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의 착한 마녀

그랄 왕국 최북단 변경 세라필드에 사는 15세 소녀 피리엘의 운명은 여왕탄신일 무도회 날 건네받은 어머니의 유품인 목걸이 때문에 급변하게 됩니다. 그랄 왕국은 대대로 ‘서쪽의 착한 마녀’라 불리는 성선여왕이 통치하는 국가인데, 피리엘의 어머니 에디린은 여왕의 딸이자 유력한 차기 여왕 후보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지요. 에디린이 왕녀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이단으로 금지된 천문학 연구를 하는 아버지 디 박사와 사랑의 도피를 한 탓에 왕적에서 지워져 피리엘에게는 여왕 후보의 자격이 없지만, 피리엘은 엄연한 여왕가의 혈통이었던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아무것도 모르고 평범하게 살던 피리엘은 치열한 암투와 음습한 음모에 휘말리게 되는데…

동화작가로 유명한 오기와라 노리코가 쓴 작품입니다. 문고본, 신서판, 단행본 등 여러 판형으로 나온 인기작이지요. 본편 5권에 외전 3권으로 완결 났습니다. 국내에도 모두 정발되었어요. 총 13화 완결로 TV 애니메이션도 나왔다고 하는군요.

그동안 몰랐던 출생의 비밀 탓에 여왕 계승전에 휘말리게 된 피리엘. 그뿐만 아니라 세상의 비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디 박사의 연구 성과를 노리는 비밀결사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의 마수도 뻗쳐오는 상황입니다. 디 박사는 편지 한 장 남기고 행적을 감추었고, 디 박사의 조수이자 피리엘의 소꿉친구 룬은 유일하게 그 연구 내용을 아는 인물이라 신변이 위험하지요. 피리엘은 자신과 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사촌 자매인 아데일을 여왕 후보로 내세우는 루아르고 백작과 거래를 합니다. 그리고 점차 왕국과 세계를 둘러싼 진실과 비밀에 다가가는데…

중세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궁정 암투 로맨스…? 천문학을 이단으로 규정한다든가 독자들에겐 익숙한 동화나 지식이 철저히 금기시된다든가 인류의 위협이 되는 용의 존재라든가 여러모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을 두고 미묘한 복선이 깔려있습니다. 판타지로 시작해 SF로 끝을 맺는다는 점에서 어쩐지 『스크랩드 프린세스』가 떠올랐습니다. 건국을 둘러싼 진실이나 세상의 비밀은 대체로 다 드러났지만 유니콘에 대한 비밀은 정확히 안 나왔는데… 유니콘은 아마도 용의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생물이 아닌가 싶더군요.

소꿉친구 커플 피리엘과 룬의 로맨스도 볼거리입니다. 태양같이 발랄한 소녀와 이에 이끌리는 어둠을 품은 소년이라는 구도가 흔하긴 한데, 자주 쓰이는 건 그만큼 잘 먹히기 때문이겠죠. 이런 소꿉친구 커플의 정석이랄까… 피리엘이 무척이나 둔감합니다. 초반에는 룬에게 상당히 시큰둥하다가 큰일을 겪으면서 끈끈한 유대를 확인하더니, 3권에서 룬이 떠나버리고 나서야 자기 감정을 깨닫네요. 룬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 어린 시절부터 쭉 피리엘을 좋아해 왔고…

미묘하게 엇나가는 의붓 남매 커플 아데일과 유시스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아데일… 명색이 여왕 후보인 주제에 남몰래 사랑하는 오라버니를 자작 BL소설에 출연시켜 일그러진 욕망을 채우는 동인녀였다는 사실이 충격적! 이에 호응하는 수많은 소녀팬도 그렇고… 이에 식겁하는 피리엘의 심정이 이해가 가네요. 어쨌거나 나중에 외전도 읽어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