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DR FORCE “Standard Edition”

뛰어난 해킹실력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해커집단 스테펜 울프의 일원인 소마 토오루. 팀을 해산하기 전 동료들과 기념 삼아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한 건 해보고자 군의 데이터베이스에 숨어든 것을 계기 토오루의 인생이 크게 뒤바뀌게 되었으니… 넷공간내에서 군(FLAK)과 테러리스트 조직 페타오의 항쟁에 휘말려 팀의 리더이자 소중한 파트너인 유야를 잃게 된 것. 마음속으로 유야의 복수를 다짐하는 토오루는 자신 앞에 나타나는 수수께끼의 전자체유령 소녀와 군, VSS, 페타오 등의 여러 인물과 접촉하게 되면서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는데…

 

TGL 산하의 성인게임 브랜드 기가에서 내놓은 PC용 액션 어드벤처 게임 『BALDR FORCE EXE』를 기반으로 콘솔용(DC, PS2)으로 이식되었던 요소들을 사용해 전연령판으로 내놓은 물건입니다. PS2판에서는 초호화 성우진을 기용해 PS2판의 음성과 PC판의 음성 중 선택해서 즐길 수 있는 듀얼 보이스 시스템을 채택했는데, 스탠다드 에디션에서는 본래 PC판에서는 음성이 없었던 토오루만 PS2판의 음성이 추가되었을 뿐 나머지는 PC판 음성만이 수록되었네요.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야기의 진실에 다가서는 구조로, 캐릭터별 공략 가능 순서가 정해져 있고 각 히로인 간에 비중의 차이가 납니다. 미노리 & 아야네 – 츠키나 & 량 – 바첼러 – 렌 순으로 공략 가능. 이야기의 모든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렌 루트까지 마쳐야 해요.

  • 미노리 & 아야네

제1소대의 서포터이자 유일한 상식인인 미노리. 그녀는 군대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양갓집 아가씨지만 나름대로 상처를 안고 있었으니… 과거 미노리가 교대에 다니던 시절, 교생실습 때 그녀가 맡은 아이들이 테러에 휘말려 죽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자신의 부주의 때문에 아이들이 죽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던 미노리는 넷상에서의 테러리스트의 근절을 위해 군에 투신한 모양. 초반부터 토오루에게 호감을 품고 은근히 어프로치를 해오는데, 정작 토오루에게 무시당하기가 일쑤라 조금 불쌍한 것 같습니다. 특히 렌 루트에서는 몇 번을 무시당한 건지…;; 이야기의 핵심에서 가장 동떨어진 미노리이지만, 량 루트에서 그녀가 과거 겪었던 사건이 VSS와 군의 계획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제1소대의 대원인 아야네는 슈미크람 파일럿으로 격추 대수 톱을 자랑하지만, 무모한 행동을 일삼기 때문에 동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과거 겐하에게 군인이었던 동생을 살해당해 복수심에 불타는 중. 겐하를 처치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겐하를 끌어들이기 위해 군의 기밀정보를 흘려보내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원래 울보에 어리광쟁이지만, 겐하에 대한 복수심과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언제나 타인과 거리를 두고 감정표현을 억누르는 중. 아야네는 유야를 죽인 장본인…이지만, 패닉상태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아야네 본인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나중에 진실을 알고서, 자신도 경악하지요. 복수에 모든 것을 걸었던 그녀이기에 마찬가지 입장인 토오루를 앞에 두고 극단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데… 아야네는 다른 루트에서도 토오루에게 큰 힘이 되어주곤 하는 인물입니다. 츠키나 루트에서는 해피엔딩의 열쇠를 쥐고 있기도 하고요. 량 루트에서는, 뭐… 살짝 껄끄러운 관계지만.

  • 츠키나 & 량

츠키나는 토오루의 소꿉친구이자, 스테펜 울프의 일원으로 서포터 역할을 담당하던 소녀입니다. 후에 사설경비조직인 VSS에 스카우트 되어 파일럿으로 활약하게 되지요. 츠키나 루트에서 토오루는 츠키나의 설득으로 유야의 복수를 포기하고, 가족같은 존재인 츠키나를 위해 그녀와 함께 VSS에 입사하게 됩니다. 이 루트에서 츠키나가 VSS의 사장인 레이카에 의해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과정이 꼭 거미줄에서 발버둥치는 나비를 연상시켜서 좀 답답한 느낌이었습니다. 레이카는 빈민층에 대해 묘하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은근히 깔보는 듯한 언동을 보여주는 등 어딘가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렌 루트에서는 레이카가 사실 빈민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네요. 그간의 행동는 자격지심이었던 건가…

량은 페타오의 리더인 쿠온을 무척이나 따르는 말괄량이 아가씨로, 페타오의 아이돌적인 존재. 건망증이 심해서 뭐든지 곧잘 잊어버리는 주제에, 순간 암기력은 어마어마 하다고 하네요. 토오루 입장에서는 량 루트가 가장 처절한 느낌… 어쩌다보니 배신자 입장으로 함께 싸우던 군 동료들과 적대하게 된 것은 물론이요, 동료들이 희생되는 것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고, 오랜 친구는 눈 앞에서 자살해 버리고, 본인은 모르지만 소꿉친구를 자신의 손으로 쓰러뜨리고(전자체가 남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죽었겠지…), 자신에게 진실을 보여준 쿠온과 페타오의 동료들이 몰살하는 걸 막지 못했으며, 자신을 거둬주었던 상관과 대치한 뒤 모든 걸 등지고 투쟁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으니…;; 그 이후로도 거대 권력에 대항하여 많은 걸 희생하며 싸워나가야 될테고. 배드엔딩에서는 범죄자 낙인이 찍혀 갱생용 칩을 이식받아 사고의 제약을 받게 되었으며, 단 하나 남은 소중한 존재인 량마저 자신을 잊고 레이카의 손아귀에 떨어졌으니 구원의 여지가 없네요.

그나저나 구제불능의 개망나니 겐하도 량에 대한 마음만은 진심인 것 같은데(자신에게 반항하는 량을 봐준다거나, 량이 납치되자 불같이 성내고, 량을 구출해 준 토오루에게 감사를 표하는 등 평상시 겐하의 행동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모습…), 량이 있는 페타오 본거지의 위치를 팔아 넘기고 레이카에게 붙은 건 좀 이해가 안가요. 량 루트에서야 토오루의 존재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치겠지만. 일그러진 파괴본능이 량에 대한 호감보다 더 강했던 것일지… 겐하도 피해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악행이 용서되는 건 아니지요. 렌 루트에선 안식을 얻는 것 같지만…

  • 바첼러 & 렌

스테펜 울프의 일원인 바첼러는 팀원들에게조차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초일류 해커로, 그 정체는 나이 어린 소녀. 자신이 소녀라는 사실에 열등감을 느껴서인지 바첼러(Bachelor)라는 이름을 사용해 왔는데, 이 이름 때문에 선입견이 생겨서 토오루는 바첼러의 정체가 히키코모리 독신 중년 변태 게이남일 거라고 상상하기도 하지요. 토오루의 팬을 자처하며 토오루를 열심히 감시하는 스토커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바첼러는 군에서 행한 브레인 프로젝트의 다섯 실험체 중 하나로, 쿠온이 데리고 도주한 네 아이들 중 하나입니다. 그녀가 지닌 경이적인 연산능력은 실험에 의해 얻어진 결과지요. 레이카 왈, 실험체 중 유일한 성공작. 다른 네 명의 실험체와는 달리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없는 모양입니다. 토오루도 부작용없는 성공작인 것 같지만, 토오루가 피험체가 된 프로젝트4는 쿠온 주도하에서 이뤄진 듯하고, 그 연구 결과는 레이카의 관심밖이었던 것 같아요. 바첼러 엔딩 중에서는 토오루와 무사히 재회를 하는 「히카루」엔딩 보다는 여운이 남는 「바첼러」엔딩이 마음에 들었어요. 바첼러는 렌 루트에서 크게 활약합니다.

토오루 앞에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전자체유령 소녀 렌. 넷공간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놀라운 기행을 보여 주기 때문에 토오루는 렌을 굉장한 실력의 해커라고 여기지만, 렌에게 전문용어나 지식을 늘어놔 봤자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입니다. 렌 루트는 이야기의 모든 비밀이 밝혀지고, 각 캐릭터들이 품고있던 고뇌가 해결되는, 말하자면 대단원 루트입니다. 토오루와 렌 한정으로 볼 때는 처절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무난한 이야기네요. 동료들이 차례로 죽어나갔을 땐 렌 루트도 량 루트처럼 처절한 전개가 펼쳐지려나 싶었지만, 등장인물 대부분에게는 과거의 응어리를 풀고 본인 스스로가 납득할 만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고… 렌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리바이어던이 사실 우연히 생겨난 부산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좀 맥빠졌습니다. 최종병기 운운하길래 뭔가 거대한 음모아래 계획적으로 탄생한 물건일 줄 알았건만. 어쨌거나 렌이 너무 안쓰럽습니다. 8년간 넷상을 방황하며 자신을 잊어버린 소중한 오빠를 뒤에서 몰래 바라보며 외로움을 곱씹고 있었으니… 게다가 본체는 이미 사망해서 현실로는 돌아갈 수 없는 몸이고.

렌 엔딩 중에서 「영원」이 모든 걸 마무리 짓는 그랜드 엔딩이라는 느낌이지만(보는 게 제일 까다롭기도 하고…), 잠시나마 토오루가 레이카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사실이 용납이 안되네요. 최종보스 레이카를 때려 눕힐 수 있는 건 좋았지만… 그런고로 전 첫번째 엔딩인 「렌」이 좋아요. 「융합」엔딩도 여운이 남아 마음에 들긴 하지만, 렌이 불쌍해서…

플레이 할 수록 점차 윤곽이 드러나는 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 슈미크람을 통해 펼쳐지는 액션 파트도 재미있었고요. 물론 액션 파트는 이지로 설정하고 달렸습니다. 제가 좀 액션치라서… 서바이벌 모드나 헬 모드 등 야리코미 요소도 존재하는데, 거기까지 제패할 마음은 안드네요. (헬 모드 초반에 떡실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는 렌과 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