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로플러스에서 내놓은 18금 남성향 PC게임을 PS2로 이식한 작품입니다. 무음성이었던 PC판과는 달리 내래이션까지 풀보이스. 맨 처음 18금 PC판이 나오고 추가요소를 넣어 이식한 전연령대상 DVD-PG판과 PS2판이 나온 뒤 PC 리메이크판이 발매된 모양이네요. 몇 년 전 국내에 한글화하여 DVD-PG판이 나오기도 했어요. 그리고 올해 10월에 XBOX360판이 발매될 예정입니다. 애니메이션 쪽으로는 망작 취급받는 OVA판과 결말 빼고 그럭저럭 괜찮은 평가를 받는 TV판이 제작되었습니다. 새로 나오는 XBOX360판은 TV 애니메이션 디자인과 설정을 따라가나 봐요.
일본 청소년이 어쩌다 재수 없게 암살 현장을 목격한 뒤 인생 꼬여서 비정한 뒷세계에서 구르는 이야기. 조직과 간부 사이에 벌어지는 암투라든가 츠바이와 아인이 임무 수행하는 모습이라든가…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전개로 펼쳐지는 하드보일드풍입니다 총기 묘사가 세세하게 나오네요. 게임은 흐름에 따라 총3장 구성입니다.
1장은 기억을 잃은 소년이 츠바이라는 이름을 얻고, 조직 최강 암살자 팬텀인 아인 밑에서 암살술을 배우며 조직에 적응하는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원래대로라면 목격자는 깨끗하게 처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소년에게서 재능을 엿본 사이스 마스터의 안배로 기억이 지워진 채 암살자 후보로 거둬들여 진 것이지요. 이 때문에 츠바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인 밑에서 암살술을 익히게 됩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거부감에 몸부림치던 츠바이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암살자의 길을 걷게 되지요. 그 와중에 조직 간부인 클로디아는 츠바이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넌지시 과거의 흔적을 알려주고 조직 내부의 상황도 미묘하게 변하는데…
2장은 사이스 마스터와 아인이 모습을 감춘 후의 이야기. 츠바이가 팬텀의 이름을 물려받고 클로디아 직속 부하로 활동하게 됩니다. 스승이자 동지였던 선대 팬텀 아인을 잃고 상실감에 빠진 츠바이는 직속상관 클로디아와 건조한 내연관계를 맺으며 암살업을 이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무 수행 중 캘 디벤스라는 소녀와 만나게 되고 주변 상황에 휩쓸려 캘을 자신 곁에 두게 되지요. 츠바이는 캘과 함께 하는 동안 작은 안식을 얻게 되는데…
2장에서 엔딩을 맞이할 수 있는 캐릭터는 클로디아와 캘. 두 히로인 모두 츠바이의 공허함을 메워주는 인물이기는 한데… 성격이과 성향이 극과 극이네요. 클로디아는 게임 최고의 팜므파탈입니다. 자기 보신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꺼리끼지 않는 무서운 여자… 클로디아 루트에서 클로디아는 진심으로 츠바이를 사랑했지만 결국 츠바이를 잘라내고 다른 길을 선택하지요. 츠바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엔딩이 갈리는데, 어느 쪽이건 클로디아와 맺어지지 않고 씁쓸한 끝을 맞이합니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만 하는 극단적 상황이 참…
캘은 클로디아와는 달리 순수하게 츠바이를 믿고 따르는 아이. 본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조직과 엃히게 되고, 츠바이는 어떡해서든 캘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암살자 후보라는 명목 아래 캘을 자기 밑에 두는데 불행히도 캘에게는 천재적인 암살 재능이 숨어있었습니다. 캘을 반드시 평범한 삶으로 돌려보내고 싶어하는 츠바이에게 그다지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지요. 그러던 와중 츠바이는 직 내부의 분쟁에 휘말려 위기에 빠지는데… 캘 루트에서 볼 수 있는 엔딩 중 「불길한 망령」이 인상적이었어요. 참 처절하고 비장한 느낌이 풀풀 풍겨서…
3장은 인페르노를 피해 일본으로 도주해 온 츠바이와 아인이 평범한 학창생활을 누리는 모습부터 시작합니다. 츠바이와 아인은 외국에서 살다 돌아온 쌍둥이 남매 아즈마 레이지와 아즈마 에렌 행세를 하며 평범한 학생처럼 지내고 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레이지에게 호의를 품은 소녀 후지에다 미오가 고백해옵니다. 에렌은 레이지에게 미오가 야쿠자 고도파 두목의 숨겨진 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만약의 사태 때 이를 이용하기 위해 미오를 곁에 둘 것은 권하지요. 그리고 방과 후 레이지와 미오가 함께 하교하는 길, 두 사람 앞에 금발녹안의 미녀가 나타나는데…
3장은 2장에서 다른 히로인 루트로 빠지지 않고 아인과 도주했을 때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클로디아는 다른 조직으로 내뺐을 테고, 캘은 사이스 마스터에게 거둬져 드라이라는 이름을 얻고 팬텀이 된 상황. 캘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상심하던 레이지 앞에, 드라이가 되어 돌아온 캘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겠죠. 캘에 대한 죄책감도 어마어마할 테고… 3장에서 엔딩을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아인, 캘, 미오. 아인과 캘은 갈등의 중심이지만, 미오는 조금 겉도는 느낌이네요.
레이지와 에렌의 끈끈한 유대감, 레이지를 향한 캘의 집착과 애증, 세 사람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투 등… 세 팬텀이 자아내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세 사람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사이스 마스터와도 끝장을 보게 되니 나름대로 매듭을 짓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쨌든 에렌의 엔딩 「창궁의 길을」이 가장 깔끔하고 좋은 결말 같네요. 스스로 과거를 끊고 무너져 버린 에렌이 푸른 하늘 아래에서 다시 미소 짓게 되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미오는 아무것도 모른 채 평범하게 자라온 소녀인데, 어쩌다 보니 인페르노 분쟁에 휘말려 고생하네요. 미오 루트에서는 미오의 모습에 과거를 투영하고 현재를 비교하며 레이지에 대한 미련을 끊고 돌아서는 캘의 모습이나, 과거 맹세를 되새기며 필사적으로 미오를 지키려 하는 시가의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레이지와 미오가 서로 헤어지게 되는 점도 현실적이고. 나중에 레이지가 미오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끝나니, 결국 두 사람은 맺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요.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할 수 없었던 츠바이와 클로디아와는 또 다른 모습이네요.
메마르고 건조한 분위기가 풀풀 넘치는 하드보일드풍 스토리를 좋아하신다면 추천. 뒷세계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암투를 중심으로 한 음울하고 처절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총11개의 엔딩은 뒷맛 씁쓸한 게 대부분이고… 그나마 행복하게 끝나는 결말 아래에도 비극이 깔려있으니.
시스템은 그냥저냥 무난했습니다. 다만 드라이의 오르골 음악이 흐르는 부분 같이 중간에 스킵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불편합니다. 게임 진행 중 어떤 무기를 들고 싸울 것인지 총기 선택 화면이 나오지만 게임 전개와는 크게 상관없는 모양인데… 주야장천 총에 대해 설명하는데 밀덕이 아니라 그런지 솔직히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요. 엔딩 다 보고 CG 달성율 보니 95%네요. 아마 총기 관련 CG가 다 안 찬 것 같은데, 총기 선택 화면에서 별생각 없이 대강 막 넘어가서 그런가? 이제와서 채우려니 조금 암담하네요. 총기 선택이 어디쯤 있는지라도 알면 수월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