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DR SKY Dive1 ”Lost Memory”

아늑한 이불 속, 평온하고 몽롱한 의식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친숙한 목소리에 눈을 뜨는 코우. 그런 코우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불길이 치솟는 삭막한 전장의 풍경이었으니… 순간 자신이 어디 있는지 왜 이런 곳에 있는지 도통 영문을 알 수 없어 당황하는 코우는 자신을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코우의 안위를 살피는 금발의 여성은 오랫동안 자신과 용병생활을 함께 했다는 부하 키리시마 레인.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현재 자신은 가상공간의 전장에 있으며 과거의 기억 일부를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레인과 함께 전장을 이탈해 현실로 돌아온 코우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자 하는데…

18금 남성향 브랜드 기가 소속의 팀 발드헤드에서 내놓은 발드 시리즈의 최신작입니다. 개발 도중 덩치가 커져 버려서 전후편 구성 Dive1, Dive2로 나누어 발매했다더군요. 총6명의 공략 캐릭터 루트를 반반 나누어 놓았어요. Dive1에서 공략 가능한 캐릭터는 코우의 파트너이자 부하 레인, 코우의 소꿉친구 나노하, 학생시절 친구 치나츠 등 총 3명.

전작 『발드 포스』와 마찬가지로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야기의 진실이 드러나는 구조로, 루트를 거칠수록 이야기의 범위가 확장됩니다. 이전엔 몰랐던 진실이나 전회차에서 알게 된 사실들이 더 상세하게 드러나게 되지요. Dive1에서는 레인 – 나노하 – 치나츠 순으로 공략 가능합니다.

  • 키리시마 레인

재색의 크리스마스 이후, 용병생활을 하며 각지를 전전하는 코우의 곁을 지키며 물심양면으로 코우를 지지해 온 믿음직한 파트너이자 부하 레인. 가련한 외모에 정중한 말투를 쓰는 양갓집 아가씨다운 모습과는 달리 격투기와 슈미크람전의 달인이라, 생각 없이 레인에게 수작걸었다가 큰코다친 남정네가 여럿 되는 모양입니다. 코우를 위해 헌신하는 게 삶의 보람으로, 무엇보다 코우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시합니다. 코우가 내치지 않는 한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갈 아가씨예요.

첫 플레이시 무조건 레인 루트를 타게 되는데, 코우가 놓인 상황과 코우를 둘러싼 인간관계를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루트. 기억에 구멍이 뚫려 있어 용병으로써의 자각이 없는 코우를 이끌어주며 지탱해 주는 레인과 그런 레인을 이성으로 인식하는 코우의 관계 변화가 주된 내용입니다.

레인은 학생시절 자신에게 집착하며 괴롭히는 질베르토에게 희롱 당하던 때 자신을 도와주었던 코우에게 한눈에 반한 후, 남몰래 코우의 모습을 지켜보던 중 우연히 알게된 소라와 친해지게 됩니다. 그 후 소라의 혐력을 얻어 코우가 친해질 계기를 만드려고 이래저래 노력하지만 소심한 성격과 파멸적인 요리 실력 등 여러 요소가 복합되어 번번히 계획은 실패. 학생시절 소라와 마코토의 협력 아래 레인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펼친 이런저런 작전이 오히려 코우와 소라를 더 가깝게 만들었다는게 아이러니입니다. 뭐, 솔직히 주변에 오해받을 만한 상황의 연속이긴 했습니다만… 이런저런 작전 중 슈미크람 상태로 러브레터 꽂은 창을 들이대며 사귀어 달라고 고백하는 레인의 모습이 조금 귀여웠네요. 그리고 이를 오해한 코우와 슈미크람전…;;

그나저나 질베르토… 학생시절부터 레인에게 쭉 집착해 온 모양인데, 그런 것 치고는 레인에 대한 마수를 뻗치지 않은 느낌. 코우를 쓰러뜨린 후 제대로 레인을 손에 넣을 생각이었던 걸까요? 레인에게 폭언을 일삼으며 레인을 희롱하긴 했지만, 나노하나 치나츠를 매도하고 학대한 것에 비하면 그 강도가 약한 편이니 그 나름대로 레인을 배려…한 걸까요? (퍽이나…)

  • 와카쿠사 나노하

코우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한 살 연하의 소꿉친구 나노하. 나노하의 부모님은 나노 연구자로 바쁜 일정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 코우와 둘이서 함께 지내곤 했지요. 코우와 나노하가 함께 지내던 시골 마을 사람들은 반AI파 성향이 강해 코우와 나노하의 집안을 배척했고, 아이들역시 그런 어른들의 영향을 받아 코우와 나노하를 괴롭혔던 모양. 어린 코우에게 늘 자신과 함께 하는 울보 나노하는 매우 소중한 존재이자, 반드시 지켜야 할 존재로 자리매김했지요.

재색의 크리스마스의 원인이 된 2세대 나노머신 어셈블러와 이를 개발한 드렉슬러 기관, 코우가 학생시절 믿고 의지했던 스승이자 선배 쿠리하라 나오키에 관한 전모가 드러나는 루트입니다.

나노하는 재색의 크리스마스 이후, 줄곧 드렉슬러 기관 연구자들과 함께 각지를 방랑하며 도피생활을 해온 듯. 쿠리하라와 연락이 닿는 건 이때문이지요. 현재는 슬럼가에 기거하며 넷카페 알바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계속 드렉슬러 기관 연구자들과 함께 행동했으면서 왜 굳이 따로 행동하는지는 잘모르겠지만서도…(도미니온 본거지에서 지내기는 좀 불편했나…?) 부모님의 이상을 구현화한 어셈블러와 부모님의 유지를 이어 받아 어셈블러 개발을 주도하는 쿠리하라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나중에 크나큰 위기에 처하게 되지요.

에이전트가 마인드 핵을 당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나노하의 모습을 보여주며,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레인 루트에서 코우는 아무 것도 모른채 마인드 핵으로 어셈블러 캐리어의 코어를 파괴합니다만, 이게 바로 나노하였죠. 아마도 그 때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쿠리하라는 전뇌증으로 인해 이중인격…이랄까, 광기를 품고 있는 것 같더군요. 시간이 갈수록 광기가 이성을 좀먹는 상태인데, 본인도 이를 눈치 채고 있어서인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여기는 듯. 하여간에 그 광기 때문에 존경해 마지 않는 와카쿠사 박사 부부를 그 손의 살해한 모양입니다만. 그 외 학생시절 쿠리하라가 코우에게 먹인 캡슐에 뭔가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을 듯한데, 아직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음. 코우의 뇌내칩 구조가 변경되는 거랑 뭔가 관련이 있으려나요.

근데 치나츠 루트에서 학생시절 마사가 나노하에게 마음이 있었다…라고 얼핏 나오는데, 이게 좀 의외. 당연히 마사가 치나츠를 좋아했을 줄 알았건만. 기억소행중 마사와 나노하의 관계에 대한 이벤트가 없는데다, 나노하 루트에서 마사의 비중은 거의 없는데 말이에요. 뭐, 현재 마사는 사랑스러운 아내를 얻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과거의 풋사랑은 별 상관 없겠습니다만.

  • 나기사 치나츠

학생시절 코우의 동급생이자, 마사와 더불어 팀메이트 중 하나였던 활기차고 발랄한 소녀 치나츠.  그러나 재색의 크리스마스 이후 쭉 연락두절 상태였다가 오랜만에 재회한 치나츠는 예전과는 달리 코우에게 선을 그으며 음울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코우는 그런 치나츠의 변모에 당황하면서 잃어버린 과거의 행동중 치나츠에게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닐까 고민하지요. 후에 치나츠는 반AI파 성향이 강한 조직 GOAT(통합군 대AI대책반) 소속 슈미크람 파일럿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코우와 적대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데…

재색의 크리스마스 이후, AI와 나노머신에 대한 불신과 증오로 가득차 버린 치나츠.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자 반AI파의 선두에 선 상관 키리시마 장관을 믿고 따르며, 어셈블러를 배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코우와 아키의 신뢰를 배신하기도 하고, 나노하 루트에서는 나노하가 어셈블러의 캐리어라는 걸 알고서 주저없이 나노하를 죽이려 달려들었지요.

치나츠 루트에서 치나츠는 레인의 것을 전부 빼앗는다는 느낌이 강해 기분이 찜찜하더군요. 비록 레인과 사이가 안좋은 아버지이긴 하지만, 키리시마 장관을 따르며 그의 신임을 얻고 부녀지간처럼 지내며 키리시마가 원하는 이상적인 딸행세를 하는데다, 간만에 재회한 코우에게 선을 그으며 배신하고 증오를 퍼붓더니 결정적인 순간 비겁한 방식으로 코우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져 코우를 옆에 붙들어두고, 레인과 어머니의 추억이 가득한 집에서 코우랑 이렇고 저런 짓을…

레인이 떠나간 뒤 그런 레인을 두고 바보같은 아이라고 말하는 치나츠의 모습을 보고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들더군요. 키리시마 장관도 그렇지, 레인의 추억이 서린 죽은 아내의 집을 제멋대로 코우랑 치나츠에게 내줘도 되는 것임…!? 레인이 있을 때야 레인이 실질적인 주인이라 할 수 있으니 그렇다치더라도 말이에요. 장관이랑 치나츠는 자신의 정의에 취해 남의 말을 들으려하지도 않고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는 모습이 영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더군요.

코우가 줏대없이 우왕좌왕하는 루트라는 점도 마이너스. 안그래도 장관이랑 치나츠가 세트로 비호감인데, 여기에 코우까지 가세하니 원… 치나츠 루트에서는 레인이 좀 불쌍합니다. 그간 코우를 위해 헌신해 왔던 레인인데, 적어도 레인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이별을 해야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코우와 함께 남으려는 레인을 그렇게 매몰차게 잘라내고(레인을 위해서…였다고 코우는 생각하지만, 코우가 삶의 보람인 레인에게 가혹하기 그지 없는 일…) 레인의 추억이 서린 집에서 치나츠랑 그렇고 그런 짓을…. 마지막엔 자기 손으로 레인을 장사지내기 까지 하다니…

플레이 중 어쩐지 인상깊었던 장면은 아발시티에 복원된 기숙사 화단에서 코우와 레인, 나노하가 대화를 나누던 부분. 과거에는 넷로직상 가상공간에서 꽃을 꺾으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꽃을 딸 수 없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꽃을 딸 수 있게 된 건 ‘꽃을 따고 싶다’고 바라는 사람의 바람을 AI가 이뤄준 게 아닐까…하는 내용이었는데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전작인 『발드 포스』가 떠올라서… 거기에선 꽃을 딸 수 있는 자는 넷로직을 무시하는 존재인 렌밖에 없었죠.

치나츠 편까지 클리어하고 보니, 어째 거짓된 세상에서 루프를 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 풍겨져 나오는데… 자세한 건 뒷편인 Dive2를 클리어 해야 알 수 있을 듯. 생사불명인 코우의 연인 소라의 행방과 소라의 시뮬라크라 쿠우, 그리고 이들을 꼭닮은 수수께끼의 존재 에이전트의 관계와 에이전트에게 지령을 내린 존재의 목적, 사교집단 도미니온과 아크 인더스트리의 지향점, 특이점의 정체, 광기어린 과학자 노인첼의 연구에 대한 내용 등 밝혀져야 할 것들이 쌓여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