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간론파/제로

‘재능이야말로 인류의 희망’이라는 이념에 따라 ‘초고교급’ 재능의 학생만을 모은 사립 키보가미네 학원에서 일어난 사상 최대최악의 사건. 사건의 전모는 밝혀지지 않은 채 그 진상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는 가운데, 계속해서 기억을 잃는 장애를 지닌 여고생 오토나시 료코와 료코의 치료의 담당하는 ‘초고교급 신경학자’ 마츠다 야스케는 그 사건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마는데… 이 두 사람에게 닥쳐오는 ‘위기’와 ‘절망’의 행방은?!

상하권으로 구성된『단간론파』 시리즈의 공식 전일담이 되겠습니다. 게임 본편 흑막에 관한 중대한 까발리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적어도 게임 1편 플레이 후에 읽어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2편에서도 언급되는 ‘키보가미네 학원 사상 최대최악의 사건’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양쪽 내용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서 반드시 양쪽 모두 접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는 삼인칭 전지적 시점과 오토나시 료코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서술됩니다. 소설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물도 있고, 게임 상 등장 캐릭터는 직접 얼굴을 비추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말로만 슬쩍 언급되고 지나가는 인물도 있군요. 주인공인 오토나시 료코와 더불어 소설의 주역인 마츠다 야스케는 게임에서 ‘초고교급 신경학자’라고만 몇 번 언급된 적이 있었죠.

단간론파 시리즈 세계관답게 희망과 절망 때문에 일그러진 인간 군상들이 수두룩히 나옵니다. 학원의 지배자인 평의위원들도 희망과 재능에 매달리며 학원 존속을 위해서는 꺼리낄 게 없는 인물들이고, 교장 키리사키 진도 딸을 향한 따스한 애정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지만 결국 희망과 재능에 대한 맹신 때문에 삐뚤어진 인간이고… 재능을 타고난 본과 재학생들도 그 재능 때문에 비틀어진 광기를 품고 있고, 예비학과 학생들은 희망을 위한 발판 취급 당하는 상황에 절망해 울분에 빠진 상황… 뭐, 에노시마 준코가 사태를 부추기고 악화시킨 면이 있긴 한데, 이 세계관의 밑바탕 자체가 일그러져 있는데다  정상적인 인물은 가뭄에 콩나듯합니다…;;

기억을 유지하지 못 하는 장애를 지닌 료코가 소꿉친구이자 가장 소중한 사람인 마츠다에게 열렬히 애정을 퍼부어대며 표현하는 모습이나. 마츠다가 그 행동을 흘려 넘기며 솔직하지 못 하게 뚱하게 굴면서도 내심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제법 훈훈하게 잘 어울렸는데 말이죠…

물론 게임 본편 상황이 이미 막장이라서 해피엔딩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권 소개글에 ‘기다리는 경악의 라스트 신에 당신은 반드시 절망한다!’라고 대놓고 드러내기도 했고. 그렇지만 말이죠… 마츠다, 불쌍해요. 그렇게나 지고지순한 순정남이었는데 하필이면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자신의 절망에 희열을 느끼는 초절정 절망 페치라서 망했음. 에노시마 준코가 그냥 남의 불행이나 절망만을 즐기는 평범한 악당이었으면 이 커플도 희망이 있었겠지만… 하다못해 눈을 감을 때 준코가 자기 마음을 밝혔다면 구원받았을 텐데, 걔가 그렇게 자비로운 애가 아니라서…ㅠㅠ

공식 소설로 이 작품말고도 게임 1편의 주역인 키리기리 쿄코의 과거 이야기를 그린 『단간론파 키리기리』도 발매 중이긴 한데 이쪽은 아마 안 볼 듯하네요. 그나저나 12월달에 비즈로그 문고에서『단간론파 1·2 Beautiful Days』란 앤솔로지 소설집이 나올 예정인 모양인 듯한데… 비즈로그는 여성향 레이블 아니었나요? 도대체 왜 여기서 나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