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요람

우연한 계기를 통해 어쩌다 보니 학생회 집행부 활동에 관여하게 된 여고생 우에다 히로미. 합창제, 연극 콩쿠르, 체육제 등의 학교 행사와 그 와중에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들… 학생회 집행부를 표적으로 삼는 듯한 사건들 때문에 인해 떨떠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히로미는 자못 신비한 분위기를 띈 한 상 연상의 동급생 코노에 유리와 교우를 맺게 되는데…

이것은 왕국의 열쇠』의 주인공인 히로미의 고2 시절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히로미의 중2 시절 경험담이 슬쩍 언급되긴 하지만 말 그대로 지나가듯 언뜻 비친 게 다라, 히로미 시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걸 빼면 전작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네요.

초반부터 히로미를 좋아하는 남학생이 떡하니 등장하는데다, 히로미의 눈길을 사로잡는 인물도 등장해서 히로미를 중심으로 한 청춘 로맨스가 펼쳐지는 건가 싶었는데, 이번에도 한 커플의 애증극에 끼어들어 어정쩡하게 들러리 노릇 하는 히로미를 보고 이번에도 또냐…라는 느낌. 소설 내에서 히로미가 과거를 곱씹으며 이전부터 주역이 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모습이 좀 짠한 것 같기도 하네요.

히로미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지라 어디까지나 히로미 눈에 비친 유리와 나루미의 모습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두 사람의 처절한 애증 관계를 속속들이 알 수 없다는 게 좀 아쉽습니다. 유리와 나루미의 애증 관계는 유리의 일방통행이 아닐 뿐더러 매우 깊고 어두운데다, 두 사람 외에 곁다리로 유메노와 유리 추종자 남학생까지 엃혀 더 질척거렸을 것 같은데…

학교 행사에 온 힘을 쏟는 히로미네 학교 타츠카와 고교의 풍토는 이해하기 힘들었으나(전부 작가가 실제 경험한 걸 토대로 했다는 게 놀랍… 현재는 행해지고 있지 않은 모양이지만요.), 합창제만큼은 중학 시절 합창대회가 연례행사였던지라 조금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있더군요. 다만 제가 다닌 학교는 강당도 없고 주변에 문화 시설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열악한 곳이었던지라, 합창대회 치르러 멀리까지 원정 나가야 했던 게 상당히 괴로웠습니다만….

그나저나 초반부터 히로미를 향한 호감을 풀풀 풍겼으나 채여 버리고 만 불쌍한 가토켄… 아무래도 가토켄의 가장 큰 패인은 히로미를 너무 신경 쓰고 배려한 나머지 자꾸 히로미를 장외로 밀어내려 했다는 점과 나츠로를 애처럼 여겨 방심했다는 점이 아닐까나 싶습니다. 안 그래도 여학생이 소수인 공학에서 남녀 사이에 생기는 거리감 탓에 소외감을 느끼던 히로미였으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