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 하이

’국민은 건전하고 충실한 생활을 보낼 의무가 있다’는 기치 아래 도입된 ‘네오 커뮤니케이션법’. 사람들의 충실한 인생을 위해 밤낮 구분 없이 적극적이고도 농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 공인 SNS 트위이터의 팔로워 수에 따라 각종 우대와 혜택을 베풂으로써 현실과 넷의 경계를 뛰어넘어 ‘인류 총 리얼충 시대’의 막을 열게 될 터였다.
그러나 이는 일부 리얼충이 부와 팔로워를 독점하는 ‘초충실 격차 사회’의 시작일 뿐이었다. ‘리얼충 랭킹’에 따라 비리얼충이 사회에서 배제되는 암흑 시대에 분연히 일어선 한 사람의 용사──아니, 비리얼충이 있었다.

마벨러스에서 내놓은 분노의 불꽃으로 리얼충의 거짓을 폭로하는 통쾌 어드벤처입니다. 열혈+개그+병맛이 어우러진 『역전재판』 스타일의 게임이에요. 제작진이 정말 작정해서 약 빨고 만든 느낌이네요. 넷이나 오타쿠 문화와 패러디가 꽉꽉 들어차 있어서 이쪽 지식이 있으면 더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을 듯합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것은 MC의 리얼충 진단. 총 다섯 개의 문제를 내는데, 제시 문제는 랜덤으로 나오는 듯합니다. 이 진단에서 MC는 플레이어가 비리얼충스러운 대답을 하면 기뻐하고, 리얼충스러운 대답을 하면 언짢아합니다. 진단 결과 리얼충으로 판정되면 게임 오버. 이때 이어서 다시 도전하면 대놓고 정답 힌트까지 주네요.

G랭크의 오타쿠 프리터인 주인공 ‘나’. 그는 뒷골목에서 버려진 고양이를 매개로 ‘그 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랭크와 상관 없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준,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에게 어렴풋한 호감을 품으며 동경하던 그에게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졌으니… 어느 날,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의 트위이터 계정을 공격해서 팔로워를 빼앗는 ENJ배틀을 부추기는 존재 MC가 등장하고, 그녀의 선동 때문에 A랭크였던 ‘그 아이’는 모든 팔로워를 잃고 Z랭크로 떨어져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충격을 받고 좌절한 ‘나’에게 기묘한 선글라스가 배송되는데… ‘나’는 웨어러블 단말 ‘MEGA-NEXUS’라는 물건을 손에 넣게 되고, 거기에 탑재된 내비게이터 인공지능 시르를 파트너 삼아서 ENJ배틀에 뛰어들게 되는데…

게임은 프롤로그 +  8장 구성으로, 게임의 흐름은 각 장마다 배틀 상대를 만나고 각종 정보를 수집한 다음 토론 배틀에 들어가 승리한 후 결과에 따른 보상을 받게 됩니다.

정보 수집 파트에서는 정보 수집 뿐만 아니라 때때로 여성 등장인물을 상대로 리얼충 체험을 통해 스킬을 입수할 수 있게 되는데, 배틀 파트에서 이 스킬을 이용하면 좀 더 수월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게임 진행 중에 모든 스킬을 얻기는 어렵고… 1회차 종료후 메뉴의 리얼충 체험을 통해 편하게 모든 스킬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배틀 파트에서는 상대방의 어필을 듣고 적절한 타이밍에 상대방을 도발해서 낚고, 증거를 제시해서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해 상대를 데꿀멍시킨 다음 마무리로 타임 오브 엑스플로전으로 상대의 실체를 밝혀내면 끝. 도발하거나 스킬 쓸 때 화면 좌측 상단의 게이지를 소비하기는 하는데, 주인공을 응원하는 댓글을 통해 게이지가 충전되니 별 지장이 없네요. 1회차 클리어 후 특정 스킬을 얻으면 게이지고 뭐고 의미 없어지지만요. 주인공은 허구헌날 시르가 고물이라고 구박해도, 시르가 주는 힌트나 각종 스킬이 편리해서 게임 진행은 수월한 편입니다.

배틀 상대의 거짓을 폭로해 신상을 턴다는 콘셉트부터, 이 과정에서 상대방을 부추기고 낚아서 물어뜯는 과정을 생각하면 껄끄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실제로 일어나는 인터넷상의 개싸움을 떠올리면 더더욱)… 게임 분위기가 대놓고 열혈+개그+병맛이어서 현실과 분리해서 생각하게 되는 면도 있고, 주인공의 목적이 팔로워 수에 좌우되는 계급 제도의 부작용에 대한 반발과 타파에 있는데다, 마지막에 상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조롱하면서 끝내는 게 아니라 진정한 모습을 긍정하고 격려하는 식으로 훈훈하게 끝나는지라 그리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어쨌거나 등장인물이 개성 넘치고, 전개가 시원스러워서 좋았어요. 게임 진행 방식도 재미있고요. 스토리가 일직선이라 여러 번 즐기기엔 적합하지 않은 내용인데, 전 사실 파고들기 요소나 다회차 노가다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별 흠처럼 느껴지진 않네요.

평가가 대체적으로 좋았고 저도 재미있게 플레이했습니다만, 아쉽게도 그리 잘 팔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네요. 인터페이스가 깔끔하고 시스템이 좋았어요. 터치 조작이 되는 것도 편했고. 『역전재판』이나 『단간론파』 같은 유형의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이나, 열혈·개그·병맛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즐겁게 플레이하실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