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적대하는 두 국가 레밤과 아마츠카미의 혼혈아로 태어나 베스타드라 불리며 멸시받는 샤를르. 비록 혈통 때문에 차별받지만, 비공사로써의 실력만큼은 최고라 인정받는 레밤 황국의 용병비공사인 그는 어느 날 극비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그것은 바로 황태자의 약혼녀로 차기 황비가 될 공작가의 영애 파나를 호송하는 것. 과연 샤를르는 적들의 눈을 피해 파나를 무사히 데리고 12,000킬로에 이르는 해상을 가로지를 수 있을 것인가?!
동 레이블에서 『레비아탄의 연인』을 쓴 ‘이누무라 코로쿠’의 작품입니다. 『레비아탄의 연인』을 쓰기 이전에는 패미통 문고에서 게임원작의 소설을 썼던 모양이네요.
어느 날, 상관에게 불려가 황당무계한 지령을 받게 된 샤를르. 상황이 얼마만큼 안좋은가 하면 샤를르와 파나가 출발하는 ‘산 마르틸리아’는 적대국인 제정 아마츠카미와 맞닿은 최전선으로, 본국인 레밤 황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약 12,000킬로에 이르는 바다를 건너가야 합니다. 레밤 황국의 아마츠카미 사이에 낀 이 바다는 중간에 대폭포가 존재하고 있어 배편으로는 왕래할 수 없는데다 주변의 제공권은 이미 아마츠카미가 장악한 상태. 샤를르는 아마츠카미의 주력 전투기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정찰기로 적군의 눈을 피해 12,000킬로를 돌파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적측에서는 극비계획인 파나의 호송작전에 대해서는 모를 테니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던 샤를르였으나, 얼간이 황태자의 생각 없는 행동 때문에 이미 정보가 새어버려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고…
샤를르가 펼치는 공중전이 너무나 아크로바틱한 느낌이지만 흥미진진한 편이니 그런 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샤를르와 파나의 감정의 흐름을 따라 읽으면 꽤 재미있어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현실을 외면하고 인형같이 살아가던 파나가, 점차 감정을 드러내고 성장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술주정 부리는 파나의 모습도 귀여웠어요.
공작가의 영애로 태어나 지배층의 정점인 레밤 황가로 편입될 파나와 피지배층의 맨 밑바닥에 있는 혼혈아 샤를르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샤를르와 파나는 어린 시절 단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워낙 어릴 때의 일이라 파나는 그 사실을 기억 못하지만, 샤를르는 그때의 기억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지요. 그리고 공작가의 사용인이었던 샤를르의 어머니는 가족의 정에 굶주린 파나에게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 주었고요.
처음부터 결말이 보이는 이야기입니다만, 가장 적절한 마무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표지 그림인 샤를르와 파나의 금가루로 떡칠한 이별 장면도 꽤 마음에 들었어요. 결국 이 이별이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겠지요. 샤를르와의 추억은 작게는 파나 개인의 인생을 바꾸었고, 크게는 레밤과 아마츠카미의 미래를 바꿔 놓았습니다. 허우대만 멀쩡한 얼간이 황태자에겐 파나가 아깝지만, 레밤 황국의 미래와 세계평화를 생각하면 파나가 황비가 된 게 천만다행일지도…
어느 레이블인지 까먹었지만, 정발판이 발매된다고 했으니 관심 있는 분은 한 번 읽어 보세요. 일본에서는 2월달에 속편인 『어느 비공사에 대한 연가』가 발매되었는데, 이쪽도 평이 괜찮은 것 같으니 사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