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DR BULLET “EQUILIBRIUM”

자하남 인더스트리가 만들어 낸 고도 자율 성장형 추론 네트워크  발드르 시스템. 현재 사회는 발드르 시스템의 통제 아래 돌아갑니다. 발드르 시스템을 신봉하는 발디스트와 이에 반발하는 안티발디스트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이들의 정치·이상적 완충재로써 BS감시기구군이 설립됩니다. BS감시기구군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발드르 시스템을 감시하고, 만에 하나 발드르 시스템이 파탄 날 경우 이를 배제하는 것이 목적이지요. BS감시기구군 남미방면 제14실험기동연대(SERR14)는 과격파 발디스트 집단 ‘발드르 우애 협회’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 그 분쟁이 격렬한 양상을 띠는 와중, 한 젊은 장교가 SERR14에 배속되는데…

2000년에 발매한 발드 시리즈 3번째 작품이자 『BALDR FORCE』의 바로 전작인 『BALDR BULLET』. 『BALDR BULLET “REVELLION”』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작이 나왔는데, 이를 바탕으로 추가요소를 포함해 PS2로 이식한 물건이 『BALDR BULLET “EQUILIBRIUM”』입니다.

PS2판 변경점은 시나리오의 가필 수정, 신규 CG 추가, 성우 일신에 주인공 목소리를 추가해 풀보이스화, 초심자를 위한 하이퍼 모드 탑재, 액션파트 파워업, BGM 일신, 동영상 2개 신규작성, 신규 오프닝용 새 주제가 사용 등인 모양입니다. PS2판 『BALDR FORCE EXE』와는 달리 듀얼 보이스 시스템이 아니네요. 비용 절감을 위해서일까요? 어차피 PC판 보이스를 수록했어도 굳이 옵션에서 바꿔 듣진 않았을 듯하지만서도. 어쨌거나 하이퍼 모드 최고! 액션치의 구세주 만세!!

SERR14에 새로 부임한 주인공 세르게이 커크랜드 중사는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즈 출신 HAWS 파일럿입니다. HAWS는 자하남 인더스트리가 개발한 전투 병기라고 하는데 말이죠… 『BALDR FORCE』나 『BALDR SKY』가 전뇌공간에서 슈미크람으로 전투를 벌이는 것에 비해, 이 게임의 주인공은 현실에서 전투 병기를 타고 전쟁을 치릅니다. 시대상 과거 이야기일 테니 가상공간이나 나노 머신 등 첨단 기술의 발전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겠죠.

공통 루트 겹치는 부분이 많고 스토리도 그리 길지 않아 플레이 타임은 짧은 편입니다. 멀티 엔딩이긴 한데 히로인 마다 루트 및 엔딩이 준비되어 있지는 않네요. 마지막에 세르게이와 연애 관계로 이어지는 건 레베카와 카나밖에 없는데… 레베카는 시나리오상 개별 루트가 있는 게 아니라 초반에 세르게이에게 꽂혀 전격 고백한 뒤, 맹렬 어택을 해서 대부분의 엔딩에서 세르게이 옆자리를 꿰찹니다. 카나는 개별 루트에서 세르게이와 사랑에 빠지긴 하는데, 얘네들 앞날이 완전 시궁창. 테레지아도 루트가 있긴 하지만, 세르게이와 연애 관계가 성립한다고 보긴 어렵고…

역시 메인 히로인 포지션은 레베카라 봐야겠죠. 세르게이랑 행복한 연인 관계가 성립하는 히로인이 레베카밖에 없어요. 이 아가씨, 세르게이를 좋아하는 게 빤히 보이는데다 세르게이에게 일직선으로 돌진하고 주위을 견제하는 모습이 장난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도 다들 레베카를 밀어주는 분위기고요. 기지 동료들은 다들 레베카를 배려해 물러서 주니 별 탈 없는데, 유일하게 세르게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여자 카나의 등장에 날이 바짝 서 뺨까지 쳐요. 되려 카나에게 얻어터지지만…;; 평소 세르게이 주변을 얼쩡대며 여우짓하는 게 나름 귀여웠는데, 난데없는 연적 등장에 정신이 불안정해지고, 결국 세르게이에게 버림받고 오열하는 모습이 좀 안쓰러웠어요.

레베카의 세르게이 공략기…. 먹는 약속 빌미로 낚았군!

같이 살아 돌아가면 디저트!

꼭 살아 돌아올 테니 디저트 같이 먹자!

제가 만든 디저트 같이 먹어요.

디저트 맛있는 가게로 데이트….

초반에 레베카가 스승 듀라한 소령의 인정을 받은 세르게이에게 묘한 대항 의식을 불태우는데다, 후반에 세르게이를 향한 집착과 질투가 좀 지나치다 싶었는데… 과거 얘기 들어보니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불행한 성장 과정 때문에 애정 결핍 상태여서인지 누군가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대단해요. 다른 루트에서는 딱히 라이벌도 없고 해서 노력과 근성으로 무난히 세르게이와 엮이니 별 문제 없는데… 카나 루트 타면 얀데레 기미가 보이는군요. 게임상에서 세르게이가 격렬히 연애 감정에 휩싸이는 건 카나뿐인데(그런 의미에서 진 히로인?), 그 앞에 펼쳐진 미래가 하나같이 암울합니다. 세르게이는 그냥 레베카랑 맺어지는 게 행복해지는 길인 듯.

2회차부터는 공략 순서 제한 없이 모든 루트가 열리는 모양입니다. 「뱀」 – 「개전의 봉화」 – 「허구의 소녀」 –  「복수의 여신」 순으로 플레이하시기를 추천. 이 순서대로 진행하면 점차 이야기의 진실이 드러나거든요.  카나 루트는 위의 흐름과는 살짝 벗어나 있는 느낌이라 언제 진행하든 큰 상관이 없을 듯한데, 이쪽은 「비」 – 「경계선」 순으로 플레이하면 좋을 듯해요.

엔딩을 보고 있자면 어딘가 뒷맛이 씁쓸합니다. 제대로 된 해피엔딩은 없고, 게임에서 뿌렸던 떡밥도 다 안 풀리는데다, 문제도 제대로 해결 안 된 채 끝나서… 자하남 인더스트리와 발드르 시스템, 발드르 우애 협회 문제도 깔끔히 처리 안 되었고 말이에요. 카나 루트 타면 나오는, 독일어 숫자를 이름으로 쓰는 의사들 집단은 대체 뭐죠? 이거 혹시 전작이랑 연결고리라도 있나…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어딘가 가라앉은 분위기의 결말이 그리 싫지는 않았지만요.

BALDR FORCE』와 『BALDR SKY』에 이어 3번째 접하는 발드 시리즈입니다만, 앞서 두 작품보다 좀 부족한 듯. 시나리오 구성이 떨어지고 시스템도 비교적 불편해요. 이거야 뭐 두 작품보다 이전에 나온 전작을 베이스로 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그리 좋은 평가를 못 받는 모양인데 기대치가 썩 안 높아서 그런지 그리 실망은 안 드네요. 저는 꽤 재미있게 플레이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착 가라앉은 우울한 분위기도 어쩐지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발드 시리즈 제1편 『BALDRHEAD~무장금융외전~』의 주인공 이름은 발디 커크랜드라고 하는데… 세르게이와 성이 같네요. 세르게이의 3대전 쯤 조상이 캐나다에서 러시아로 이주해왔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세르게이는 1편 주인공의 후손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