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금의 열리지 않는 열쇠.

고등학교 입학 초기에 클래스 데뷔에 실패하고 의기소침해져서 등교를 거부한 채 1년 가까이 히키코모리 생활을 해 온 여고생 카타키리 카나데. 자신을 걱정하며 학교에 나갈 것을 권유하는 의붓동생 이쿠토의 말도 무시한 채 은둔생활을 하던 카나데는 어느 날 꾼 이상한 꿈을 계기로 바깥세상에 발을 내디딜 결심을 합니다. 새로운 인연을 통해 용기를 얻고 주변 사람들의 격려로 무사히 학원에 복귀해 충실한 일상생활을 누리게 된 카나데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연심에 주저하면서도 이에 이끌리고, 상대방의 숨겨진 일면에 당황하게 되는데…

 

작년 12월에 발매한, 18금 여성향 게임 신생 브랜드 little cheese의 데뷔작입니다. 다크한 분위기를 풍겨 발매 전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긴 한데, 이거 생각보다 밋밋하네요. 이미 어두운 분위기를 앞세운 몇몇 여성향 게임이 존재하는데, 그것보다 인상이 약하달까… 초반에는 말랑말랑한 분위기로 진행되다, 캐릭터 별로 루트 타고서 중후반부부터 살짝 어두운 부분이 드러나는데 그 강도가 좀 약한 편이고… 몇몇 엔딩이 인상적이긴 하더군요.

여주인공 카나데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란 설정인데, 초반부터 자신이 히키코모리였다는 걸 타인에게 꽤 쉽게 밝혀서 좀 갸우뚱하게 하네요. 자기 말로는 트라우마라는 둥 웃지 말라는 둥 말하는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쉽게 털어놓는 거 아닌가… 그 외에도 학교 생활에 별 부대낌 없이 쉽게 적응하고, 의외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등 캐릭터 설정과 행동에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공략대상은 카나데의 의붓동생 이쿠토, 카나데의 옛 클래스메이트 유키오, 카나데의 담임인 콘노, 카나데의 머리카락을 잘라준 미용사 하스이 등 총 네 명. 점차 이들에게 끌리며 미처 몰랐던 그들의 또 다른 일면을 보고 휘둘리며 당혹하는 카나데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초기에 이미지가 꽤 좋았던 유키오는 루트 타면서 벌이는 찌질 행각 때문에 감점, 감점, 감점. 거기에 더해 이쿠토 배드 엔딩에서 벌이는 그 행각은 참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 게임에 진히어로는 이쿠토네요. 제가 원래 연하남은 취향이 아닌데, 공략 캐릭터 중 이쿠토가 제일 괜찮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음. 이야기 흐름이나 캐릭터성도 제일 좋았고… 일편단심 누나사랑에 가사만능이라니, 카나데가 참 부럽네요. 타 루트 배드 엔딩 때 위기에 처한 카나데를 구하러 달려오거나 실연한 카나데를 격려하는 모습, 다시 히키코모리 생활로 돌아간 카나데를 이번엔 자기 손으로 나오게 하겠다 다짐하는 모습 등 이래저래 카나데에게 헌신적이라 짠합니다. 이 벙어리 냉가슴…;; 카나데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쿠토고… 이렇게 억눌린 만큼 터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걸지도요.

그 외 조역인 카나데의 친구 코토코와 코미네 커플이 제법 유쾌하더군요. 그저 재미있으면 만사 OK인 무서운 독설가 코토코 양의 위엄이 어마어마합니다. 유키오 루트에서 캬바레 클럽 알바 하겠다는 카나데를 말리기는커녕 부추기기까지…;; (거기에 협력하는 하스이와 이쿠토도 납득하기 힘들지만서도…;;) 코미네도 제법 재미있는 캐릭터인데, 앞뒤 없이 솔직한 성격의 바보라 공략 대상 제외인 게 어쩐지 납득이 가네요. 무엇보다 코미네에겐 코토코가 있으니… 어쩐지 평생 여왕님 섬기듯 코토코 밑에서 기며 머슴생활 할 코미네의 모습이 선합니다.

게임이 골드/블랙 수치에 따라 엔딩이 갈린다고는 해도 루트별로 전체적인 흐름은 한 줄기라 좀 단조로운 느낌입니다. 선택지가 그 흐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도 아쉽고… 각 루트마다 해피엔딩을 보면 트루엔딩을 볼 수 있는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서 좀 불편합니다. 해피엔딩 이후에 볼 수 있는 공략 캐릭터 시점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이렇게 구성해 놓은 것 같긴 한데 번거롭네요. 트루엔딩도 끝만 다르지 그 과정이 거의 유사해서…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대화창에 뜨는 카나데의 CG나 스탠딩 CG가 세세하게 바뀌는 등 여기저기 신경 쓴 흔적이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이벤트 CG가 부족하게 느껴지네요. 특히 H씬에서 CG 한 장으로 땜빵질하는 것 때문에 단조로워 보였어요. 텍스트 내용은 점차 바뀌는데, 캐릭터의 표정만 바뀔 뿐이고… 같은 구도라도 자세나 옷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 좋았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