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진구지 사부로: Innocent Black

수수께끼의 연쇄 살인사건이 신주쿠 거리를 위협하고 있는 와중, 탐정 진구지 사부로는 일전에 신세를 졌던 병원의 원장으로부터 ‘가출한 딸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을 해결해 온 진구지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가벼운 의뢰지만 진구지는 성심성의껏 원장의 딸에 대한 정보를 탐문하고 그 행방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때는 아직 몰랐다. 그 작은 사건이 커다란 음모가 도사려있는 대사건의 서곡이었다는 것을….

1987년 데이터 이스트에서 패미콤용 소프트로 첫 작품이 발매된 하드보일드 어드벤처 게임 탐정 진구지 사부로 시리즈의 8번째 작품입니다. 올해 25주년을 맞이한 장수 시리즈이지요. 원제작사였던 데이터 이스트가 7번째 작품까지 내놓고 도산하는 바람에 명맥이 끊길 뻔했지만, 워크잼에서 판권을 사들여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하네요. 이 작품은 워크잼에서 제작한 첫 작품이자 PS2로 발매된 첫 작품으로 한글화되어 국내 정식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개발사가 바뀌었다고는 해도 데이터 이스트에 몸담았던 기존 시리즈 제작진이 대부분 참여했다고 하네요. PS2판으로 나온 두 작품 외에도 모바일판이 한글화되어 정식발매되었던 모양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진구지가 작은 사건을 맡아 의뢰에 착수하는데, 다른 사건과 맞물려 숨겨진 음모에 다가서는 구성입니다. 플레이어는 주인공 진구지 사부로를 조작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고,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 탐문을 하고, 때로는 수색을 통해 단서를 찾고, 여러 증언과 물증을 토대로 추리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갑니다. 게임 진행 중에 힌트나 조언도 나오고 하니 차분하게 따라가면 공략을 볼 필요 없이 엔딩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쉬운 편이네요.

제가 탐정 진구지 사부로 시리즈를 접하는 건 이 작품이 처음인데, 건조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와 재즈 선율이 인상적이네요. 이야기에서 다뤄지는 사건도 현실에 있을 법하고요. 희생자가 몇 명이고 죽어나가는 모습이나 주인공이 적에게 맥없이 당하는 부분이나 가차 없네요. 본편의 메마른 정서와 씁쓸한 뒷맛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붙어 있는 수수께끼의 사건수첩도 재미있네요. 여기저기서 얻을 수 있는 패스워드를 통해 다양한 특전도 즐길 수 있습니다. 캐릭터 파일에서 게임상에서는 알 수 없었던 뒷 설정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고요.

게임의 명대사(…가 아니라 독백?)하면 역시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가 아닐까 싶네요. 주인공 진구지는 엄청난 골초예요. ‘담배 피운다’라는 커맨드가 있는데, 이걸 선택하면 여기저기서 담배 피우며 사색하거나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곁에 누군가 있다면 상대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진구지가 어느 정도 상식있는 사람이라 상황에 따라 담배를 삼가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게임 중 담배 안 피우면 진행이 안 되는 부분도 있더군요.

단점이라면 수색모드에서 3D 모델링된 내부를 움직이며 이것저것 조사하는데 움직임이 조금 답답하다는 점 정도? 그리고 플레이 시간이 좀 짧은데 이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겠죠. 요즘은 게임 플레이 시간이 너무 길어도 괴롭더라고요. 이번 이야기에서는 탐정 사무소 소장인 진구지와 조수 요코의 미묘한 관계가 두드러지던데, 전작을 안 해본 입장이라 과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 수 없었던 점도 조금 걸리네요. 진구지와 요코의 관계도 신경 쓰이지만, 중국인 세 남녀의 삼각관계가 조금 흥미 돋았습니다. 본편에서는 결국 비극으로 끝났지만요.

어쨌든 바로 뒤 후속작인 『KIND OF BLUE』는 같은 PS2 플랫폼으로 나온 데다 스토리도 바로 연결되는 뒷이야기인 듯하니 플레이해봐야겠어요. 그 뒤 시리즈의 다른 작품도 플레이해보고 싶네요. PS1로 초기 네 작품을 모은 『Early Collection』이 나오긴 했지만, 리메이크가 아니라 패미컴판을 고스란히 모아둔 복각판이라 차마 플레이 못 하겠고…;; (이건 리메이크된 DS판만이 살 길인가…) PS1로 나온  5~7편과 PSP로 나온 『재와 다이아몬드』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