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대관 1

성 엘레오노라 여학원은 일류 마녀를 양성하는 명문교로 가련한 소녀들이 마법 공부에 힘쓰는 배움의 터전입니다. 성 엘레오노라 학원 소속 예비 백마녀 키아라는 어느 날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키아나의 단 하나뿐인 혈육인 오빠 비르질리오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키아나는 금단의 흑마술을 사용해 오빠의 원수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하지만, 홀연히 눈앞에 나타난 초라한 행색의 청년에게 저지당하는데…

일본에서 본편 3권, 외전 1권으로 완결된 이야기입니다. 국내에서는 제이노블에서 본편 2권까지 나오고 감감무소식인 작품이지요. 국내 정발 되기 전에 이미 완결된 작품인데 한참동안 뒷권이 안 나오는 걸 보면 판매량이 부진해서 버려진 듯…;; 여성향 분위기를 풍겨서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걸까요…? 딱히 로맨스물도 아닌데.

마술과 마녀 이야기가 나오기에 중세 유럽풍 가상 판타지 세계인 줄 알았는데, 중반에 드러나는 세계관 설정을 보면 과학이 몰락하고 마술이 흥하는 미래의 지구 이야기인 듯합니다. 과거, 그러니까 키아라가 사는 시대에서 약 200년 전, 발달한 과학 문명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욕심이 자연을 무너뜨리고 좀 먹게 됩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특별한 힘을 지닌 열두 명의 마녀들이 홀연히 일어나 세상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지요. 이후 이들은 성마녀라고 불리며 세상의 질서를 재편합니다. 그 후 과학 문명의 쇠퇴하고 마술이 부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계관을 엿보면 알 수 있듯 이 소설에서 마술은 세상을 이끄는 힘이고, 마녀와 마술사는 그 힘을 행사하는 사회 지도층입니다. 열두 명의 성마녀가 세상을 다스린 이후로 점차 마술에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기에 선택받은 소수의 엘리트 느낌이 강한 듯하네요. 키아라가 사는 구주(歐洲) 지역은 교황과 교황청의 지배 아래 사람을 해하지 않고 이롭게 하는 백마술을 권장하며, 반대로 사람을 해하는 사악한 마술을 흑마술이라 규정하며 철저히 배척합니다. 금기를 어기는 자는 교황청 소속 검사성성의 제재를 받게 되지요.

어쨌거나 이 소설은 당돌한 소녀 키아라가 우연히 사람 좋아 보이는 청년 아달베르트를 만나게 되고, 오빠의 죽음과 더불어 또 다른 사건에 얽힌 의혹에 휘말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띠지에 마녀 VS 마피아라고 나오지만, 두 세력의 충돌이 사건의 중심은 아니네요. 열 받는다고 처음 만난 여행자를 (위험한 곳은 아니었지만) 게이바에 넘겨버리는 키아라의 행각이나, 항상 어벙하게 웃고 다니지만 속으로 깊은 어둠을 품은 아달베르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키아라와 아달베르트는 상대방을 각각 ‘안쓰러운 일을 당한 귀여운 소녀’, ‘어벙하고 사람 좋지만 능력 있는 청년’ 정도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복수심에 불탔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감정 정도는 생겼을지도…? 그나저나 아달베르트와 뤼디거가 두 살 차이 소꿉친구라니 믿기지 않네요. 얼굴의 액면가가 너무 다르잖아…! 둘 다 추정 연령 20대 중후반이지만 아달베르트는 순하고 어수룩해 보이는 청년 인상인데 뤼디거는 중년 아저씨 느낌…;

이번 권에서 키아라 오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다 밝혀져서 깔끔히 마무리되었는데… 아달베르트가 어린 시절 겪었다는 재액과 과거에 숨겨진 진실, 흑마술집단 야회의 실체, 키아라의 절친한 친구 릴리가 속한 암살자 가문 만다리나의 움직임, 물 밑에서 불안하게 돌아가는 세계정세 등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떡밥을 많이 던져져서 과연 앞으로 이야기가 어찌 돌아갈는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