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천사’ 펀딩 사태에 대한 주절주절

‘달빛천사[일본 원제:만월을 찾아서(満月をさがして)]’ 펀딩에 관련해서 울적하고 답답한 마음을 정리하고 털어버릴 겸 간략하게 주절거려 봅니다. 이래저래 심난한 상황이므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서 횡설수설, 조잘조잘, 떠벌떠벌, 궁시렁궁시렁… 오랜만에 쓰는 글이 이런 내용이라니…

글을 쓰기에 앞서, 저는 타네무라 아리나의 원작 팬으로 시작해서 일판과 더빙판 모두 좋아했고, 더빙판 주인공 성우 이용신의 팬은 아니었지만 호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밝힙니다.

이번 일은 텀블벅에 올라온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국내 정식 OST 발매’ 펀딩에서 시작됩니다.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펀딩액 26억 원을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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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풀문) 성우 이용신의 달빛천사 국내 정식 OST 발매! 풀문, 15년 후 이야기! 돌아온 풀문! 캐릭터 모닝콜과 음성 편지!

위 내용을 보고 당연히 ‘달빛천사’라는 작품을 메인으로 한 앨범이라고 생각했죠. 일이 잘 풀려서 기왕이면 원작 일러스트가 들어가면 좋은 거고, 아니어도 처음 올라온 시안대로 푸른색 배경에 달이 있는 표지로 나와도 상관없었습니다. 그저 작품을 잘 연상시키는 커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웬걸… 펀딩 마감 후 뜬금없이 올라온 소식은 성우 사진 커버 알림이라서 당황스럽더군요.

작품 OST 및 보컬 앨범과 개인 또는 그룹이 내는 아티스트 앨범은 방향성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곡이 실리더라도 전자는 작품 자체에 충실하길 바라고, 후자는 그냥 아티스트 마음대로 하면 된다는 주의. 이 기준에 국적은 상관없고, 좋아하는 성우나 가수가 대상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게 과몰입 일빠 소리 들을 일인가 모르겠네요.

애니 OST 중에서도 가수 표지 쓴다는 말이 많은데, 그건 주로 주제가 싱글 시디고 가수 명의로 정식 디스코그래피에 올라가니까 개인 음반의 범주에 걸쳐 있는 거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수 사진 써도 애니 커버를 같이 싣거나, 따로 애니 커버판이 나오거나, 띠지를 끼워주는 등 대체로 양쪽 니즈를 충족하죠. 작품 OST나 보컬 앨범은 작품 일러스트나 작품 분위기에 맞는 표지를 쓰고요.  컴필레이션 앨범은 특정 작품 색을 드러낼 필요 없이 앨범 콘셉트에 맞추면 되겠죠. 예전 우리나라 발라드 컴필레이션 앨범 ‘연가’에 이미연 사진이 실린 것처럼…

Chang’in my life의 싱글과 앨범은 주인공 성우이자 보컬인 myco의 사진을 커버로 썼죠. 앞서 말했듯이 싱글은 아티스트 앨범 성향도 띄기도 하는데… Chang’in my life의 세 번째 싱글 「Myself/New Future」는 초회 특전으로 애니메이션 픽처 레이블을 제공했고, 커버 뒷면 책상 위에 깨알같이 작게 애니 사진을 넣어 줬네요. 네 번째 싱글 「ETERNAL SNOW」는 뒷면이 애니메이션 일러스트입니다. 다섯 번째 싱글 「エトランゼ/ Love Chronicle」는 애니 일러스트를 안 썼지만, 테레비 아사히 드라마인 ‘아침 미궁 안내의 주제가인 ‘에트랑제’와 일본판 달빛천사 네 번째 엔딩인 ‘Love Chronicle’이 함께 수록된 아티스트 앨범 성격이 강하네요.

보컬 앨범은 아티스트 앨범이니까 보컬이 표지를 장식하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하고, 애니메이션 OST 1, 2와 52화 파이널 콘서트를 콘셉트로 잡은 「풀문 파이널 라이브」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표지입니다. 여담으로 「풀문 파이널 라이브」 북클릿에 실린 작품 디스코그래피에 싱글 시디는 안 들어가 있더군요. 같은 토시바 EMI에서 나온 시디인데 애니 음반으로 안 치는 건지 다른 문제가 있는 건지…

아, 그러고 보니 몇몇 곡은 애니메이션을 위해 새로 제작한 게 아니라, Changin’ my life의 기존 곡을 가져다 쓴 거라더군요.

어쨌거나 이번 건은 굳이 원작 일러스트가 아니어도 상관없고, 작품 분위기만 잘 살리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이었어요. 그냥 처음부터 성우 개인 커버 앨범이라고 했으면 그런 데 연연하지 않았을 텐데, 작품 정식 OST 앨범이라 해놓고 나중에 개인 앨범이라 하니 의아해지더라고요. 제가 생각한 방향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성우 사진 커버가 예쁘게 나오기는 했으니까 상관없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던 차, 새로 올라온 해명문에 커버 디자인 같은 건 문젯거리도 안 될 대형 폭탄이 떡 버티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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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음원 커버 라이센스를 얻어서 앨범 내는 건 문제없다? 그렇죠. 그런 권리를 산 거니까. 판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일러스트를 사용할 수 없다? 네, 권리를 못 얻었으면 쓰지 말아야죠.

달빛천사에 나오는 곡 맞으니까 홍보에 써도 문제없다? 네, 출처 표기는 아무런 문제도 없죠. 풀문 성우를 맡은 이용신? 네, 경력 밝히는 것도 괜찮죠.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단순히 정보를 드러내는 정도가 아니잖아요.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정식 OST 앨범, 15년 후에 돌아온 풀문, 등장 캐릭터 보이스 메시지… 이것들을 통해 이 앨범이 무슨 콘셉트고 뭘 세일즈 포인트로 삼는지 투명하게 보이는데… 작품 네임밸류를 활용하면서도, 이 시국에 앨범 이름에 작품명을 넣으면 원 저작자에게 수익을 나눠줘야 하니까 불매 운동 핑계로 이를 어물쩡 회피한다는 뉘앙스의 해명문을 올려서 마음이 팍 식네요

대가를 치르기 싫으니까 앨범이나 콘서트에 달빛천사라는 이름을 직접 넣지는 않지만, 교묘하게 작품 이름과 캐릭터를 사용해서 법에 걸리지 않도록 그레이존을 파고 들어 이용해 먹겠다? 이건 도저히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지점이잖아요. 이 정도면 개인 앨범이라고 해도 슬레이어즈 메구믹스나 모리구치 히로코의 건담 송 커버스처럼 작품명을 명확하게 명시하는 게 맞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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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 하니 콘서트 굿즈도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한 이미지를 교묘하게 수정해서 fullmoon이라는 글자를 박은 디자인이라던데요. 하아… 똑같지 않으니 괜찮다? 표절도 기준을 교묘히 엇나가게 하면 다 괜찮다고 하실 분들인가요…? 무엇보다 자신이 부른 노래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 펀딩을 열기로 하셨다는 분이, 권리에 대한 대가는 치르기 싫어서 편법을 이용한다고 하면 누가 좋게 보겠어요.

OST라고 해놓고 리메이크곡이 실리는 걸 문제 삼는 분들의 심정도 이해는 갑니다. 원래 듣던 추억의 음악을 그대로 느끼고 싶은 분들도 많을 테니… 저는 오프닝곡을 제외하고는 음반으로 나온 적 없는 곡들이라 원음 데이터가 남아 있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고, 15년이 지났으니까 새로 녹음한다고 해도 차이가 있을 테고, 몇 주년 기념 어레인지 같은 걸 좋아하니 그리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만.

차라리 처음부터 성우 개인 커버 앨범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달빛천사’ 네임밸류를 상품팔이 홍보로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오해의 소지도 없고 문제 될 지점도 없었을 텐데… 달빛천사 관련 곡이 수록된다는 사실을 어필하면 지를 사람은 많았을 겁니다. 저도 그랬을 테고.

주최 측에서 잘못된 표현으로 오해를 사게 만든 게 확연한데,  펀딩 내용을 잘 확인해보지 않았다는 둥, 유튜브나 SNS에서 밝혔는데 이제 와서 딴 소리 한다는 둥 손가락질하는 성우 팬들은 대체 뭐죠? 텀블벅에서 펀딩 했는데, 따로 유튜브나 SNS까지 쫓아가서 공지 확인해야 하는지는 미처 몰랐네요.

분명 의미 있는 펀딩이고, 이를 바탕으로 계속 애니 음반 관련 펀딩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기대했습니다. 성우분이 짧은 기간 동안 전곡을 수록하느라 고생도 하셨을 거고, 펀딩 구성품도 풍부하고, 콘서트에 힘을 쏟으며 열심히 하시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아닌 건 아닌 거죠.

주최 측에서 표지 투표 혹은 환불이라는 대안을 내놓긴 했습니다만, 표지고 뭐고 전 이 앨범을 도저히 고운 눈으로 볼 수 없게 되었네요. 과도한 빠와 까의 막말과 대립도 진 빠집니다. 원작을 통해 애니가 나와 캐릭터가 있고, Changin’ my life가 좋은 곡을 만들고, 성우가 색깔을 입혀 비로소 완성이 된 곡인데… 원작이고 일판 성우고 다 까며 실드 쳐대는 극성 성우 빠 때문에 마음이 삐뚤어져 저도 까가 되어버릴 것 같네요. 그런 분껜 성우 이용신의 오리지널곡만 들으라는 말씀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작품을 다룬 펀딩이라 기대했습니다만, 여러모로 씁쓸한 기억만 남게 됐네요. 이번 일의 여파로 펀딩 추진은 소극적이 될 테고, 펀딩 참여 역시 저조해지겠죠… 저도 징글징글해서 당분간 펀딩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듯. 일러스트는 됐고 정식으로 라이센스를 얻어서 ‘달빛천사’란 이름을 정당하게 이용하거나, 꼼수 쓰지 말고 그냥 개인 앨범 노선으로 갔으면 이렇게 나가떨어지지는 않았을 텐데…orz

달빛천사 펀딩(…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제 모르겠지만)  모르는 뇌 삽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