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미궁

일그러짐의 구멍에서 나타나는 이형 때문에 세계가 멸망에 이르던 신화시대. 신화시대의 무녀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 그 자체에 일그러짐의 구멍을 봉하는 의식을 만들어냈다. 이후, 이계를 막는 문이 된 무녀는 대대로 왕과 맺어져 다음 대 무녀가 될 딸을 낳는 숙명을 짊어지게 된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37대 무녀공주 유키는 폐쇄된 화원의 탑에서 자신과 왕의 결혼을 통보받는다. 그러나 유키에게는 연모하는 상대가 있었는데…

서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동양풍 판타지 로맨스물입니다. 신화시대 이래로 대대로 문을 봉인해 온 무녀공주의 혈통인 유키와 유키가 선택한 문의 열쇠인 위사 야쿠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 작가는 『환수강림담』 시리즈로 데뷔한 모토미야 코토하예요

신화시대 무녀의 피를 이어받아 일그러짐을 봉인하는 문 역할을 맡은 무녀는 외딴 탑에서 쓸쓸히 살아가다가 때가 되면 왕과 맺어져 다음 대 무녀를 낳아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무녀가 일그러짐을 봉인할 수 있는 장소는 외딴 탑 주변뿐이고 무녀의 감정 기복에 따라 일그러짐을 봉인한 문이 열릴 지도 모르기에, 무녀인 유키는 부모의 정도 모른 채 탑을 벗어나지 못하고 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야만 하지요.

문을 지키는 고귀한 무녀공주 유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남성은 오로지 왕과 문의 열쇠인 야쿠뿐. 문의 열쇠란 위사 중에서 무녀 스스로 선택하는 자로, 만에 하나 이계의 문이 열렸을 때 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역할을 맡는 존재입니다. 유키는 유일하게 직접 접할 수 있는 이성인 야쿠에게 은밀히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 유키와 왕의 혼사가 결정되는데…

아무래도 소설이 유키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유키의 내면과 시선을 중심으로 서술됩니다. 유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중심으로 유키의 일기와 유키가 찾아낸 몇 대 전 무녀 소라의 기록이 맞물리고 마지막에 유키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며 마무리되네요. 유키 입장상 심적 고통이나 내면 갈등은 있을지언정 험하게 구를 일은 없는데, 작가 후기에 언급된 초안대로 남주인공 시점에서 음모와 전쟁이 판치는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펼쳐졌어도 나쁘지 않았을 듯싶기도 한데… 그렇게 나왔다면 이 소설의 서정적이고 애틋한 분위기가 다 날아가 버렸겠지만요.

유키와 야쿠의 이야기는 깔끔하게 완결 났지만 같은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다른 연인의 이야기 『화미궁』이 나왔습니다. 이 소설보다는 평이 낮은 모양입니다만… 볼까 말까 고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