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

어느 여름날, 한 마을을 방문한 떠돌이 청년 쿠니사키 유키토. 인형을 조종하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청년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낡은 인형을 벗 삼아 여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행의 목적은 단 하나. 하늘에 홀로 남아 끝없는 슬픔에 잠겨 있는, 날개를 가진 소녀를 찾는 것. 그런 그에게 말을 걸어온 한 소녀가 있었으니, 그 소녀의 이름은 카미오 미스즈. 소녀와의 만남을 계기로 유키토에게 짧고도 긴 여름이 펼쳐지게 되는데…

 

KEY사에서 발매한 18금 연애 어드벤처 게임. 『Kanon』에 이은 키사의 두 번째 작품으로 DC, PS2, PSP 등의 콘솔 및 휴대용 게임기로 이식되었으며, TV 애니메이션과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인기작이지요.

이 게임은 주인공 유키토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DREAM 편, 모든 것의 시초가 되는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 SUMMER 편,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AIR 편 등 3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DREAM & AIR : 카미오 미스즈

낯선 외지인인 유키토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온 소녀. 터프한 어머니 하루코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맹한 데다가 지각은 밥 먹듯이 하고, 성적도 좋지 않은 편이라 방학 중 보충수업 참석 결정. 공룡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공룡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 “가오”란 말버릇 때문에 하루코에게 꾸지람을 듣곤 합니다. 유키토를 만난 이후 미스즈는 신비한 꿈을 꾸게 되는데…

미스즈는 이 게임의 핵심을 쥐고 있는 인물. DREAM 편에서는 유키토 시점에서, AIR 편은 미스즈를 따르는 까마귀 소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AIR 편에서는 DREAM 편에서는 알 수 없었던 이야기를 다른 시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

유키토의 희생은 잠시간의 유예를 벌어주는 것에 그쳤지만 미스즈에게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고, 미스즈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해서 오랜 시간 자신의 영혼을 속박해 온 주박을 깨뜨리는데 성공했습니다. 하루코는 무엇보다 두려워했던 미스즈와의 이별을 겪은 후 목놓아 울고 슬퍼하지만, 미스즈와의 기억를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해피엔딩. 여운이 남는 엔딩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나저나 AIR 편 에필로그에서 언급된 하루코의 나이 28세. 미스즈를 맡은 게 10년 전이라고 하니까 그 당시 연령 18세… 미스즈의 친아버지인 케이스케도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된데다 아내를 잃고 딸인 미스즈 마저 희한한 병을 앓고 있어서 힘든 처지였던 건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 해도 자기보다 나이 어린 처제에게 딸을 덥석 떠넘겨버리는 건 좀…

AIR 편 에필로그 마지막에 소년과 소녀가 등장합니다만, 이 부분이 시간 흐름상 맨 나중이 아니더군요. AIR 편 초반에 미스즈가 제방에 앉아 옆에 있는 유키토가 잠에서 깨어나길 기다리면서 소년과 소녀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이 있었음. 그나저나 그 소년이 에필로그에서 뭔가 알고 있는 듯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데, 넌 대체 정체가 뭐냐… 싶었어요.

  • DREAM : 토노 미나기

미스즈의 클래스메이트로 학년 톱을 자랑하는 총명한 소녀. 조금 엉뚱하고 멍한 마이페이스 타입. 별을 무척이나 좋아해 천문부장-부원이 미나기 한 명뿐이라 당연스레 얻은 직함-을 맡고 있습니다. 이미 폐쇄되어 인적이 끊긴 역에서 연하의 소녀 미치루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하지요.

여동생 미치루를 유산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현실을 도피해 버린 어머니 때문에, 자신도 어머니가 꾸는 꿈의 일부분이 되어 어머니 앞에서는 미치루로서 살아온 미나기. 미나기는 미나기로서 자신을 받아주는 미치루에게 안식을 얻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꿈에서 깨어나게 마련.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던 토노 모녀는 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배드엔딩 루트에서 유키토가 미나기에게 “어리광부리지 마!”하고 일갈하는 게 나름 인상적이었습니다. 미나기 스스로의 의지로 유키토를 따라나섰다고 해도, 현실도피라는 점은 다를 바 없겠지만… 결국 깨어져 버린 꿈 대신 다른 꿈으로 도망쳐버린 것 뿐이니까요.

  • DREAM : 키리시마 카노

마을에 하나뿐인 진료소를 운영하는 여의사 히지리의 동생으로 매우 발랄한 하이텐션 소녀. 피코피코 울어대는 수수께끼의 들개 포테이토와 매우 친하지요. 오른 손목에 노란 손수건을 감고 있는 게 특징. 본인 말에 의하면 어른이 되었을 때 손수건을 풀면,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이야기의 핵심과 가장 동떨어져 있는 캐릭터입니다. 늘 밝은 태도를 취하지만 사실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죄책감과 자신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언니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자괴감을 느끼고 있죠. 마지막엔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아닌, 감사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히지리에게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익인의 깃털에 깃든 시라호의 사념에 빙의 된 건, 카노가 마음속 깊이 어머니의 존재를 갈구했기 때문인 걸까요?

  • SUMMER : 칸나

신의 사자라 여겨지는 날개를 가진 종족 익인. 그 익인의 후손인 칸나는 귀인으로 떠받들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유폐되어 있는 상태. 칸나를 호위는 임무를 맡은 류야는 부임 첫 날 우연히 칸나를 만나게 됩니다. 류야는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칸나와 그녀의 수발을 드는 시녀 우라하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죠. 칸나의 자유를 억압하고 제멋대로 휘두르는 윗전의 횡포에 분노한 류야는 칸나와 우라하를 이끌고 칸나의 어머니를 찾기 위한 여행에 나서는데…

칸나의 엄마 찾아 삼만리. 세상물정 모르는 말괄량이 칸나와 느긋한 성격의 우라하, 털털한 류야 세 사람의 조합이 꽤 마음에 들었음. 류야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라하가 그렇게나 칸나를 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곁에서 돌봐주면서 모성본능이라도 발동했나? 언젠가 칸나를 구해내겠다는 류야와 우라하의 의지를 자손들이 대대로 이어 마지막에 결국 목적을 달성… 한 건 좋은데, 두 사람이 맺어진 건 칸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살짝 찜찜한 느낌.

가족의 상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익인과 신비한 힘, 기적 등의 요소가 이야기 전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비현실적인 요소는 그저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계기를 마련해 줄 뿐 현실 그 자체를 바꿔 놓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외면했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불행한 현실을 기적의 힘으로 뒤엎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키 사가 제작한 다른 작품들과의 차이점 같네요.

이 게임에서 미스즈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다른 두 히로인의 존재의의가 희박하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입니다. 미나기와 카노 루트 모두 익인의 깃털이 지닌 신비한 힘이 내용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단지 그 뿐. 카노 루트에서는 핵심 내용과 전혀 연관성이 없고, 미나기 루트에서는 미치루가 날개를 지닌 소녀에 대해 언급하긴 하지만, 중요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절제된 감정표현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게임에서 유키토와 하루코가 직접적으로 오열을 터뜨리며 감정을 분출하는 부분은 게이머에게 감동을 억지로 쥐어짜내려는 듯이 보여서 좀 불편했습니다. 물론 터뜨릴 땐 터뜨려 줘야 하겠지만, 좀 남발한다는 느낌…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