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WOLVES SAGA -Bloody Nightmare-

풍부한 대자연과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인 서방국가 웨블린 왕국. 이 평화로운 나라에 어떤 역병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 역병의 이름은 조디바. 지독한 역병의 원인이 왕국에 반기를 든 볼프(늑대종)의 저주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이에 떠밀리듯 웨블린의 현 국왕 가발디 6세는 대대적으로 늑대사냥령(제노사이드 울프)을 내립니다. 광기 어린 늑대사냥령으로부터 수년후. 갈란드 백작가의 영애 피오나는 선천적으로 병약한 로베이라종으로 태어난 탓에 탑안에 갇혀 외부와 격리된 채 성장합니다. 16세 생일을 맞아 정원에서 여는 만찬회에 참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기뻐하던 피오나는 마녀 혐의를 받고 성으로 연행되는데…

 

여성향 게임 브랜드 리젯에서 내놓은 게임입니다. 오토메이트와 콜라보레이션으로 PC판은 절망, PSP판은 희망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듯합니다. 이 작품은 광기 어린 쌍둥이 왕자를 내세워 절망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PC판입니다. 중세 유럽풍의 암울한 분위기와 배경 설정이 당겨서 잡아보았어요. 주제나 콘셉트에 충실하게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이 그대로 나오네요.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등장인물 대다수도 광기를 품고 있습니다.

평온한 탑의 일상

음모와 협박

볼프의 살육

이야기의 배경인 웨블린 왕국은 여러 종족이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웨블린 건국에 큰 영향을 끼친 캣시(고양이종), 볼프(늑대종), 휴마(인간종)가 큰 영향력을 가졌고, 그 외 소수 아인종이 터를 잡고 있었던 듯합니다. 왕위 교체나 늑대사냥령 등을 거치며 라비츠(토끼종)처럼 몰살되거나 볼프처럼 세력에서 밀려나 학살당하는 종족도 있지만요.

공략 대상은 피오나에게 강한 집착을 품은 냉혹한 왕자 메요요, 자칭 음유시인으로 느긋하게 노닥거리는 왕자 오제, 우수 어린 아이스 블루 눈동자를 지닌 소년 라스, 피오나의 이복오빠로 왕국 필두기사 넷소, 피오나를 곁에서 보살펴 온 우수한 집사 자라, 라스의 형이자 볼프종을 이끄는 왕 아를, 아를의 심복이자 살인광 길란, 왕궁의 공중정원을 가꾸는 정원사 율리안 등 총 8명.

피오나가 마녀 혐의를 받고 왕궁으로 끌려가 공중 정원에서 유폐 생활을 하던 와중 늑대가 습격해오고, 몰래 왕국으로 숨어든 넷소와 자라의 손에 이끌려 함께 지내던 율리안과 함께 밖으로 도주, 그 뒤 볼프종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부분까지가 공통 루트입니다. 그 다음은 피오나의 선택에 따라 성으로 귀환 루트, 늑대의 권속 루트, 외국 망명 루트로 나뉘네요. 이때 루트 진입에 필요한 조건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 츄츄나이트 손에 일행을 잃고 피오나가 납치당하면서 배드 엔딩. 게임의 핵심이 캣시와 볼프, 정확히는 쌍둥이 형제와 아를의 대립이다 보니 외국 망명 루트 타면 이야기 중심에서 벗어나는 감이 있어서 조금 심심합니다.

묘한 이끌림

볼프와의 생활

도피 모의

솔직히 빈말로라도 스토리 전개가 뛰어나다고 말하긴 힘들 듯하네요. 이야기의 속 사정을 공통 루트에서 일방적으로 다 털어 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야기 전개가 유사하고 연애 과정은 얼렁뚱땅이랄지 감정 흐름 묘사가 부족하달지… 백 보 양보해서 쌍둥이네랑 가족들은 예전부터 관계를 구축해왔으니 그렇다 쳐도, 피오나가 낯선 늑대들과 얽히는 부분에서 피오나의 감정 묘사에 더 힘을 주던가 늑대들과의 교류에 신경 써줬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라스는 처음 봤을 때부터 서로 끌렸다는 분위기를 풍기기는 합니다만 감정선이 옅어서 따라가기 어려울 듯해요.

개인적으로 호불호가 갈릴 듯한 과격하고 잔인한 내용이나 전개는 환영하는 편입니다. 여성향 게임이라고 천편일률적으로 건전하고 무난한 것만 다루라는 법 있나요. 이것저것 다양하게 나와줘야 선택의 폭이 넓어져 골라 즐기는 재미도 있는 거죠. 이렇게 여주인공이 대놓고 학대당하는 작품은 드물지만 처절한 상황을 에둘러 묘사하는 작품은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이 작품의 설정이나 상황은 암울한데 와닿는 처절함의 깊이는 얕지 않은가 싶은데… 이게 묘사가 부족해서 일까요…? 어쨌거나 이런 내용이 거북스러운 분에겐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네요.

피오나는 조디바의 열쇠를 쥔 로베이라종이고, 여러 인물 간 갈등의 핵심에 선 중요 인물이긴 한데… 피오나가 있기에 등장인물 사이에 연결고리가 이어지기는 하지만, 이야기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니 존재감이 죽는 느낌이네요. 힘없는 소녀이니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이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병약하다는 설정치고는 혹독한 상황에서 의외로 잘 버티는 듯합니다.

쌍둥이의 광기

블러디 나이트메어

이 게임의 메인 공략 대상인 캣시종 쌍둥이 왕자 메요요와 오제는 불행한 어린 시절 때문에 삐뚤어진 인물입니다. 둘 다 정신적으로 미쳐 있는데 능력이 뛰어나 힘도 권력도 다 쥐고 있으니 주변에 끼치는 파장이 엄청납니다. 쌍둥이 중 오제는 똘끼로 똘똘 뭉친 녀석이네요. 그나마 메요요는 애정결핍과 보상심리라는 마음의 일그러진 형태의 윤곽이 보이는 데 비해, 이 녀석은 정말 종잡을 수 없게 미쳐있어요. 메요요는 어느 정도 타협하면 구원의 여지가 있지만, 오제는 도무지 어찌할 수 가 없습니다. 메요요만 균형 잘 잡고 있으면 오제를 통제할 수 있지만 삐끗하면 그마저도 무너져 버리니… 오제는 초특급 지뢰이니만큼 피해 가는 게 현명하겠다 싶어요.

이복오빠 넷소는 심각한 시스터 콤플렉스랄지, 어릴 적부터 피오나를 여자로 보고 흑심을 품었던 모양이네요. 이 세계관에서는 진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도 흔히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피오나를 곁에서 돌봐준 집사 자라는 뛰어난 의술을 자랑하는 라비츠종의 생존자로, 병약한 피오나를 위해 갈란드 백작이 일부러 데려왔다고 합니다. 불행한 과거를 겪었지만 올바르게 자라 다행이다 싶어요. PC판 공략 대상 중 드물게 멀쩡한 인물이라…

아를은 캐릭터 자체는 마음에 들었는데… 옛여자의 그림자 때문에 삽질하는 전개는 취향이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별다른 갈등 없이 피오나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니 꽁기꽁기하네요. 엘비라는 십 년 동안 가슴속 상처로 담어둔 여자인데, 닮았다고는 해도 이렇게나 쉽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나 싶어서… 어느 정도 심적 갈등을 드러내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아를 굿엔딩은 가장 깔끔하고 속 시원하게 끝나서 마음에 드는 편.

PC판 전용 공략 캐릭터인 길란과 율리안은 따로 트루 엔딩이 마련되어 있네요. 둘 다 굿 엔딩은 무난한 해피 엔딩인데, 트루 엔딩은 광기 머금은 결말… 길란은 처음엔 완전 미친 살인광의 모습만 보여줬는데, 후반에는 의외로 동료를 생각하는 모습이나 본능에 따라 동물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귀여웠네요. 공중 정원에서 피오나와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던 율리안은 과거나 망가진 상태를 보며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는데 트루 엔딩보니 정말 미쳤구나 싶었어요. 너도 쌍둥이 못지않구나… 웨블린의 왕가는 이래저래 문제가 참  많습니다.

라스 굿엔딩은 기나긴 프롤로그가 끝나고 이제부터 이야기가 시작이라는 느낌을 풍기며 끝을 맺습니다. PSP판에서 라스가 메인이니 아껴둔 건가…? 아마 나중에 발매될 PSP판은 이 뒷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싶네요. 피오나와 어떤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펼칠지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화면의 부드러운 색감이나 음악이 참 좋았어요. 송 컬렉션과 OST 등 관련음반이 착착 나올 예정인 듯하니 기대 중입니다. 스탠딩 CG에서 아인종의 귀가 쫑긋쫑긋,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는 모양새가 귀엽네요. 구름이 흘러가는 연출도 마음에 들었고… 메요요를 잘 따르는 츄츄나이트도 귀여워서 좋아요. 귀여운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음습한 임무도 곧잘 해서 놀랐습니다.

그 외 스페셜 모드도 제법 충실합니다. CG란, 회상모드, 용어집 등… 엑스트라 보이스에서 등장 캐릭터의 이런저런 대사를 들을 수 있네요. 엑스트라 보이스 모드에서 ‘어미에 애니멀’이 인상적이었어요. 메요요가 말끝에 냥냥거리니까 귀엽습니다. 늑대나 사자의 어미는 좀 부담되지만. 캐릭터 여기저기를 쓰다듬으면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그루밍 모드도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