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수강림담 -춤춰라, 빛과 그림자의 윤무곡-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북방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나라 미르히랜드 공국으로 발을 옮긴 아리아와 키라. 그곳에서 아리아와 키라는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쌍둥이 남매 트렌스와 트레이자를 만나게 됩니다. 스스로 미르히랜드 소속 군인이라 말하는 두 사람과 동행하기로 한 아리아 일행. 왕가에 휘둘리면서도 필사적으로 균형을 잡으며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라일, 스스로의 의지로 나아가기 시작한 셰난, 아리아에 대한 집착때문에 아리아를 노리는 사교집단에 연루되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향하는 딕스. 각각의 발버둥이 이어지는 가운데, 개전 소식이 들려오는데…

여러 사람들의 사혹과 음모가 교차하는 군상극 『환수강림담』 제9권입니다. 고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아리아와 그 외 여러 사람들의 상황과 입장이 교차하면서 정세에 큰 영향을 줄 사건, 즉 그간 힘겨루기를 해오던 리스탈 왕국과 슈탄제국간의 개전 소식이 터지네요.

전편에서 이교도 집단 ‘허무의 끝’의 음모에 휘말려 큰일을 겪은 키라의 부족 센드라족과 아리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페가서스의 무녀로서 일족을 책임질 의무감과 이 때문에 스스로의 손으로 연인을 단죄할 수밖에 없었던 슬픔에 괴로워하던 키라가, 아리아에게 광염과 계약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리아와 키라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처녀와 환수의 관계성.

키라는 크게 한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마음을 정한 듯이 말한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그 짐승을 ―― 광염을 만약 사역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어?”

아리아는 웃었다.

“있어. 몇 번이나.”

‘검은 사신’과의 싸움에서 막대한 피해를 내버렸을 때.
그가 다가온 것은 광염이 목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리아를 흔들기 위해 자기 주변의 사람이 노려졌을 때.
만약 광염을 사역하지 않았다면, 하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나 나오는 답은 하나.

“역시 광염을 좋아해. 이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내 환수니까.”
“그렇……구나.”

키라는 우는 듯 웃는 듯한 표정을 띄운다.

“그렇구나. ……우리들에겐, 생애 단 한 마리뿐인 짐승이지.”

환수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른 처녀와 계약을 이어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아이인 자신들은.
이 환수와 헤어지면 ―― 두 번 다시, 자신만의 환수와 만날 수 없는 것이다.
변심하는 연인보다도, 수많은 친구보다도 그 유대는 깊다.
굳이 말하자면 부모에 가까운 존재일까.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밖에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그럼, 광염에게 있어서 자신은 지금까지 키워온 많은 아이들 중 막내일까, 하고 아리아는 멍하니 생각했다. 아리아가 품을 떠나면, 다음 아이의 곁으로 간다 ――.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미르히랜드 공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리아와 그녀를 배웅하러 함께 따라나선 키라. 그 두 사람 앞에 수상한 이인조 트렌스와 트레이자가 나타나는데…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으며 떠보는 트렌스와 트레이자를 앞에 두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대응하는 아리아의 모습이 대견스럽네요. 이래저래 고생하다 보니 예전보다 더 신중하고 현명해진 것 같은 느낌.

한편, 라일은 국왕으로부터 정식으로 작위를 받아 귀족으로 승격했습니다. 사실 변방의 황무지 하나 던져주고 변경백으로 삼은 거라 실속은 그리 없지만요. 돈 없어서 토리 단장에게 저택 빌려고 비용도 대신 내줘서 간신히 피로연 열어 체면치레하는 라일을 보니 왠지 안구에 습기가… 그런 라일에게 제1왕자 셸든은 개인 소유의 아담한 저택을 넘겨주며 덤으로 집사를 하나 딸려주는데, 이 집사는 바로 워레이. 워레이는 이전에 아란담 기사단 소속의 밀정으로 등장했습니다만…. 셸든 휘하의 이중스파이였나보네요. 셸든은 사촌누이인 시에네스티타 공주와 그 동생인 셰난에게 호의적인 만큼, 후에 셰난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듯합니다만…

그리고 오로지 아리아를 손에 넣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는 딕스와 그런 딕스와 자신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덮고 싶어 뻔질나게 딕스를 찾아드는 셰난. 어이어이, 괜스레 딕스 찾아가 기름 뿌려 봤자 좋을 거 없다니까? 딕스 입장에서는 아리아를 멸시하던 철부지 거만 왕자가 이제와서 아리아에게 호의를 품고 자신에게 쪼르르 달려와 안달복달하는 걸 고깝게 여기는 건 당연하겠지요. 성종자로서 아리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뿌듯해하면서 이를 과시하듯 뽐내며 셰난에게 염장지르는 딕스의 모습이나, 이에 아연해 하는 셰난의 모습이나… 그런데, 셰난은 누이인 영수 그리폰의 무녀 시에네스티타의 성종자면서도 딱히 누이와 교감이 없다는 사실을 의아해 하지 않는 걸까요? 그리폰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런지…

금지된 비고로 들어섰던 오렐리도 뭔가 아리아에게 도움이 될만한 단서를 찾아낸 것 같고, 아리아의 아버지인 게이드와 그 처인 다이나를 이끌고 도피생활 중이던 쿠르사드는 마지막에 아리아와 재회를 이루었습니다. 쿠르사드와 인연이 있어 보이는 미르히랜드 공국의 공녀 힐디아와 그 부군 나이젤, 앞으로 벌어질 슈탄제국과의 전쟁 등이 이야기의 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두고 봐야겠네요. 차후에 광염네 막내 따님(^^) 아리아의 행보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