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주계 폴리포니카: 이터널 화이트

그라나드가를 섬기는 메이드 스노드롭은 그 누구보다 경애하는 그라나드가의 영애 프림로즈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아가씨 제일주의자. 어느 날, 1년에 한 번 개최되는 음악 콩쿠르에서 프림로즈가 우승, 정령들이 태어난다고 하는 하늘에 떠있는 신비한 섬 정령도에 있는 음악학원에 입학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아가씨에게 모든 정성을 쏟던 스노는 아가씨가 꿈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아가씨와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에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지요. 그런 스노 앞에 나타난 수상쩍은 인물 블랑카. 전설의 콘트라베이스 ‘이터널 화이트’의 화신이라는 정령 블랑카로 인해 그녀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

공통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작가가 각각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셰어드 월드 소설 『신곡주계 폴리포니카』시리즈의 화이트 편 제1권입니다. 작가는 타카도노 마도카예요. 비슷한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 크림슨, 블랙, 블루 편 등과는 달리 화이트 편은 아직 하늘엔 정령도가 떠있고, 단신악단이 개발되기 이전인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중세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계급사회시대에 다혈질 메이드 스노드롭의 활약을 그린 밝은 분위기의 학원물이라고나 할까요.

계약악사와 계약정령이라는 특별한 관계로 맺어졌지만 제대로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스노와 블랑카. 솔직하지 못한 성격의 스노와 문제발언을 일삼는 블랑카가 투닥거리는 모습이 재미있어요. 메인커플 외에도 조슈와 리슐리, 학원장과 부학원장, 데이지와 피스 등 다양한 커플의 모습도 흥미가 가고… 스노가 좀 다혈질에 막나가는 경향이 있긴 한데, 그 행동력은 높이 평가할 만 한 듯합니다. 엘류트론과의 대결에서 자신의 한계를 확실히 인식한 스노가 콘트라베이스를 내팽겨친 후 노래를 불러제끼는 부분은 꽤 마음에 들었어요.

이야기의 주인공인 스노가 이쪽 세계에서 폴리포니카 대륙으로 넘어갔다…라는 설정 덕분에 작중에서 스노가 흥얼거리는 노래들은 이쪽 세계에서 널리 알려진 곡들로 독자들에게는 친숙한 곡들입니다. 따라서 다른 폴리포니카 시리즈들과는 달리 독자들이 그 멜로디를 떠올리며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일 듯. 스노가 어린 시절부터 종종 흥얼거리던 노래는 「모차르트의 자장가」이고, 스노가 무지개를 보고 떠올린 노래는 「Over The Rainbow」, 스노가 블랑카의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해 부른 건 「La Marseillaise」네요.

그나저나 블랑카의 일처리는 상당히 안이했던 것 같아요. 기억을 잃어버린 빈사상태의 아이를 무턱대고 그라나드가의 영지에 던져 놓기만 하고, 당연히 신곡악사로 자랄 걸 기대하다니…;; 폴리포니카에 데려온 이후, 곁에서 스노를 제대로 돌봐줬으면 스노의 일순위는 블랑카가 되었을 텐데. 물론 스노 곁을 지킬 수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만, 현재 아가씨에게 목숨 거는 스노의 모습에 블랑카가 한숨짓는 건 어느 정도 자업자득인 면이 있으니 그다지 동정은 안갑니다.

셰어드 월드라는 작품 특성상 다른 시리즈와 서로 연계되는 부분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소설 후반부에 코티카르테가 잠깐 찬조출연하는 건 제법 반가웠어요. 키네틱 노벨판인 『신곡주계 폴리포니카 3&4화 완결편』에서 코티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 그 과거의 이야기가 소설에 나오거든요. 코티는 앞으로도 화이트 편에서 종종 얼굴을 비춰줄 것 같으니 기대,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