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고쿠 나츠히코의 데뷔작이자, 교고쿠도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민속학과 종교학, 요괴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내서 그 계열에서는 매우 유명한 모양입니다. 교고쿠도 시리즈는 민속학과 괴담을 소재로 풀어나가는 미스터리 추리소설로써, 이 책을 시작으로 『망량의 상자』, 『광골의 꿈』, 『백기도연대』, 『철서의 우리』로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진실을 밝혀내는 탐정 위치에 있는 인물의 애칭은 교고쿠도이고 이름은 아키히코. 작가의 분신이며 대변인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명인 것 같네요. 화자인 세키구치는 이것저것 단서를 물어와 교고쿠도에게 풀어놓는 조수격 인물입니다. 처음엔 세키구치가 어디까지나 제삼자 입장인 줄 알았더니 사건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어 놀랐어요.
고교쿠도가 요괴나 괴이 등을 신비의 영역으로 치부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파헤치는 것이 인상적이더군요. 요괴 믿지는 않지만 그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그 원인을 파헤쳐 규명한다… 그 내용이 제법 수긍 가는지라 교고쿠도의 기나긴 장광설도 그리 나쁘진 않았어요. 인간이 미지의 영역에 공포를 느끼고 이를 터부시하는 것도 사실이고. 이야기 속에서 온갖 악의와 인습이 한데 뭉쳐 저주로 바뀌고 그 결과 요괴가 탄생하는 과정이 참 씁쓸하네요.
교고쿠도의 설교 중에서 뇌의 거짓말과 인지부조화에 관한 부분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예전 훤한 대낮에 눈앞에 아는 사람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는데 전혀 인식 못 한 적이 있었거든요. 제 바로 앞에 선배가 서 있다는 것도 몰랐고, 선배 목소리―제 옆에 서 있던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도 못 들었고, 제 눈앞에 선배가 손을 흔들어대던 것도 인지 못 하다가 한참 뒤에야 선배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완벽하게 그 선배의 존재만 인식 못 한 것이죠. 이건 정말 남의 일이 아니다…;; 제가 딱히 그 선배를 싫어한 건 아니고, 보지 말았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요. 소설 속에서 극단적으로 나오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