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세 가지 방법

세계정복을 노리는 마왕 라스티 루안. 인간들을 몰아내고 마족의 번영을 가져오겠다는 큰 뜻을 품고 싸움에 임하는 그이지만, 언제나 숙적인 용사 클라우스에게 패배의 굴욕을 맛보는 나날이 계속됩니다. 늘상 자신의 속을 박박 긁어대는 얄미운 용사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마왕님이 생각해낸 계책은 바로 “육체강화의 비약”을 이용해 자신의 신체 능력을 강화시키는 것! 공들여 완성한 비약을 용사 앞에서 복용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째서인지 마왕님은 여자의 모습으로 변해버립니다. 게다가, 그런 마왕님의 모습에 한눈에 반해버린 용사는 난데없이 마왕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그대로 마왕님을 납치해 버리는데… 과연 마왕님은 용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무사히 남자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크라우드에서 발매한 18금 남성향 게임입니다. 성전환물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약의 조합 실패로 여자가 되어버린 마왕님과 그런 마왕님께 한눈에 반해 버린 용사님…이란 상황 설정이 왠지 땡겨서 잡아본 작품입니다. 설정부터 B급 네타물의 향기가 풀풀 풍기네요.

주요등장인물은 라스티의 숙적인 용사 클라우스와 용사님의 여동생으로 얌전하고 소심한 성격을 지닌 아가씨 세실리아, 라스티의 사촌누이이자 약혼녀인 리자, 라스티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손에 넣은 램프의 정령 포르티나, 라스티의 충실한 부하 루카트 등입니다.

주인공인 라스티는 두뇌도 나쁘지 않고 여러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바보… 게다가 주변의 강압에 약해서, 이런저런 수난을 당하는 게 일상다반사입니다. 라스티는 세계정복이 목표라고 입버릇처럼 떠들고 다니기는 하는데, 당장 눈앞에 닥친 재앙-여체화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가지 트러블-때문에 그딴 거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라스티는 남자였을 때에도 바보라서 고생했는데, 여자가 되고 나서는 그야말로 수난의 연속! 기껏 밤새서 육체강화의 비약을 만들었더니 이것 때문에 오히려 힘이 눈에 띄게 약해져 버렸지, 언제나 라스티를 조롱하던 용사는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꿔 끈덕지게 집적대지, 뼛속까지 사디스트인 새침데기 사촌누이는 라스티를 있는 대로 휘둘러대지, 몸 좀 되돌려 보겠다고 불러낸 램프의 정령은 마력을 핑계로 이런 짓 저런 짓을 해대지, 믿고 있던 충복과는 여자가 되고 나서 어찌어찌 하다 보니 사이가 소원해지고, 여자가 되었으니 새로이 남자를 약혼자로 맞아들이라고 할아버지가 맞선 자리에 등을 떠밀질 않나, 평소 우습게 여기던 용사의 부하조차 이기지 못하고, 뒷골목 양아치들에게 이런저런 수난을 당하는 등… 제대로 되는 일이 없네요.

이 게임은 용사×마왕 커플이 진리! 바보 마왕님과 변태 용사님이 투닥거리는 모습이 재밌어요. 클라우스는 대놓고 변태끼 철철 넘치는 호색한이긴 한데, 라스티만 바라보는 일편단심 순정파. 그가 중간중간 질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제법 귀엽더군요. 클라우스는 언제나 스트레이트하게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라스티는 원체 연애에 둔감한 데다가 머릿속에 박혀있는 선입관 때문에 “용사 녀석이 날 좋아한다고? 저놈 제정신인가? 난 남자인데? 게다가 용사랑 대적하는 마왕인데? 에이, 그럴 리가 없지. 저 놈이 날 놀리는 거다.”라는 식으로 사고가 이어져서 좀처럼 그의 진심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물론, 용사의 능글맞은 태도가 진실미를 깎는 점도 있겠지만…

루카트 루트에서 볼 수 있는 용사×마왕×충복의 삼각구도도 흥미롭습니다. 일처다부제도, 정부관계도 가능하다고 못박는 장로님 말씀이 강력하셨음. 그 외 여성 캐릭터들은… 나름 귀엽긴 한데 어째 다들 상대적으로 매력이 달리는 느낌이네요. 라스티가 무지 귀여운데다, 용사님이 너무 강렬해서… 세실리아 루트는 그럭저럭 무난했는데, 리자랑 포르티나 루트는 보고 있기가 좀 괴로웠습니다. 라스티 좀 그만 괴롭혀라…=_=;; 그걸 또 잠자코 당하는 라스티도 참…;;

게임 전반적으로 주인공인 라스티는 주변 인물들에게 휘둘리다 끝나네요. 이리저리 휘둘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바보의 숙명인 것일까요? 개인적으로는 라스티가 자신에게 목매다는 용사를 구슬려 세계정복에 나서는 엔딩을 기대했는데, 그런 건 없더군요. 제 딴엔 머리 굴린답시고 어설프게 미인계를 써서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다 물먹는 엔딩은 있지만. 마왕님은 바보인데다 주변에 너무 쉽게 휩쓸리는 경향이 있어서 악녀 노릇하기엔 무리가 있나 봅니다. 라스티는 바보라서 귀여우니 상관없으려나요… 어쨌거나 개그물로써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