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저스티스의 원수!!”
“…네?”
고교 입시 날 아침, 역의 플랫폼에서 나는 그 소녀와 만났다. 그녀―유이 씨는 ‘공상병’. 발작을 일으키면 정의의 사자 같은 게 되어버리는 모양. 이후 어째선지 유이 씨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앞에 나타난다. 공연한 소란에 어울려줄 수는 없어,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 싸우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엔타메 대상 우수상 수상, 떠들썩하고 순진한 ‘보이, 미츠, 공상소녀’.
제11회 엔터브레인 엔타메 대상 소설부문 우수상 수상작을 고쳐서 내놓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출품 당시 제목은 「세계를 적으로 돌릴 때」였다고 하네요. 작가는 혼다 마코토예요. ‘그 공상은 세계를 감염시킨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특수한 정신질환을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아이사카 스테키 증후군』이 떠오르더군요. 물론 두 작품의 분위기나 방향성은 다릅니다만.
소설의 주인공 나카니시 케이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년입니다. 케이의 별다를 바 없는 일상은 고교 입시 날 아침, 자신에게 저스티스의 원수라며 달려드는 소녀 호타카 유이와 만나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유이의 발작에 휘말려 고생한 케이는 그 이후로도 유이와 교류를 나누게 되지요. 공상병 환자인 탓에 외롭게 지내던 유이는 케이에게 남다른 관심을 두며 가까워지길 바라고, 케이는 외로움 타는 유이에게 은근히 호감을 품게 됩니다.
이 작품의 핵심 소재인 공상병은 트라움파라는 특수한 뇌파의 영향으로 발작을 일으켜 발병자 본인을 공상에 빠지게 하는 병입니다. 유형에 따라 본인만 공상에 빠지는 자기완결형,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극장형, 극장형 환자와 다른 공상병 환자가 동시에 발작을 일으켜 공명할 경우 세계 규모로 공상이 번지는 천지창조형 등이 있습니다. 과거 천지창조형의 발병으로 범세계적 혼란에 빠진 적이 있었고 이 때문에 공상병의 존재가 판명되었습니다. 그 이후 공상병과 공상병 환자는 요주의 대상으로 정해져 관리와 연구가 행해지고 있지요. 유이 역시 공상병 환자이기에 관리 대상이고요. 공상병은 일반에 널리 알려진 병이라 길거리에서 발작을 일으켜도 다들 그러려니 하는 편이고, 환자 주변에 관계자들이 대기하며 뒷수습해주기에 무난히 넘어가는 모양.
초반 프롤로그에서 애틋한 세카이물 분위기를 풀풀 풍기더니, 그다음 이어지는 이야기는 조금 독특한 설정의 풋풋한 청춘 일상물 전개. 유이가 공상병 발작을 일으켜 소동을 벌인 후 정신이 들고 나서 부끄러워 몸 둘 바 모르는 모습이 제법 귀엽더군요.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공상병 환자 본인 입장에서 보자면 수치 플레이…^^;; 그래도 그 모습이 보는 사람을 괴롭게 만들지 않을 정도로 적당해서 부담 없이 볼 수 있었어요. 그냥 평범한 사람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과거 부끄러운 뻘짓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경우는 흔하니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기도 하고.
프롤로그와 상관없이 케이와 유이,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잔잔하고 평온한 일상으로 마지막까지 이어지나 싶었으나, 후반부에 이르러 긴박하게 이야기를 몰아붙이는 부분이 좋더군요. 결말을 보니 결국 말이 씨가 된다고, 케이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은 케이를 매우 쳐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결국 두 사람은 관계 진전을 위해 주변 사람들 다 끌어들인 민폐 커플…? 그런데 유이의 매력을 다 드러내지 않은데다 케이와 유이의 관계를 제대로 구축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캐릭터를 열심히 들이미는 게 조금 미묘한 느낌. 케이의 동급생 아오이 하루의 비중과 활약이 굉장히 두드러졌어요. 매력적인 조연도 좋지만 일단 메인 히로인부터 띄워 줘야 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