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 burst error PLUS

아마기 코지로는 부두에 있는 허름한 창고에서 사무소를 운영하는 사립 탐정. 라이센스 정지 중인 몸이라서 자신의 사무소에서 빈둥거리던 차에 프리 카메라맨 시바타 아카네의 중개로 의뢰를 맡게 된다. 그 의뢰 내용은 한 중국인 실업가가 기묘한 문양을 한 회화를 찾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호오죠 마리나는 임무 달성률 99%를 자랑하는 내각 정보 조사실의 에이전트. 마리나에게 주어진 이번 임무는 엘디아국 주일대사 로스 미도의 딸인 미도 마야코를 경호하는 것이었다. 엘디아의 불안한 국내 정황 때문에 마야코도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되었다고 한다. 겉보기에 아무 관계 없어 보이던 사건을 쫓던 코지로와 마리나. 하지만 그 배후에는 엘디아의 왕위계승과 관계된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었는데…

 

18금 남성향 게임 브랜드 시즈웨어에서 나온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EVE 시리즈 첫 번째 작품으로 PC-98용으로 처음 발매된 이후 여러 기종으로 이식된 인기작이지요. 아마도 여러 버전 중 가장 평이 좋은 작품은 세가 새턴판인 모양입니다. 그 이후에 나온 PS2판은 캐릭터 디자인과 그래픽이 바뀌었는데 이전보다 못한가 보더라고요. PS2판은 한글화되어 정식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최근 이식작은 15주년 기념으로 리메이크된 PSP판 『burst error – EVE the 1st』인데… 게임 일러스트가 이게 뭥미 싶네요. 게임하고 전혀 안 어울리거니와 하나도 예쁘지도 않아…;; 21세기에 먹히는 감성이란 이런 거야?! 일러스트만 봐도 할 맘이 뚝 떨어지는구만…;;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두 주인공 코지로와 마리나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진행하는 멀티 사이트 시스템이겠죠. 각각 다른 사건을 추적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진상을 파고들수록 서로 맞물리게 되는데, 플레이어는 양 시점을 통해 이야기의 공백을 채우게 되지요. 처음에 코지로와 마리나는 전혀 모르는 사이이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고 여러 인물과 접하면서 공통의 접점이 생기고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협력하게 됩니다. 코지로와 마리나는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며 여러 가지 의문에 부딪히게 됩니다만, 두 사람의 행동이나 행적이 서로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특히 후반부의 해킹 장면이 인상적이었네요. 야요이처럼 처음부터 두 사람이 아는 지인은 물론이고 서로 몰랐던 인물과 교류하며 관계가 얽히고설키는 모양새도 볼거리네요.

PS2판은 기존 캐릭터 디자인이나 그래픽을 싹 갈고 일신했다는데… 리메이크 하기 전 작품들을 접한 적 없어서 제대로 비교는 못 하겠지만 PS2판도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얼핏 본 오리지널판이나 새턴판 아카네 캐릭터 디자인이 참 예쁘긴 하던데, 그런 예쁜 처자 앞에 두고 똥파리네 뭐네 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좀 이상할 것 같기도 하고…;; 스탠딩 CG는 C-Motion이라고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임을 집어넣었더군요. 패턴은 적지만요. 시스템은 그럭저럭 무난한 편이긴 한데 오토 모드가 없어서 좀 불편하더군요. 그리고 패드 버튼 배치도 그다지 안 좋은 듯해요.

이야기는 여러 가지 의문이 뒤엉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의외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끝을 맺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귀가 살짝 안 맞는 부분이나 의미 불명인 떡밥도 좀 섞여 있었던 것 같지만요. 특히 아쿠아가 남긴 다잉 메시지는 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 건지 원. 코지로는 ‘d’라고 봤지만 사실 ‘P’라고 쓴 거라 프리시아를 범인으로 지목한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진상은 그게 아니고 말이죠. 그냥 플레이어의 혼란을 노리고 넣은 연출인가 싶기도 한데 결국 별 의미 없는 건가요? 그 외에도 막판 반전을 노린 건지 프리시아에게 의혹을 덧씌우려는 연출도 제법 많았고요.

어쨌거나 재미있게 몰입해서 플레이했습니다. 게임상 사건이 벌어진 기간은 고작 며칠 사이인데 워낙 파란만장해서 그리 짧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인데다 각 시점에서 몰랐던 이야기가 다른 시점에서 풀리면서 이야기가 교차하는 구성도 흥미진진했어요. 코지로와 마리나의 입담과 개그도 재미있었고… PS2 정발판은 한글화도 잘 되어 있는 편이라 어드벤처 게임에 관심 있는 분이시라면 추천합니다. 이미 하실만한 분은 다 하셨으려나요? 그나저나 이 작품은 호평 일색이지만 EVE 시리즈 후속작들은 평이 안 좋은 편이라 플레이할지 말지 조금 고민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