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WOLVES SAGA -Last Hope-

대자연에 둘러싸인 소국 웨블린은 본디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라였으나 수년 전부터 만연한 역병 조디바와 이를 퍼뜨린다고 알려진 볼프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불안한 상황입니다. 병약한 로베이라종으로 태어난 탓에 외부와 격리되어 탑 안에서 자란 갈란드 백작가의 영애 피오나는 16세 생일을 맞아 저택 정원에서 파티를 열게 됩니다. 파티를 앞두고 잠시 정원에서 산책하던 피오나는 몰래 저택에 침입한 청년 라스에게 납치당하는데…

 

여성향 게임 브랜드 리젯과 오토메이트가 콜라보레이션으로 내놓은 작품입니다. 『BLACK WOLVES SAGA』는 같은 세계관과 설정을 바탕으로 PC판과 PSP판이 발매되었습니다. 앞서 나왔던  PC판 『BLACK WOLVES SAGA -Bloody Nightmare-』는 절망, 나중에 나온 PSP판 『BLACK WOLVES SAGA -Last Hope-』는 희망을 주제로 합니다.

공략대상은 피오나를 납치한 볼프 청년 라스, 피오나의 약혼자인 메요요와 그 쌍둥이 남동생 오제, 피오나의 오빠 넷소, 피오나를 돌보는 집사 자라, 볼프를 이끄는 지도자 아를, 피오나 곁을 지키는 어린 훈트 형제 펄과 리치, 넷소의 부관이자 친우인 엘자 등 총 9명. 공통루트로 진행되다가 선택지에 따라 볼프 루트, 가족 루트, 캣시 루트로 빠진 뒤 개별 엔딩으로 나뉩니다.

볼프 루트에 접어들 때, 공통루트 초반에 드러났던 볼프 측 상황이 막장이라 자칫하면 피오나도 PC판 캣시 루트 못지않은 수난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를을 비롯해 다들 피오나를 곱게 다루더군요. PSP판은 라스 중심이라 그런지 피오나와 라스의 관계와 볼프와의 교류가 훨씬 납득가게 그려졌습니다. 공통루트 초반은 피오나와 라스의 여행을 통해 두 사람의 심리를 그려내고 있고요. 아를 공략 시 PC판에서는 얼렁뚱땅 넘어갔던 엘비라 문제도 확실히 짚고 넘어간 부분은 만족. 라스와 아를 엔딩을 다 보면 볼프 트루 엔딩이 열립니다.

가족 루트는 PSP판에서 추가된 전용 공략 캐릭터가 몰려 있어 상당히 북적북적. 이 루트는 이번에도 볼프와 캣시의 대립에서 벗어나기는 하지만, 웨블린에 볼프에 대한 증오를 뿌리 깊게 심어 놓은 원인이자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위협인 조디바와 연관된 전개로 이어져서 PC판만큼 갈등의 핵심에서 동떨어졌다는 느낌은 안 드네요. 볼프 무리에서도 별 탈 없던 피오나가 조디바 발병으로 쓰러지게 된 상황은 의외였지만. 다른 루트는 그냥저냥 무난했는데 넷소 루트에서 난데없이 기억 상실이 튀어나오고 뜬금없이 왕위 계승까지 해서 좀 뜨악했습니다. 다른 루트에서는 폐적되었던 율리안이 왕좌를 잇는데, 여기서는 왜 실종 처리된 거지…? 뭐야, 이거.

캣시 루트는… 웨블린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원흉이어서 그런지 이번 작품에서는 쌍둥이 왕자의 취급은 그다지 안 좋은 편이네요. 쌍둥이 왕자 결말은 애정이라기보다 연민과 동정어린 감정으로 엮인 듯한 느낌입니다. 그나저나 오제는 정말 미친놈이에요. PC판에서도 느꼈지만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후반부에 메요요와 오제 중 누구를 구해줄 것인지 선택지가 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제를 택하는 건 정신 나간 짓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던데… 그럼 그렇지. 역시 오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이 게임의 미친놈은 오제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음…;;

시스템이나 인터페이스는 PC판과 동일하고… 겹치는 부분이 많고 개별 루트 분량이 적은 점 등 PC판에서도 지적했던 문제점이 남아 있긴하지만 PSP판이 PC판보다 이야기 전개가 더 매끄럽고 납득이 가는 편이라 훨씬 나은 듯합니다. 주인공 피오나도 PC판에서는 쌍둥이 왕자의 광기에 눌려 맥 못추고 휘둘리기만 했는데, PSP판에서는 제법 야무진 구석이 있달지… 캐릭터가 좀 더 또렷한 느낌이 듭니다. 상황 자체가 암울하니만큼 분위기가 무겁고 피가 좀 튀기기는 하지만 PC판처럼 피오나가 대놓고 학대당하는 장면은 없으니 부담감이 덜 할 것 같네요.

PC판에서는 해피엔딩이라고 해도 외국으로 도주하든지, 현실에서 도피하든지… 하여간에 웨블린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도망가는 결말투성이였는데 PSP판은 ‘Last Hope’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정면으로 부딪혀 해결을 보네요. 어느 정도 희생이 따르고 갈등도 남아 있지만 아픔을 딛고 회복하는 모습이 희망이라는 테마에 어울리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