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번왕국 중 하나인 판다리코트의 대사로 재직하게 된 아버지의 사정으로 조국인 영국을 떠나 인도에 건너온 14세의 샬롯. 막연하게 인도에 대한 동경을 품은 샬롯은 “국왕의 왕관에 박힌 최대의 보석”이라 칭송받는 동양의 땅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검고 깊은 오닉스의 눈동자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그녀의 이름은 칼리. 자신의 운명 그 자체였던 이 아름다운 소녀와의 만남 이후, 샬롯은 격동의 시대의 흐름에 휘말리게 되는데…
타카도노 마도카가 쓴,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영국령 인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빅토리안 러브 스토리입니다. 2권까지 나온 미완결 작품으로 1,2권 모두 2006년에 발매되었는데 그 이후로 뒷이야기는 감감무소식이네요. 국내에는 L노벨에서 정발되었습니다.
기숙사제 여학원에서의 생활, 누구보다 마음이 잘 맞는 상냥하고 아름다운 룸메이트와의 유대, 여왕님 행세를 해대는 기고만장한 여학생과의 대립, 한밤중의 비밀스러운 다과회, 개성적인 친구들 사이에서 싹트는 우정 등 소녀라면 한 번쯤 꿈꿔봤음직한 말랑말랑하고 평온한 학원풍 분위기의 겉포장 속에, 어린 시절의 첫 만남과 운명의 재회, 출생의 비밀, 복잡한 국제 정세 등이 뒤엉켜 펼쳐지는 파란만장한 러브 스토리…로 전개될 예정인 듯.
본국에서 막 건너온 샬롯의 눈에 비친 기숙학원 내부의 부조리한 모습과 인도 주재 영국인들의 허영된 모습, 복잡하게 얽힌 국제 정세와 음모 등이 볼만하네요. 샬롯은 아직 어수룩하고 세상물정을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자신을 돌봐준 여성운동가 루시 이모의 영향으로 열린 사고를 지니고 있지요. 종종 자신의 잘못된 점을 반성하기도 하고, 그간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열심히 공부하는 등 이래저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점차 성장해가는 샬롯이 사랑스럽습니다.
샬롯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칼리와의 관계 역시 중요하지요. 순진하고 감수성 넘치는 샬롯과 아름답고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흐르는 칼리가 서로의 끈끈한 유대를 과시하며 달짝지근한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을 보면 백합스럽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결코 백합관계는 아닙니다. 이런저런 사정때문에 여장을 하고 여학교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칼리는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거든요.
둔감한 샬롯에게는 잘 전해지지는 않지만, 샬롯에 대한 애정을 풀풀 뿜어대는 칼리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샬롯이 망상을 펼치며 오리 내피를 귀여워하자 라이벌을 제거한다며 내피를 쓸어버리려는 모습이나, 학원 옆 저택의 주인인 젊은 총각 에셀과 담소를 나눴다는 사실을 알고 질투를 불태우는 모습이 귀엽더군요. 샬롯과 칼리 커플 외에도 학원 친구인 헨리에타와 미치루, 이웃에 사는 에셀 도련님과 섹시한 메이드 미모자 등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도 마음에 드네요.
사실 칼리의 정체는 판다리코트의 왕태자가 될 암리쉬 왕자이자, 샬롯의 어머니인 밀리센트가 낳은 샬롯의 남동생입니다. 칼리 즉, 암리쉬는 어린 시절 샬롯을 만난 이후 일편단심 샬롯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차 있는데, 두 사람 관계는 여러모로 장애가 많죠. 샬롯은 인도를 지배하려드는 영국 출신인데다, 판다리코트 입장에서 보면 자기네를 집어삼키려는 영국의 첨병인 판다리코트 대사 윌리엄 싱클레어의 딸이고 칼리와 샬롯의 관계는 무려 씨다른 동복남매인지라… 인도 왕가에서는 근친혼이 허용되는건지 샬롯이 이부누이라는 것에 대해 칼리는 별다른 저항감이 없어보이긴 한데(칼리의 종복인 젠 역시 샬롯이 싱클레어가의 딸인건 문제삼아도 두 사람이 남매관계라는 건 딱히 안따지기도 하고), 아무래도 영국출신인 샬롯에게는 좀 넘기힘든 벽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샬롯과 칼리에게 있어 애증의 존재이자 운명의 시발점인 밀리센트는 과연 어떤 인물일지도 궁금하네요.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보면 보통은 아닐 것 같은데… 나중에 등장하려나요.
샬롯을 향한 칼리의 애정은 참으로 절절합니다만 샬롯은 칼리의 정체를 모르는 터라 칼리를 대하는 감정은 아직까지는 깊은 우정일 뿐이고, 우연히 만난 암리쉬 왕자에 대해서도 어렴풋한 호감과 이런저런 의혹을 가지고 있을 뿐 딱히 연애감정으로까진 발전하지 않은 상태. 후에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고 해도, 여러모로 장애가 많은 커플이라 앞으로 힘든 시련이 잔뜩 도사리고 있을 듯 싶은데… 두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과연 어찌될런지…
오리가 귀엽다 오리…
마치 기저귀 찬 것처럼 엉덩이 부분 털이 갈색인게 특징이라 이름이 내피(nappy). 먹보지만, 제법 영리하고… 담에 넘겨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