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 -죽은 자들은 황야에서 잠든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어린 소녀 키리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다. 교회에는 신같은 건 계시지 않는데, 간절히 신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교회에 떠도는 영들의 존재를 신관들이 눈치 못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비칠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조금 나이가 들자 아무 것도 몰랐던 철부지 어린 시절처럼 그러한 사실을 입 밖에 내지는 않게 되었지만 신의 존재에 회의적인 생각을 품는 것은 그 때와 마찬가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던 키리는 어느 날 룸메이트 베카와 역 전을 지나다가 구식 소형라디오를 가진, 하베이라는 수상적은 청년과 마주치게 된다. 그의 정체는 80년 전에 일어났던 전쟁에서 <전쟁의 악마>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불사인. 그는 소형 라디오에 빙의된 ‘병장’의 유령을 황야에 데려다 주기 위해 여행중이라고 한다. 자신 이외에 처음으로 접하는, 유령을 볼 수 있는 존재. 그 때문인지 그에게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낀 키리는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는데…

신께선 어째서 안계신걸까
이 혹성에 교회는 있어도 신은 없다. 그 사실을 키리가 알게 된 것은 네 다섯 살 무렵이었다.

제1화 룸메이트
이스터베리의 기숙학교에 다니는 키리는 룸메이트 베카와 거리를 거닐던 중 낡은 라디오를 지닌 수상쩍은 청년과 만나게 되는데…

제2화 차표를 검사하고 있습니다.
하베이와 함께 식민제 휴가기간 동안 과제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키리. 그녀는 열차 안에서 승무원에게 차표를 보이지 않는 하베이의 모습에 의아해한다.

제3화 피에 젖은 피에로에게 갈채를
축제의 열기로 들떠있는 메인 스트리트에서 키리는 피에 젖은 모습으로 곡예를 부리는 한 피에로의 모습을 본다.

제4화 “I’m home”
잠시 들를 곳이 있다며 혼자 가버린 하베이의 뒤를 미행하는 키리와 병장님. 그들이 목격한 것은 낡은 집에서 하베이를 맞이하는 백발의 노인과 “다녀왔어”라는 하베이의 한마디.

제5화 죽은 자들은 황야에서 잠든다
옛 전쟁의 잔상을 지나 다다른 황야에는 병사들의 무덤이 낡은 검이나 총을 묘비 삼아 펼쳐져 있었다.
“그건 전쟁이었어. 서로 죽이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 단지 그 뿐이잖아.”

제6화 빛의 노표까지 앞으로 몇 걸음
하베이와의 길고도 짧은 여행을 마치고 기숙학교로 돌아온 키리. 하지만 그녀는 이미 여행 전에 누리던 일상을 잃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요아힘이라는 신관이 찾아와 수도의 신학교로 올 것을 제의하는데…

신이시여, 만일 계신다면
부디 신이시여.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교회의 신이 아니라도 상관 없어, 하지만 이 혹성에 만일 신이 계시다면 부디 그 완전 무결하고 공평한 가면을 지금 잠시만 벗어버리고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이 이상은 결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게요. 부디 신이시여.

 

이상 소설의 줄거리였습니다. 제 9회 전격게임소설대상 <대상>수상작품. 사 놓은지는 오래 되었으나 이제서야 겨우 읽어보았어요. 키리와 하베이의 여정에서 생기는 사건들이 옴니버스식으로 묶여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흐르는 어둡고 가라앉은 분위기(작가말로는 퇴폐적인)를 바탕으로 비교적 담담하게 흐르는 문체가 마음에 들어요. 계속 이런 분위기로만 나가준다면야… 다음 권도 구매목록에 추가다!!

소설 초반부에서 룸메이트를 자칭하는 베카의 존재에 대해서 약간 의아해 했는데…(혼자서 방을 쓰고 있다 그래놓고 왠 룸메이트?? ) 베카는 약간 특별했던거군요.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베카의 원맨쇼도 재법 즐거웠어요. 1화 후반부에 약간 제멋대로 굴기도 하지만… 그런 베카가 없었다면 키리가 하베이와 함께 여행을 떠날 일은 생기지 않았겠죠.
그리고 병장님!! 초반부에는 그다지 호감이 가진 않았는데 5,6화의 병장님을 보니 마음에 쏙 들어버렸어요. 특히 5장에서 하베이에게 담담하게 건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병장님, 멋져요~!!

‘신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 완전무결하고 훌륭하고 공평한 인격자라서 강자에게도 약자에게도, 부자에게도 가난뱅이에게도 그저 평등히 지켜 볼 뿐 결코 한 쪽을 편애해서 손을 들어주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죽어버리라지.’ (소설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

이렇게나 냉소적으로 신을 바라보면서도 최후엔 신에게 소원을 바라는 것은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인지… 어쨌거나 소녀는 갖혀진 틀 속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날 용기를 얻었고, 허망한 삶을 이어가던 불사인은 살아갈 의미를 찾아내었으니 해피 엔딩.