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에 항상 빙글거리는 자칭 두뇌노동담당 미형소년 핀. 흑발에 눈매가 사나워 언제나 육체노동담당을 떠맡는 청년 클레이. 그들이 회수하고 배달하는 것은 ‘보내지 못 한 편지’, ‘쓰지 못 했던 편지’, ‘정말로 원했던 편지’, ‘평범하지 않은 편지’ 같은 전해질 리 없는 메시지. 그들은 <영원한 낮의 숲>에서 빛나는 안개를 지나, 때로는 흡혈귀의 성탑으로, 때로는 반인반수 이종족에게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편지’를 회수하고 배달하러 간다. 세계를 지탱하는 사소한 기도를, 내일을 이어주는 꿈을, 어디에나 있는 ‘당신’에게 전한다. <우체부>들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시공을 뛰어넘어 미처 전해지지 못한 편지를 회수하고 배달하는 신비한 우체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속편인 『클레이와 핀과 소원의 편지』도 나왔네요. 이 책의 저자인 토모노 쇼는 그룹 SNE 소속 게임 디자이너 겸 소설가라고 합니다. TRPG, 보드게임, 카드 게임 등을 만드는 아날로그 게임 디자이너인데, 『루날 사가』와 『요마야행』 등 자신이 만든 게임을 바탕으로 게임 플레이 내용을 글로 옮기는 리플레이나 게임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써내기도 했다는 모양.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구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곳. 여러 평행세계 중 멸망한 지구의 조각이 이어 붙여 놓은 기워진 지구 ‘패치 워크 어스’입니다. 성격이 정반대인 우체부 콤비 핀과 클레이는 시간의 틈새에 있는 <영원한 낮의 숲>에서 빛나는 안개를 지나 시공을 뛰어넘어 편지를 전해줌으로써 사람 사이의 인연을 강하게 잇습니다. 핀과 클레이를 비롯해 기워진 지구를 이어 붙여 유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 바로 <소이어즈>이고 기워진 지구를 갈가리 찢어버리기 위해 암약하는 이들이 바로 <리퍼즈>이지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다섯 가지 짧은 사연이 엮인 단편 연작 구성의 작품으로 제각기 별개의 이야기인 듯하지만, 에필로그에서 작은 인연 하나하나가 엮여 세계 큰 흐름을 바꾸었다는 사실이 은연중에 드러나네요. 기워진 지구의 존속 여부를 둘러싸고 서로 맞서는 <소이어즈>와 <리퍼즈>의 대립이 향후 전개에 중요하게 부각될 듯합니다.
요새 유행하는 전형적인 미소녀 중심 라이트 노벨과 동떨어진, 마치 미디어웍스 문고 쪽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잔잔한 소설이네요. 톡특한 설정과 세계관이 작품의 특징. 우리가 익히 아는 지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멸망한 평행세계의 지구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기워진 지구를 통해 친숙함과 기묘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워진 지구를 둘러싸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소이어즈>와 갈기갈기 찢어버리려는 <리퍼즈>의 대립에 호기심이 이네요.
잔잔한 분위기의 작품이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이 단점일 듯. 주인공인 우체부 콤비 핀과 클레이는 편지를 전해주는 일이 업무인데, 때때로 두 사람을 방해하는 적과 충돌할 때도 있지만 액션이나 배틀이 그리 시원치는 않습니다. 독특한 세계관에 흥미를 느끼고 잔잔한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주는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즐겁게 읽을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