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학원에서 운영하는 공식 사이트 ‘교실’에서 인연을 맺게 된 채팅 친구 아이리스, 섀도, 라라, 미스티, 그리고 미즈키. 서로 같은 입시학원에 다니는 여고생이란 사실만을 알던 다섯 명의 소녀들은 아이리스의 제안에 따라 직접 만나보기로 합니다. 4박 5일 일정의 오프 모임 장소는 외딴곳에 있는 서양식 건물 ‘무라사키 관’.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오프 모임 동안 쓸 새로운 이름을 나눠 가지기로 한 소녀들 앞에 펼쳐진 진실은…?
토모기리 나츠의 데뷔작입니다. 2005년도 코발트 로망 대상에서 가작을 수상한 『걸즈 리뷰 스테이』를 가필 수정하여 책으로 낸 작품이라는 듯하네요. 미나카미 카오리가 그린 표지 일러스트가 예뻐서 전부터 관심은 두고 있었는데, 한참 뒤에야 읽은데다 감상도 미적대다가 이제서야 끄적끄적. 삼끼 양 왈, ‘본격 미스터리’를 표방하였으나 미스터리로써는 함량 미달. 저는 미스터리에 목매는 편이 아니라서 크게 신경 안 썼습니다만… 저는 등장 인물의 감정 흐름을 중심으로 제법 재미있게 읽었어요.
초반에는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외딴 저택 안에 모인 네 명의 소녀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과 정체불명인 마지막 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흥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만… 중반부에 갑자기 종교단체 얘기가 나오면서 뜨악한 감이 생기더니 가면 갈수록 초능력이라든가 예언이라든가 등이 튀어나와 이게 뭐시다냐 싶더군요. 뭐, 신비적인 현상은 미스터리란 단어랑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으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습니다. 어쨌거나 작품 내에 흐르는 어둡고 질척질척한 감정의 교차가 인상적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안 그런 척하다가 어두운 면모를 드러내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좋아해서 후반 반전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뒷맛 씁쓸한 시궁창 엔딩도 분위기가 괜찮았어요.
중반부에 나온 ‘선인과 악인의 긴급 피난’과 결말 부분에서 미즈키가 읊조리는 ‘긴급 피난’이 겹쳐져서 상당히 씁쓸한 느낌입니다. 현실에서는 선택받은 극히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행복해 질 수 없다고 하는 미즈키의 말처럼, 네 명의 소녀들은 구원의 여지 없이 어둡고 음습한 진창 속을 구르다 파멸할 게 뻔히 보여서 좀 안타까워요. 레이사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 결국 파멸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입니다. 소녀가 절망한 순간 파멸의 문은 열렸고, 소녀가 파멸을 바라는 한 구원 따위는 영원히 없을 테죠.
리리컬 미스터리 시리즈 제2권은 이 이야기와 관련 없는 내용이고, 제3권은 미즈키 부모님 세대 이야기인 모양인데… 이미 부모 세대의 결말은 다 드러난 상황이고, 딱히 그들의 과거사가 궁금하지도 않네요. 그나저나 작가는 리리컬 미스터리 시리즈만 네 권 내놓고 활동을 안 하는 모양이로군요. 2007년에 내놓은 마지막 책 『낙원의 바이올린』은 ‘리리컬 미스터리’라는 시리즈 명이 안 붙은데다 일러스트레이터도 다르지만, 책 소개문에 ‘소녀들의 리리컬 판타지’라든가 ‘리리컬 미스터리’란 말을 쓰니 결국 같은 시리즈겠거니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