레이하게 될 듯한데… 다른 작품은 모바일판으로 할 지 말 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