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DEO에서 발매한 키네틱 노벨 「신곡주계 폴리포니카 Memories White」의 후편이자 완결편입니다. 화이트 시리즈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과거의 비극이 드러나는 한편이에요.
크림슨편은 물씬 풍기는 남성향 분위기-우유부단한 포론을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하는 코티와 페르세의 모습이라든가, “레이토스님은 그저 명령만 내려주세요.”라고 말하는 엘레인이라든가-가 좀 껄끄러웠습니다만, 이번 작품은 별다른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캐릭터들의 행동에 과장이 꽤 섞인 크림슨편에 비해서 이쪽이 좀더 담백한 느낌이고… 정령에 대한 서술을 살펴보면 크림슨편은 정령이 인간과 대등한 지성체임을 강조한데 비해 화이트편은 정령은 인간과 조화로운 관계를 이룰 수 있는 벗임을 강조하는 분위기.
솔직히 크림슨편에서 다루어졌던, 폴리포니카 세계관의 핵심을 꿰뚫는 주세전설과 재주세를 꾀하는 ‘탄식의 이방인’의 이야기가 강렬했던터라 화이트편은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스노우 일행의 앞을 가로막는 엘류트론과 역사상 최초의 신곡악사로 그 이름이 남아있는 세계의 조율자 단테, 그리고 정확한 정체를 알 수없는 통합의식체 레브로스 등… 보다 확장된 세계관이 흥미진진합니다. 사람의 의식속에서 환생을 반복하며 세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움직이는 특수한 의식체라고 하는 단테의 존재는 주세신의 안배인 걸까요…? 레브로스의 목적은…? 엘류트론이 프림로즈를 일컬어 칭하는 ‘염제의 딸’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엘류트론과 코티카르테의 과거사도 궁금하네요. 여신과 그를 섬기는 성수의 관계는 각별한 모양인데 어쩌다 코티에게 절연당한 걸까요? 그저 나중에 성수라는 개념이 추가되면서 앞뒤짜맞추려고 그렇게 설정했다…고 생각하지만. 엘류트론의 태도를 보니 인간에 대한 혐오로 인해 말안듣고 이리저리 날뛴 결과인것 같은데, 그다지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코티가 질릴만한 행동이란 어떤 것일지… 옛 성수가 날뛰어도 코빼기도 보기 싫을 만큼 데인걸까요? (그런데 녹색과 보라색의 성수는 다들 어디있는거죠? 여신만 달랑 남겨두고…)
어쨌거나 과거의 사건을 체험하고, 블랑카의 계약악사였던 안젤로와 안젤리카에 대한 열등감을 떨쳐버린 스노우. 이번 일을 통해 번거롭게만 여겨지던 블랑카에 대한 소중함도 깨달았고, 전보다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니 두사람 사이의 거리는 크게 좁혀진 듯. 그리고 또다른 커플 죠슈와 리슐리, 너희들은 그냥 계약하는게 좋겠다. 자격지심에 실력을 키워 정식으로 계약을 청하겠다는 죠슈나 그 사이 다른 여자가 죠슈에게 달라붙을까봐 안달복달 스토킹해대는 리슐리나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건 뻔히 보이는데… 그냥 정식 계약을 마치는게 주변의 평온을 위한 길.
크림슨 시리즈는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안들었는데, 화이트 시리즈는 소설을 읽어봐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네요. 메모리즈 화이트에서 다룬 과거의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제대로 풀리지 않은 이야기가 많은지라… 폴리포니카라는 동일한 세계관을 다룬 작품이니만큼 서로 링크된 부분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슬쩍 등장하는 코티카르테라든가 칠악문의 타타라 가문이라든가…). 크림슨편을 플레이해보신 분들이라면 접해 보셔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