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색의 조각 포터블

 

양친의 해외부임으로 인해 외할머니가 사는 외가에 신세 지게 된 여고생 카스가 타마키. 외딴 산간 마을에 자리 잡은 외가는 어렴풋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 간만에 외가를 방문하게 된 타마키는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마을에 도착하지만, 뜻하지도 않게 기묘한 생물체와 조우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영문을 모르고 어안이 벙벙한 타마키에게 할머니는 생각지도 못한 비밀을 밝히지요. 외가는 대대로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 위험한 힘이 깃든 검 오니키리마루의 봉인을 지키는 무녀 타마요리히메의 역할을 맡은 가문이며, 현 타마요리히메의 계승자는 바로 타마키라는 것. 그리고 타마요리히메의 사명을 짊어지게 된 타마키와 그녀를 지키는 수호자들 앞에 오니키리마루를 노리는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나타나는데…

 

여성향 게임 브랜드 오토메이트에서 발매한 PS2용 타이틀 『비색의 조각』과 그 팬디스크인 『비색의 조각 ~저 하늘 아래에서~』를 묶어서 추가요소를 더해 PSP용으로 내놓은  합본 이식작입니다. PSP판 발매되기 전에 DS판으로 이식되었고, PSP판이 나온 후에 PS2판으로 애장판까지 발매한 인기작이지요. 가장 마지막에 발매된 애장판이 완전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각 기종 오프닝 무비를 전부 수록한 것 외에 게임 내용은 PSP판과 차이가 없는 모양이에요.

일본신화를 바탕으로 한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전기물입니다. 제가 플레이 해 본 여성향 게임중에서는 가장 암울하고 잔혹한 내용인 거 같아요. 우울한 전개에 음모와 배신이 넘쳐나고, 피와 죽음이 난무. 이런 건 전기물의 특징인 것 같으니 감안하고 넘어가야 하나… 스토리는 대체적으로 아귀맞게 잘 짜여져 있기는 한데, 메인 히어로 타쿠마 루트에서 밝혀지는 천년 전 진실과 다른 루트에서 드러나는 과거 이야기가 달라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소소한 것에서 어긋나면 그려려니하고 넘어갈텐데, 천년 전 진실은 이야기의 핵심이라… 이거 설정 오류?

주인공인 타마키가 참 정이 안 가는 애라, 줄줄이 독백이 이어질 때 좀 괴로웠습니다. 타마키의 감정과 행동에 그다지 공감할 수 없어요. 웬만해서는 여성 캐릭터에게 관대한 제 눈으로 봐도 타마키는 좀 짜증나는 캐릭터였음…;; 본편 초반에 비해 후반은 좀 봐줄 만하지만요. 사람 신경 건드려대던 본편에 비해 팬디스크의 타마키는 훨씬 나은 편이더군요.

공략 캐릭터는 마을에 도착해서 처음 만나게 되는 무뚜뚝한 동급생 오니자키 타쿠마, 미형에 말수적고 쿨하게 보이지만 엉뚱한 구석이 있는 선배 코무라 유이치, 키 작은 게 콤플렉스인 유쾌한 선배 아토리 마히로, 수호자들의 리더격인 믿음직한 연장자 오오미 스구루, 사정이 있어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후배 이누카이 신지, 타마키 앞에 나타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쿠타니 료 등 총 여섯 명. 루트는 타쿠마와 마히로, 유이치와 신지, 스구루와 료로 짝지어 진행되다가 개별 캐릭터로 갈리는군요. 유쾌한 마히로 선배와 마이페이스 유이치 선배가 마음에 들었어요. 근데 타마키는 어린 시절 외가에서 지낸 적도 있다면서, 수호자들이나 미츠루랑 안면이 전혀 없다는 게 이상하네요. 타마키의 엄마가 필사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걸 막기라도 했나…;;

배드 엔딩(거의 대부분 타마키 사망;;) 뒤에 볼수 있는 힌트 코너 타마요리히메신사 임시상담소에서 활약하는 두 아가씨 키요노와 미츠루의 만담이 유쾌합니다. 료 루트 외엔 그다지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인데 쿵짝이 참 잘 맞네요. 미츠루가 깨는 발언을 많이 해서 좀 웃겼어요. 특히 자신의 스토커 행각을 밝히며 “자기가 생각해도 참 순애적이다”라며 납득하는 모습이 깼음…

팬디스크인 『비색의 조각 ~저 하늘 아래에서~』는 살벌한 본편과는 다르게 평온한 분위기라 안심. 각 캐릭터 별 후일담이 훈훈해서 좋았고. 특히 가을축제 편, 밸런타인 편, 크리스마스 편이 유쾌하고 재미있었어요. 등장 캐릭터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우글우글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구는 게 즐겁더군요. 본편 흐름을 생각하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 외 유이치에게 환술을 배워 변신한 오쨩 귀여워요. 백합파워 전개하는 미츠루도 웃기고. 본편 료 루트에서 백합에 눈을 뜨더니 이제 완전 그 쪽 노선 타는 걸까요…;; 질투에 불타 덤벼드는 것보단 낫지만…

일러스트도 멋지고 캐릭터도 매력적이긴 한데, 저랑 파장이 안맞는 건지 남들이 열광하는 것 만큼의 재미는 못 느꼈습니다. 텍스트도 어딘가 껄끄러워 잘 안 읽히는 편이었고. CG란의 빈칸은 다 채웠는데 분차 CG중 못본 게 있는지 갯수가 모자르네요. 근데 어느 걸 못봤는지 표시도 안되고 알 수도 없으니… 처음부터 일일히 플레이 하기도 깝깝하니 그냥 이대로 접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