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더라이언: 너에게 부는 바람

엄마의 교육열을 피해 홀로 부산에 내려온 서울 아가씨, 김희정. 일단 열심히 하면 사회 초년생으로서 멋진 스타트를 끊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토익과 학점에만 매달리는 생활을 계속할 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품으며 살아가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들리는 고양이 소리에 잠을 깬 희정. 눈을 비비며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니 방안에 고양이 두 마리와 토끼 세 마리가 있었는데… 좁은 집에서 펼쳐지는 순진한 여대생과 정체불명 동물들의 이야기!

 

현재 국내에서 상업 여성향 게임 제작사 중에서는 원탑인 체리츠의 데뷔작입니다. 육성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에요. 제작사인 체리츠는 현재 모바일 게임인 『수상한 메신저』로 주가를 쭉쭉 올리고 있는데,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라 좀 꺼림칙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대체로 게임에 대한 평이 괜찮고 하니 호기심에 플레이해 봤네요.

6월 1일에 시작해서 1년 동안 날마다 일과를 선택해 능력치를 키우고 동물과의 친밀도를 올려 동거 동물과 관계를 진전시켜 가며 엔딩을 보게 됩니다. 공략 대상들이 동물로 지내는 기간은 석 달. 그 이후로는 귀 달린 사람 모양으로 변신하는데 다시 동물 모습으로 돌아오진 않네요. 즐거운 반려 동물 라이프를 원하시는 분께는 적합하지 않은 듯. 동물과 알콩달콩 애니멀 테라피를 원하시는 분께는 『맹수 조련사와 왕자님』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공략 대상은 질투심 폭발하는 검은 고양이 지수, 정중하고 신사적인 은색 토끼 지해, 까칠한 얼룩 토끼 지우, 활발하고 붙임성 좋은 주황 고양이 지연,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하얀 토끼 지은 등 총 다섯. 여주인공 희정이의 네이밍 센스가 별로라 이름이 다 비슷비슷해서 헷갈리네요. 그리고 등장 동물이 다양하지 않고 너무 편중되어서 좀 아쉽고…

기묘하게도 공략 대상 중 끌리는 인물이… 없군요. 집착 쩌는 검은 고양이가 자기 배드 엔딩에서 스토킹질해대다가 감금하는 거 보고 기겁. 내숭 떨며 뒤로 딴 짓하는 주황 고양이나 떽떽거리며 사람 무시하는 얼룩 토끼도 영 별로고… 그나마 토끼 주종 콤비가 나았는데, 은색 토끼는 옛 사랑 때문에 삽질하는 설정이 제 취향 밖이고… 어리지만 가장 믿음직하고 속 깊은 하얀 토끼가 가장 괜찮은 듯. 하얀 토끼가 유일하게 희정이의 멘탈을 다잡아줘서 마법쟁이를 부르지 앉게 손쓰기도 하고, 나중에 마술쟁이의 힘을 빌리지 않고 희정이를 직접 자기 세계로 불러들이기까지 하니 엔딩 중 가장 깔끔해요. 다만, 희정이가 화가로 좀 성공하려는 차에 불러들여서 타이밍이 좀 그렇긴 한데… 그림 대륙에서 희정이의 예술 활동을 팍팍 지원해 줄 테니 뭐 괜찮겠죠…

그나저나 게임을 올클리어하면 열리는 마법쟁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면 모든 진상이 다 드러나는데요. 이런, 이 게임이 루프물이었다니…;; 결국 마법쟁이 이야기가 진엔딩일 텐데, 그동안 공략 캐릭터와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결국 다 백지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니 허무하네요. 게임상 마법쟁이랑 주인공 사이를 어필할 만한 이벤트라도 좀 있었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설정상 무리려나?), 마지막에 이렇게 일방적으로 질러버리면 어쩌자는 건지. 이렇게 혼자서 끈덕지게 스토킹하다가 부당 계약으로 여러 명 낚아 판을 벌이더니 몇 번을 뺑뺑이 돌리다 파투내고 먹튀해도 되는 건가…? 사실 등장인물 중 마법쟁이가 가장 호감이 가는데 그와 별개로 뭐랄까 좀 찜찜.

시스템이 크게 문제되는 점은 없지만 이것저것 자잘하게 불편하네요.

1. 백로그: 보통 다른 게임에선 마우스 휠을 돌리면 나오는데 이 게임에선 메뉴를 불러들여 실행시켜야 함. 더군다나 최신 내용이 아래쪽으로 오는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아래에서 위로 글 내용이 배치됨… 여태 게임하면서 백로그 순서가 역순인 건 또 처음 보는 거 같네요…;; 이게 무슨 게시판 글목록이나 트위터도 아니고… 트위터도 엮인 글은 순서대로 표시되잖아요.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읽는 게 편하지, 역순으로 배치하면 당연히 읽기 힘들지 않나요…?

2. 오토 속도 조절: 보통 오토 속도 조절 설정은 왼쪽으로 갈수록 느리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빠른 경우가 많은데, 이 게임은 왼쪽으로 갈수록 빠른 설정이네요. 처음엔 그것도 모르고 오토 기능 켰다가 죽어라하고 텍스트가 안 넘어가서 오토 기능 안 먹는 버그가 있나 했지… 초기 디폴트 설정은 맨 오른쪽으로 가 있어서 당연히 빠를 거라 생각했을 뿐이고… 하지만 설정에서 왼쪽으로 조정하니까 속도가 빨라져 드디어 넘어가더군요. 뭐야, 이건…;;

3. 조작 불편: 행동 지정 모드 창에 상태나 아이템 사용 창이 없어서 이 또한 메뉴창을 부른다음 일일이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아이템 쓸 때마다 귀찮아 죽겠음.

차기작인 『네임리스』도 플레이할 예정인데 거기서도 이러면 좀 싫을 거 같습니다. 제발 개선되었기를… 제발 유저 인터페이스 배려 좀…

그리고 신경 쓰이는 점이 서버 기반 게임이라는 사실… 로딩 화연 뜰 때 서버에서 데이터를 받아와 플레이하는 구조 같은데… 따라서 체리츠 서버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플레이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서버 기반 게임은 서버 닫고 서비스를 종료하면 다시 할 수 없어서 싫은데… 전 사놓고 한참 묵혀둔 뒤에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뒀다가 서비스 종료해서 플레이 못 하고 버린 게임이 제법 되네요. 여럿이서 멀티 뛰는 온라인 게임도 아닌데 스팀으로 이전 했으면 굳이 서버 전송 형식을 취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서버 관리나 운영 유지에도 돈 들어갈 텐데. 복제 방지 대책이란 건 알겠습니다만 서버 문제로 몇 번인가 오류 떠서 짜증 남.

솔직히 평가에 좀 거품이 끼어 있는 거 같은데, 플레이해보실 분은 이를 감안하고 기대치를 낮추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게임에 쓰인 보컬곡과 음악은 꽤 좋았어요. 다음 번에 언젠가 차기작인 『네임리스』를 플레이하면 또 감상을 끄적거릴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