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eyes CrossOver

18금 남성향 게임 제작사 Lass의 네 번째 작품 『11eyes -죄와 벌과 속죄의 소녀-』를 수정하고 여기에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추가해 XBOX360판과 PSP판으로 이식한 물건입니다. 제가 플레이한 건 당연히 PSP판이지요. XBOX360판과 PSP판 이후 아이폰용으로도 이식된 모양입니다. 원작 게임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도 제작되었다고 하네요. 그럭저럭 괜찮은 평가를 받는 원작 게임에 비해, 애니메이션 판은 망작 취급을 받는 모양이지만…;;

 

  • 「죄와 벌과 속죄의 소녀」

선천적으로 오른쪽 눈에 장애가 있는 코료칸 학원 2학년생 사츠키 카케루는 5년 전 유일한 혈육인 누나가 자살한 이후 깊은 절망에 빠져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카케루의 곁을 소꿉친구 유카가 지켜주지만 카케루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엔 역부족. 평범하고 무료한 나날 속에서 아무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카케루는 유카와 함께 붉은 밤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고, 그 갑작스러운 비일상은 카케루에게 전환점이 되는데…게임 본편에 해당하는 「죄와 벌과 속죄의 소녀」편입니다. 이거 생각 외로 플레이 시간이 엄청 기네요. 요즘은 기력이 달리는지 집중력도 떨어지고 게임을 오래 붙잡고 있기 버거운 듯한 느낌이…;; 초반 프롤로그 일상 파트가 길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해서 괴로웠어요. 초반 개그 담당이 같은 반 친구 타다시와 카오리인데 타다시의 바보 개그가 썩 마뜩잖은데다, 카케루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소꿉친구 유카 역시 그다지 마음에 안 들었어요. 대체 언제쯤 사건이 벌어지고 동료가 합류하나 싶은 마음에 몸을 꼼지락거리기도 하고…

그래도 본격적으로 서바이벌이 벌어지고 여러 동료들이 합류하니 재미가 붙더군요. 특히 유키코와 타카히사의 만담이 여러모로 빛납니다. 유키코랑 타카히사 커플 참 좋네요. 처음엔 단순히 죽 잘 맞는 하이텐션 개그 콤비라고 생각했는데… 타카히사의 절절한 순애보를 보니 유키코 공략하기가 정말 껄끄럽더군요. 본편에서는 비극이었지만, 부디 후에 두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근데 왜 엔딩에 두 사람이 알콩달콩 지내는 모습은 안 보이는겨.주인공 카케루는 초반에 참 무기력하고 힘없는 소년인데, 유카랑 붉은 밤에 빠져든 후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이를 함께 헤쳐가는 동료들과 만나면서 점차 바뀌는 인물입니다. 카케루도 성장하고 다른 동료들과의 유대도 깊어지며 서로 힘을 합쳐 차례차례 흑기사를 쓰러뜨려 가길래 우정과 청춘이 빛나는 열혈 전개로 나아가나 싶더니만, 후반부에 암울한 전개가… 하긴 붉은 밤이 풍기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됐던 걸까요…?

생각해보니 진정한 의미로 붉은 밤의 동료들이 한데 모인 적은 없었네요. 시오리는 뒤늦게 합류했고, 타카히사와 유키코와 유카는 중간에 퇴장했으니… 게다가 카케루는 알고 보니 어쩌다 휘말린 인물이었고. 하지만 베라드와 아이온의 눈이 리제로테의 과거와 이어져 있으니 완전 부외자도 아니고… 리제로테에게 죽음을 선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인 건 맞지만죠.본편 내용 대부분이 공통루트이고 히로인 이벤트가 쥐꼬리만큼입니다. 얼마 없는 각 히로인 이벤트와 엔딩을 보려고 공통 루트를 스킵하는게 좀 지겨워요. 원작의 삐리리한 내용을 삭제해서 히로인 개별 파트가 더 줄었을까 싶기도 하고… 공통 루트에서 동료로써의 비중은 크지만 히로인으로서의 존재감은 다들 깃털 같기만 할 뿐. 솔직히 진 히로인 쿠쿠리 엔딩 빼면 정말로 다른 히로인 이야기는 별 거 없습니다. 그냥 단일루트로 가도 될 이야기 같아요.

해피엔딩의 열쇠가 된 쿠쿠리의 능력은 허무의 조각과 전혀 상관없는 힘이었군요. 허무의 조각이 없는 다른 평행 세계의 쿠쿠리도 그 힘을 가지고 있고, 속성도 허무의 조각과는 정 반대. 진 엔딩 보면 “이 세상에 진정한 신은 없고 거짓된 신이 만들어낸 불완전한 세상이다.”라고 과거 베라드가 했던 말이 딱 들어맞아서 조금 묘한 느낌입니다.쿠쿠리는 얌전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결정적인 순간 비수를 꽂는 타입이라 무섭습니다. 카케루는 “그치만 사츠키 군도 남자니까요.”  공격에 몇 번이나 침몰했는지…;; 쿠쿠리의 스케치북 필담이나 기괴한 그림도 깨알 같이 재미있었어요.

대체적인 시스템은 텍스트 게임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양새인데… 특기할 만한 사항이라면 「크로스 비전」이겠네요. 메인은 주인공 카케루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이야기를 진행할수록 다른 이들의 시점이 열려 카케루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보완됩니다. 시대순으로 정리되어 있으니 흐름을 알기도 편하고, 이미 봤던 이벤트를 다시 볼 수도 있어요.그나저나 게임 제목인 『11eyes』는 외눈인 카케루와 다섯 동료들의 눈알 총 갯수를 뜻한다는 말을 얼핏 본 적이 있는데… 진 엔딩까지 다 보면 크로스 비전 시점이 총 11명입니다. 『11eyes』의 진정한 뜻은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안다더니 이걸 말하는 모양이로군요. 진 엔딩을 보면 크로스 비전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이거 단순한 시스템이 아니었네요.

 

  • 「공허한 경계」

아마미 슈는 평범한 학생으로 가장하여 본인의 정체을 숨기고 살아가는 ‘현대마술사’입니다. 주변에 섞여 평범한 일상 보내던 어느 날, 슈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소녀 아즈마 시오네에게 고백을 받습니다. 시오네의 고백을 거절 하긴 했지만, 이를 무척이나 의식하며 신경쓰는 슈. 그 후 같은 반 친구 카오리의 도플갱어 목격담, 마술사의 천적인 금서목록성성의 사도 시오리의 등장, 같은 반 반장 미오의 정체 등 슈 앞에 비일상적인 사건이 차례차례 벌어지는데…『11eyes CrossOver』의 오리지널 추가 시나리오입니다. 본편보다 규모가 작은 이야기입니다. 본편 종료 시 기독률이 아마 82%가 좀 넘었던 것 같으니까… 분량은 약 17% 남짓, 전체의 1/5이 좀 못 되는 정도. 그래도 이식 추가 부분치고는 많이 넣어준 듯하기도 하고…

「공허한 경계」 편은 「죄와 벌과 속죄의 소녀」 편과 같은 시간대에 벌어지는 또 다른 사건을 다룹니다. 「공허한 경계」 편 주인공 아마미 슈는 카케루와 유카의 클래스메이트예요. 카케루야 워낙 주변과 단절하고 살았고, 슈 역시 카케루와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희박합니다. 대신 같은 반 무드메이커 타다시와 카오리와는 친하게 지내는 편. 본편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미묘하게 맞물리는 부분이 있네요. 본편 캐릭터의 모습과 행동을 플레이어에 입장에서 곱씹으며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슈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고교생이지만, 사실 마술과 과학을 접목해 탄생한 ‘현대마술’을 사용하는 마술사입니다. 그것도 무려 현대마술의 체계를 세운 천재 아마미 칸지의 손자로 그 지식과 이론을 이어받은 직계계승자이지요. 어설프게 현대마법을 익혔지만 프라이드만큼은 강한 미오가 이를 무척이나 질투해 까칠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요. 평상시에는 ‘현대마술사’라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평범한 모습을 가장하고 있습니다.솔직히 초반에 슈가 좀 껄끄러웠어요. 카케루가 무기력함에 가라앉아 있다고 하면, 슈는 ‘현대마술사’라는 자신의 특별한 입장에 취해 있는 듯 보여서…;;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한 척 내숭 떨면서 ‘현대 마술사인 나는 다른 범인들과 사는 세계가 다르다’ 면서 자신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친구들에게 정체를 밝힌 뒤 이거저거 자세히 설명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딱히 우월감에 빠져 있지는 않았나 봐요.

어째 현대마술사의 성향은 마이너한 오컬트 세계에서도 입지가 좁은 소수파에 엘리트 의식과 개인주의가 강하고 자의식도 하늘을 찌르는 모양입니다. 특히, 현대마술의 창시자 아마미 칸지는 일반적인 도덕과 상식을 벗어나 오로지 지식 탐구욕과 본인 흥미 위주로 움직이는 괴짜였던 모양이고… 아마도 이 할아버지는 이후 Lass 작품에 영향을 미칠 듯 보입니다.

「공허한 경계」 편에서 공략 가능한 인물은 금서목록성성의 사도 모모노 시오리, 슈가 속한 A반 반장이자 현대마술사 코노 미오, 미오의 절친한 친구이자 슈를 짝사랑하는 소녀 아즈마 시오네, 슈의 클래스 메이트인 활달한 소녀 나츠키 카오리 등 총 4명. 이야기 자체가 짧다보니 연애 관계도 속전속결로 얼럴뚱땅 끝난다는 느낌이 없지 않네요.본편에서는 붉은 밤 멤버였음에도 불구하고 크로스 비전 시점도 없는 시오리가 이번 이야기에서는 정식 히로인으로 등극했습니다. 아마도 「공허한 경계」 편 진 히로인이겠지요. 시오리는 본편과 직접 연관된 인물이라 이와 관련해서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장면이 꽤 많이 나오는데… 시오리 루트 타면 마지막에 슈가 붉은 밤의 최종 결전에 나서는 시오리의 봉인을 해제하는데 협력합니다. 그후 무사히 살아 돌아온 시오리와 해피엔딩.

본편에서 카오리는 그저 일상의 상징처럼 나오는데… 본편 멤버들이 모르는 곳에서 비일상을 체험했군요. 항상 붙어 다니던 타다시와는 그저 남매 같은 관계일 뿐 연애 감정은 없다고 말합니다. 둘이 투닥거리는 게 영락없는 커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미오 엔딩은 좀 충격적입니다. 슈의 고백에 시오네를 배신할 수 없다는 미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계를 시오네에게 비밀로 하고 셋이서 사귀자는 양다리 선언을 하는 슈…;; 미오는 거기에 휘말려 시오네 몰래 슈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며 세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데… 이게 웬 막장 엔딩이래요. 이건 두 사람 다 시오네에게 큰 죄를 짓는 거 아닌가요? 차라리 솔직히 고백하고 사귀는 게 낫겠다, 이것들아…;;

이번 이야기에서 비중이 높은데다 당당히 휴일 선택지에도 올라와 있던 카나에는 공략 대상이 아니네요. 카나에는 막강한 최종보스로 등장하는데… 묘하게 슈에게 호감을 품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수작부린데다, 상대가 햇병아리라고 방심까지 해서 꼴사납게 털립니다…;; 툴레 멤버는 오로지 이해타산으로 맺어진 건조한 관계일 거라 생각했는데, 카나에는 리제로테에게 경의와 애정을 담뿍 품고 있던 모양이에요. ‘리즈’라고 애칭을 부르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카나에 또한 훗날 Lass 작품에 등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그나저나 붉은 밤 멤버 중 현대마술사가 끼어 있지 않아 다행인 듯하네요. 붉은 밤에 떨어졌으면 휴대전화가 작동 안 해서 마술도 못 써보고 끔살 당했겠죠. 공허한 경계는 마법률을 조작하는 공간이라 시오리가 맥을 못 추고, 슈가 고유결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어찌어찌 난관을 헤치긴 했는데, 툭 까놓고 여러모로 고전적마술이 현대마술보다 훨씬 나은 듯…;;

본편은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여기저기 패러디와 개그가 넘쳐나네요. Lass의 다른 작품과 이어진 연결고리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듯하고… 유명한 대재벌 히로하라 일족이라든가, 뼈대 있는 음양사 가문 쿠사카베 일족이라든가, 카페 치베리아다의 마스터와 그 부인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신비한 비석 에메랄드 타블렛의 12개 파편인 취옥비의 조각이라든가, 교황청 소속 대마술기관 금서목록성성이라든가, 리제로테가 조직한 마법결사 툴레라든가, 강대한 힘을 지닌 마도서 명왕의 열쇠라든가 등등… 저는 전작들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릅니다만.

시스템은 무난했습니다. 오토 세이브도 이래저래 잘 활용했고… 다만 Extra 모드에 동영상 감상도 추가해 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PSP판 오프닝이야 게임 켤 때마다 본다지만, 「죄와 벌과 속죄의 소녀」 편과 「공허한 경계」 편에 쓰인 오프닝, 엔딩을 따로 보기 불편하네요. PSP판은 시기상 나중에 이식된 터라 기존에 쓰인 쓰인 오프닝, 엔딩 동영상이 다 수록 되어있는데다 PSP판 오프닝과 삽입곡 하나까지 더 추가되어서 나름대로 이득 본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나저나 올클리어 했다고 생각했는데… 기독률이 99.99%네요. 어디 빠뜨린 부분이 있었나….? 갤러리란과 회상란은 다 채웠으니 볼 거 다 봤다고 생각하고 그냥 접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