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17 -the out of infinity-

5월 1일, 연휴를 맞아 LeMU에 많은 휴양객이 찾아듭니다. LeMU는 인공섬 인젤 누르를 시작으로 해저 3층까지 약 51m에 걸쳐 건설된 해양 테마파크. 그러나 평화롭고 느긋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LeMU내에서, 난데없는 경보음이 울려 퍼지는데…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게 LeMU에 갇혀버린 7명의 사람은 과연 무사히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없는 KID의 대표작 인피니티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KID가 남아있을 당시 여러 기종으로 이식되었고, KID가 사라지고 나서도 판권은 사이버프론트로 넘어가 PC 염가판과 PSP판 등이 발매된 인기작입니다.

이 이야기는 5월 1일부터 7일까지 약 일주일 동안, 침수되어 밀폐상태인 LeMU에 갇힌 일곱 명의 조난자가 무사히 지상으로 탈출하는 것이 목적인 서바이벌 어드벤처(…라고 하기엔 초중반까지는 좀 느긋한 분위기지만 어쨌든)라고나 할까요. 초반의 선택지에 따라 조난자인 타케시와 기억상실의 소년, 둘 중 하나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 타케시 시점 : 츠구미 & 소라

주인공인 타케시는 털털한 성격을 지닌 20세의 대학 3년생. 어찌하다보니 일행의 식사담당―메뉴는 거의 타츠타 샌드뿐이지만―으로 낙찰. 타케시 시점에서 공략 가능한 것은 냉정하고 똑 부러진 성격의 소녀 츠구미와 LeMU의 시스템 엔지니어인 소라입니다.

타케시에게 냉랭한 태도를 취하는 츠구미는 뛰어난 신체능력과 불로불사의 몸을 지닌 큐레이 바이러스 보균자. 그동안 어떤 수라장을 거쳐왔기에 일반인이라면 몇 번이고 죽고도 남을 상황에 처해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행동력은 보통이 아닙니다. 의외로 귀여운 것에 약한지 일행 중 막내뻘인 코코에게는 매우 다정하게 대해주고, 그녀의 오랜 동반자인 햄스터 차미 역시 매우 아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타케시 시점에 비해 소년 시점의 츠구미가 훨씬 더 날이 서 있는 느낌이라, 츠구미가 루프 및 그에 대한 내막을 인식했기 때문인가 했는데… 진실은 조금 다르더군요.

소라는 LeMU 시스템 일부로써 기능 하는 동시에 LeMU를 총괄하는 메인 시스템으로 일행들에게 비치는 소라의 모습은 실체가 아니라 RSD로 투영하는 영상 홀로그램입니다. 딱히 타케시 일행에게 자신이 인간이라고 거짓말을 하진 않지만, 굳이 타케시의 착각을 지적하지 않고 대강 얼버무리는 것은 보다 인간과 가까운 존재로 있고 싶었던 소라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인 모양. 타케시와의 교류를 통해 인간적인 감정을 학습하고, 타케시를 연모하게 됩니다.

타케시의 일행이라는 남녀 3인조가 이야기와 연관이 있으려나… 했는데, 그런 건 전혀 없네요.

  • 소년 시점 : 유우 & 사라

두 번째 주인공은 어째서인지 과거의 기억을 깡그리 잃어버린 기억상실의 소년. 타케시 왈, 외견 연령은 14, 15세 정도. 소년 시점에서 공략 가능한 인물은 LeMU에서 일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생 유우와 유우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뛰어난 실력을 지닌 해커 사라입니다.

유우는 발랄한 성격을 지닌 분위기 메이커로, 15년 전 실종된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 위해 LeMU에 찾아든 여대생입니다. 본명은 무지 길지만, 그저 간편하게 줄어서 호칭은 유우. 유우 루트 후반부에 유우의 본명이 ‘타나카 유우비세이아키카나’라고 밝히는 장면에서 유난히 ‘아키’를 강조하는 장면이나, LeMU 탈출 후 유우의 어머니와 재회하는 장면을 보니 타케시 시점과 소년 시점의 이야기에 시간 차가 있고, 각각의 유우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게 감이 팍 오더군요.

사라는 포지션이라든가 여러모로 코코랑 겹쳐지는 부분이 많은데다 소년이 사라에게 느끼는 격렬한 감정 때문에 혹시 사라가 코코의 클론은 아닐까 싶었는데(코코랑 사라, 두 사람의 용모나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그다지 안 닮은 클론이 「Never7」에 등장하기도 했고…), 사실 별 관계 아니었다는 게 도리어 충격적…;; 코코 편에서 사라가 양배추 씹어먹는 모습이 귀여웠어요.

  • 코코 편

타케시 시점과 소년 시점의 각 히로인 루트를 모두 공략하면 열리는 코코 편. 처음에는 코코 편이 처음부터 독립된 시나리오인가…했는데, 기존 타케시 시점과 소년 시점에 추가되는 선택지에서 적절한 것을 고르면 코코 편으로 돌입하는 방식이더군요. 타케시 시점과 소년 시점, 어느 쪽으로 진행해도 결말은 같지만 초 중반부 내용은 살짝 다릅니다.

타케시 시점의 이야기와 소년 시점의 이야기가 상황이나 흐름이 비슷해도 사실 시간대가 다르다는 건 초반에 눈치 챘는데… 타케시와 소년의 정체와 연관관계는 좀 의외였어요. 두 시간대 모두 소년이 동일인물―또는 클론―일 거라 생각했는데… (유우 엔딩에서 나오는 오랜만이라는 말에 낚였다…) 코코 편 후반에 밝혀지는 소년의 정체와 제3시점 블릭빙켈의 존재는 좀 충격적.

사실 이 이야기에서 루프를 돈 건 제3의 존재인 블릭빙켈과 그와 동화해 간접체험을 한 소년(호쿠토), 그리고 제3시점을 빌려 이야기의 전체상을 꿰뚫어 봤던 코코뿐. 코코 편 클리어 하기 전까지는 소년시점인 2034년의 이야기가 라이프리히 제약의 음모―이를테면 티프 블라우 바이러스 관련 실험의 일환으로 과거 사건의 재현을 통해 상황을 비교분석해 본다든가…―와 관련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사건의 주모자와 목적이 상상 외였습니다. 결론은 다함께 해피엔딩, 해피엔딩.

 

프롤로그에서 타케시와 소년의 시점이 각각 번갈아가면서 전개됩니다만, 이때 서술은 1인칭으로 펼쳐지지 않고 타케시와 소년을 3인칭 ‘그’라고 표현하길래 뭔가 좀 어색하다 싶었는데… 코코 편 에필로그까지 플레이하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이런저런 복선이나 트릭이 매우 절묘하게 짜여져 있어서 코코 편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추정하기 어려웠으니…왠만한 플레이어들은 이런저런 속임수에 홀라당 속아 넘어갔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