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2: 스물한 발의 축포와 프린세스의 휴일

올가 여학원에 새로운 전입생이 왔다! 코끼리떼를 이끌고 나타난 그녀의 이름은 크리슈나 파드마바디 가에크와드, 애칭 파티. 그녀는 대국 바로다 왕국의 첫째 왕녀로, 정진정명 진짜 공주님이었던 겁니다. 이 폭풍 같은 제멋대로 공주님은 첫날부터 베로니카의 특별실을 점거하고, 샬롯의 단짝 친구인 칼리를 자신의 하녀로 삼는 등 이런저런 횡포를 부리는데… 칼리를 빼앗긴 걸로도 충분히 충격적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앙숙인 베로니카가 새로운 룸메이트가 되는 등 수난 시대를 맞게 된 샬롯. 전입 이래 최악의 기숙사 생활을 맞이하게 된 샬롯의 앞날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영국령 인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운명의 첫사랑 이야기 『칼리』 시리즈 제2권입니다. 약 440페이지 가량으로 제법 양이 많네요. 물론 이거보다 더 두꺼운 책들도 있지만, 보통 라이트 노벨은 300페이지 내외 정도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미완결작으로 현시점에서 최신간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발행일은 2006년 10월 12일… 뒷권을 기약할 수가 없다는 게 슬퍼요.

이번 이야기의 주역은 프린세스 파티. 바로다 왕국의 공주님으로, 자신을 귀애하는 조부왕과 미국을 좋아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라온 아가씨입니다. 할아버지에게 받은 펜닥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대는 게 취미. 미국 또는 영국에 유학을 가고 싶고, 기숙사 학교에 들어가 이런저런 체험을 하며 추억을 쌓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평범한 소녀로서의 면모가 귀엽더군요. 거기에 숨겨진 본질을 꿰뚫어보는 현명함, 일국의 왕녀로서의 책임감을 두루 갖춘 파티는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퍼그와 마스터의 관계로 맺어진 파티와 벨린다 선배의 관계도 좋았어요. 엄격하지만 잔정많은 벨린다와 긍정적이고 천진난만한 파티는 상성이 참 잘맞았던 모양. 그 짧은 시간에 그 정도까지 끈끈한 인연을 맺다니. 어쨌거나 스스로 선택해서 자신이 나아갈 미래를 결정한 파티는,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주역 커플인 샬롯과 칼리의 핑크빛 분위기 만재. 어리둥절해하는 샬롯에게 이상형을 물으며 이를 토대로 장래설계(눈엣가시인 내피를 호수 밑에 가라앉혀버리겠다는 흑심 포함)를 하고, 힌디어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샬롯에게 뜻도 모르는 낯 간지러운 사랑의 말을 속삭이게 만들어 혼자 좋아 죽으려하고, 역시나 알아듣지도 못하는 샬롯에게 열렬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등 샬롯은 전혀 알아채지 못하지만 열렬하게 샬롯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칼리의 모습이 귀여웠어요.

앙숙이었던 샬롯과 베로니카의 관계 변화도 좋더군요. 그간 서로 으르렁거리기에 바빴던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고 티격대며 마음의 벽을 허무는 모습이 흐뭇했습니다. 베로니카도 알고 보면 본성이 그리 나쁜 아이는 아니었네요. 뭣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긴 하지만 옆에서 샬롯이 하는 걸 보고 흉내 내려 애쓰는 모습이나, 자기 잘못을 쭈뼛거리며 사과하는 모습이나 특별실에 찾아와서 파티의 계획에 협력해주는 모습 등… 이 아가씨, 츤데레였던 모양.

여학원이라는 울타리 안 평온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녀들간의 따스한 이야기와 세계에 전운이 감도는 와중 씁쓸하고 잔혹한 현실의 갭이 인상적입니다. ‘에필로그’에서 파티와 관련된 소동이 일단락되고 이제 마무리다 싶었는데, 그 뒤에 이어지는 ‘그리고, 에필로그의 프롤로그’의 급전개에 놀랐습니다. 흠흠, 이번 권 중반부터 유예가 얼마 안 남았다는 느낌을 풍기긴 했습니다만 그렇게 갑작스레 칼리의 정체가 드러나고 유년기 편이 끝을 맺다니. 의도치 않고 내뱉어버린 한마디에 칼리를 상처입히고 자신 또한 상처입은 채 헤어져버린 두 사람은 어찌될런지…

여기까지 이야기가 절반쯤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뒷 이야기가 궁금해요. 대학생 편이 읽고 싶어요! 커서 재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싶어요!! 역시나 작가 후기에 언급된 대로 판매량의 문제였던 걸까요. 이 책이 나온 지도 시간이 좀 지난데다, 현재 작가분께서는 다른 작품에 매진중이시라 어쩐지 후속편은 기대하기 힘들어보이지만… 나중에라도 완결 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