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독 꽃의 사슬 ~환상야화~

여성향 게임 메이커 아로마리에에서 나온 세 번째 작품 『나비의 독 꽃의 사슬』의 팬디스크입니다. 본편의 후일담, 퀴즈 점과 같은 미니게임, 데스크탑 액세서리 등이 수록되어있습니다. 후일담에서는 본편에서 흐르던 애잔한 정서를 흠뻑 느낄 수 있고, 미니 게임과 보상과 종막 등에서는 가벼운 개그 요소를 편히 즐길 수 있네요. 후일담은 캐릭터별로 해피엔딩과 배드엔딩을 하나씩 다룹니다. 모든 캐릭터의 후일담을 다 보면 공략 캐릭터 시점에서 펼쳐지는 뒷이야기를 볼 수 있어요. 후일담을 다 보고 퀴즈 게임을 다 풀면 보상이 열리고, 보상을 다 보면 종막이 열리네요.

시바는 본편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팬디스크에서도 유리코에 대한 집착과 근성을 인증했네요. 본인과 행복하게 맺어졌을 때 유리코를 끔찍이도 위해주는 건 물론이고, 아내가 된 유리코가 다른 남자랑 놀아나는 탕녀로 변모해도 모두 끌어안고 사랑하는 대범함이 돋보입니다. 다른 사람이랑 맺어져도 계속 미련 못 버리는 건 여전하고… 알고 보면 일편단심 순정남인데 비극과 오해가 겹쳐 결국 서로 망가져 버리는 배드엔딩 후일담 「도깨비불」이 참 씁쓸하게 느껴지네요.

히데오 배드엔딩 후일담 「빙글빙글, 빙글빙글」에서 히데오가 유리코의 변화나 자신의 주변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안쓰럽더군요. 그저 이상만을 쫒는 히데오는 시바를 상대기에 너무 버거운 듯. 그나저나 히데오, 마지막에 일 벌여서 어찌 될는지 깝깝하네요.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되어도 할 말 없는 상황. 시바는 유리코와 자기 명예를 지키려고 히데오에게 다 뒤집어씌울 것 같고, 유리코 역시 자기 보신을 위해 히데오를 외면할 것만 같아요…;;

미즈히토 해피엔딩 후일담 「캔버스 속의 욕망」에서는 주변 시선과 체면 때문에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유리코와 미즈히토 사이에 흐르는 은밀한 감정과 욕정이 두드러지는 듯. 배드엔딩 후일담 「개화」에서는 미즈히토 때문에 어둠에 몸을 담그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움직이며 주변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미즈히토의 머리꼭대기에 올라앉는 유리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마 마저 혀를 내두를 수준으로 마성에 눈을 떠버리다니, 유리코 이 무서운 아이…;;

후지타는 본편에서도 비호감 캐릭터라 후일담 플레이하면서도 크게 감흥이 없었던 듯…? 강렬하고 충격적인 시추에이션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그나저나 그놈의 페치 성향이 여전히 거북하네요. 해피엔딩과 배드엔딩, 각각 주종이 번갈아가며 상대에게 손찌검하는 모양새 역시 뭐라 말하기 어렵기도 하고…;; 사실 후지타는 유리코 발밑에서 구르는 게 훨씬 어울리는 듯합니다. 후지타 본인의 성향이 M끼 충만하기도 하고, 애정 결핍과 모성 갈구에 딱 맞아떨어지잖아요.

본편 흑막이자 최종 보스인 마지마에 대해 주절주절. 해피엔딩 후일담이나 배드엔딩 후일담이나 어느 쪽이든 마지마는 홀로 죄책감에 짓눌리면서도 유리코를 놓지 못하는 상황이네요. 유리코가 진실을 모르니 곁에 두고 품을 수 있는 거겠지만. 이율배반적 상황에 몸부림치면서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게 짠하다면 짠합니다. 간절히 바라지만 손에 넣어선 안 되는 걸 얻었기 때문에 폭발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지 어째 마지마는 감정 과다 표출 기미가…

본편에서 「상하이 애완 인형」을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유리코가 일방적으로 길들여지는 듯한 느낌으로 서술됐는데, 팬디스크의 후일담에서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서로 마음이 통한 뒤 맺어졌다는 게 의외. 배드 엔딩 후일담보면서 어째 할리퀸 로맨스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전 「여탐정」 엔딩의 제대로 된 후일담이 보고 싶었습니다. 노미야가에 차례차례 닥치는 불행의 실체를 깨달은 유리코. 마지마가 유리코의 추리를 듣고 나서 진실을 밝힌 후 자취를 감춘 뒤, 유리코는 여탐정으로 활약하며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해 나갑니다. 그 와중 위험에 빠지는 일도 있지만 항상 그늘에서 유리코를 지켜보며 도와주는 마지마 덕분에 어찌어찌 해쳐나가며 마지마의 행방을 추적하는데…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마주한 유리코와 마지마는 과연…?

대강 요런 느낌의 진지한 이야기를 바랐건만, 보상으로 들어간 「여탐정의 사건부」는 짤막한 개그물…;; 이건 이거대로 웃기고 재미있긴 한데 제가 원하던 그런 건 아니라서요.

「여탐정」 루트 이후에는 마지마가 유리코에게 위해를 가할 리가 없고, 다시는 유리코 앞에 나서지 않겠다 맹세했어도 늘 유리코를 지켜보고 있겠지요. 유리코가 상대하기에 마지마는 거물이라 쉽게 꼬리가 잡히지는 않겠지만 마지마를 끌어내려면 유리코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있을뿐더러 마지마가 무모하게 움직이는 유리코의 위기를 그냥 보아 넘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이렇게 대등하게 유리코와 마지마가 마주할 수 있다면 마지마 홀로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아도 될 텐데… 뭐, 이건 어디까지나 제 희망 사항이었을 뿐 이 팬디스크엔 그런 거 없어…ㅠㅠ

후일담 볼륨이 작아서 아쉽긴 하지만 분위기는 제법 좋았어요. 해피엔딩도 괜찮았지만 일그러지고 비틀린 관계를 드러내는 배드엔딩 쪽이 강렬했습니다. 그리고 미니 게임 플레이할 때 퀴즈 문제에 대해 상대 캐릭터랑 이런저런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재미있고요. 캐릭터별 후일담이랑 퀴즈를 제패하면 「여탐정의 사건부」를 플레이할 수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사부로의 모습이 매우 충격적입니다. 겉모습도 목소리도 성격도 달라! 완전히 환골탈태했어!! 하긴, 원래 모습대로 나오면 거부감만 들긴 하겠지만요. 이번에도 올클리어하면 열리는 종막이 웃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